니버의 죄론

 

니버는 기독교적 인간관으로 다음 세 가지를 제시한다. 1) 신의 형상(Image of God), 2) 인간의 피조물성, 곧 그의 약함, 의존성 및 유한성, 3) , 곧 인간이 그의 의존성, 유한성 및 불안정성을 거부하는 데에서 생기는 죄 (니버, <인간의 본성과 운명> 1, pp. 137-138).

 

니버의 인간론은 죄론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니버에게 ''는 인간의 존재 안에 내재되어 있는 '본성'이 아니다. 니버에게 죄는 인간의 바깥에서 인간 안으로 들어오는데,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적이고 안전한 삶을 만들어 가려고 할 때 발생한다.

 

또한 니버에게 죄는 인간이 가진 자유에서 비롯되는 필연이기도 하다. 인간은 자유를 지녔기에 죄를 짓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인간은 '본질적으로 죄인'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은 니버에 의해서 거부된다. 니버의 이러한 생각은 하나님의 창조를 생각할 때 옳은 생각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선하다. 그러므로, 인간은 본질적으로 죄인이라는 생각은 하나님의 선한 창조를 부인하는 것이 되고 만다.

 

이러한 입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인간의 죄된 본성을 치료한 사건이라기 보다는 인간이 어떻게 자기 자신을 죄에 굴복시키지 않고 인간성을 끝까지 보존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지에 대한 '구원의 길'을 제시한 사건이 된다.

 

예수는 자기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 신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면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했다. 인간의 생명을 생명되게 지키고 보존하는 것은 하나님 외에 없기 때문이다.

 

니버는 말한다. "인간의 죄는 인간이 그 자신, 그의 나라, 그의 문화, 그의 문명을 신성하다고 스스로 상상하는 허영과 오만, 바로 그것이다."

 

인간은 자기의 생명을 스스로 지켜내기 위해서 수도 없이 자기초월을 시도한다. 성경 속의 이스라엘 역사는 그러한 속성을 드러낸다. 광야에서 애굽으로 돌아가겠다는 반란, 왕을 달라는 요구, 이방신에 대한 우상숭배 등,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스스로 생명을 지켜나가기 위하여 자기 초월을 시도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 거하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니버에 의하면, 그것은 인간의 인간다움, 즉 인간의 유한성을 철저하게 인식하며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에 기대어 사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성취는 자기 초월에 대한 시도이다. 그러나, 그 자기 초월적 성취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구원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생명을 파괴한다. 이것이 인간의 비극적인 운명이다.

 

내가 하는 모든 행위가 자기 구원을 이루고 다른 생명을 차별하는 죄가 될 뿐이라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힘들여 가며, 생명의 기운을 써 가며 성취를 이루어 내려고 하는가.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이러한 기도가 저절로 나온다. "주여, 내가 행하는 모든 것이 자기 구원을 이루고 차별하는 행위가 아니라

주께서 주신 기쁨 자유, 평화, 사랑의 능력을 통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놀이가 되게 하옵소서." 아멘.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