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2011. 4. 7. 13:37

뜨레비 분수

 

고불고불 로마의 골목길을 가로질러 찾아간 뜨레비 분수.

오드리 헵번처럼 로마에서 한가로움을 찾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저녁 어스름,

조각상을 좀 더 환상적으로 만들어 줄 조명이 켜지기를,

조명이 켜지면 자신의 삶도 환상적으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오감을 다 열어 놓고 기다린다.

아직 해가 다 지지 않아 어둠이 짙지도 않은데

기다리는 사람을 의식한건지 배려한건지

어둠과 환함의 어정쩡한 공기를 타고

조명이 찬란하게 켜진다.

설익은 조명인데도 사람들은 좋아한다.

그들의 한가로움은 설익은 한가로움이라서 그럴까.

그들의 삶은 설익은 삶이라서 그럴까.

설익은 것들이 어우러져 찬란함을 겨우 일궈내고 있을 때

사람들은 일제히 분수를 등지고

분수 속으로 동전을 던져넣기 시작한다.

던지기 전 그들은 잠시 눈을 감고 소원을 빈다.

그 소원은 분명 오감이 행복해할 수식어들이 가득찬

환상적인 소원일 것이다.

 

그 때,

배를 낮게 깔고 힘겨운 움직임으로

뜨레비 분수 앞을 지나는 거지가 눈에 들어온다.

환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시간과 절망을 딛고 사는 거지의 시간이 교차되는 순간,

소원을 빌기 위해 분수 속으로 던져지는 동전은 있어도

마땅히 빌 소원도 없는 거지의 깡통 속으로 던져지는 동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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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