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철학으로 풀어보는 구원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고 성경을 말한다. 여기서 본질은 'substance'를 말한다.
플라톤 철학에 의하면 '본질(substance)'은 하늘에 존재한다. 하늘에 존재하는 본질은 이 땅에서 존재하는 우리가 바꿀 수 없다. 그 본질을 바꿀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다.
본질의 차원에서 구원을 설명하자면,
구원이란 본질이 바뀐 것이다.
구원이란 '본질상 진노의 자녀'에서 본질이 바뀌어 '본질상 축복의 자녀'로 변한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마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구원은 본질이 바뀌는 것이다. 본질은 하나님만 바꾸실 수 있는 하나님 고유의 능력이다. 이 땅에서 우리가 하늘에 속한 본질을 바꾸려고 '무슨 짓'을 해도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본질은 하늘에 속해 있고, 그 본질을 바꿀 수 있는 것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가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해도, 이 땅에서 공로를 많이 쌓아도 우리의 힘으로 하늘에 속한 본질을 바꿀 수는 없다. 하늘의 속한 본질은 하늘에서 하나님만이 바꾸실 수 있는 배타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학은 말한다. 하늘에 속한 본질을 바꿀 수 있는 길은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온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안에 있다고 말이다. 가능한 일이다. 예수는 이 땅을 살다간 ‘인간’이기도 하지만,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능히 하늘에 속한 본질을 바꾸어 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다.
플라톤 철학을 바탕으로 전한 사도 바울의 복음이 플라톤 철학 바탕 위에 세워진 헬라문화권 사람들에게 잘 먹혔을 것이다. 그들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지만, 이제 그들은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본질이 바뀌어 본질상 축복의 자녀가 되었다. 이 얼마나 기쁜 소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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