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22. 11. 29. 07:09

그리스도인의 가치

(로마서 3:1-8)

 

1. 우리가 읽고 싶은 대로 읽는 게 아니라, 바울이 말하고 싶어하는 것을 따라서 로마서를 읽어 내려가면, 바울이 약간 우왕좌왕 하는 듯이 느껴진다. 그리고 바울이 하는 주장은 매우 급진적이다(래디컬하다). 로마서에서 바울이 주장하고 있는 요점 중 하나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바울의 이러한 주장은 유대인이 들었을 때 매우 기분 나쁠 수 있다. 반대로, 이방인이 들었을 때 기분 좋을 수 있다.

 

2. 로마서 2장에서 바울이 진술한 것은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율법을 받았으나, 그것이 그들에게 우월감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생활 속에서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율법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스스로 우월감을 가지며 살았고,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는 도구로 쓰였을 뿐이다. 그렇게 우월감 속에서 남을 정죄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바울은 말한다. 중요한 것은 실천하는 것이지, 율법의 소유가 아니다.

 

3. 그렇다면, 여기에서 당연히 제기되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3장 1절이 바로 그 문제제기이다.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 그러면 유대인의 나은 점은 무엇이며 할례의 이로운 점이 무엇이겠습니까?” 바울은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에 비해서 나은 점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는데, 여러가지 중에서 하나님이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맡기신 것을 첫번째로 꼽고 있다.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2절).

 

4. 다시 말하자면, 바울은 유대인의 가치를 논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의 주장에 따르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복음 앞에서 가치의 차이가 없다. 그러면 도대체 유대인이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이며, 무슨 유익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가 구약성경을 통해서 보듯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시고, 그들에게 율법을 주시며, 그들에게 지도자를 주시고, 땅을 주시고, 무엇보다 ‘복’을 내려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특별한 민족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런데, 바울은 이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이가 없다고 말하니, 유대인의 입장에서 바울의 주장은 얼토당토 하지 않은(이치에 맞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에게 크나큰 핍박을 받았다.

 

5. 우리가 로마서를 읽으면서 경험하는 것은 바울이 유대인과 이방인의 동일한 가치를 주장하는 것에 대하여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바울이 말하는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다고 유대인이 가진 고유의 가치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보니, 9장부터 11장에 걸쳐 바울은 유대인의 고유 가치와 미래에 대하여 고뇌하며 진술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떠한 결론을 주는 것은 아니다. 바울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유대인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동족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겸손하게 받아들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뿐이다.

 

6. 로마서의 이 본문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여전히 가치 있는 이유는 동일한 질문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던져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가치는 무엇인가? 바울이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차이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사이에 차이가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인간은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면 흥미를 잃고, 열심을 내지 못한다. 사람은 누구나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는 것’에 자신의 삶을 드리고 싶어한다.

 

7. 그러나, 우리가 본문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가치가 생성되는 원리’이다.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 내린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구약성경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다.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유대인이 얼마나 복 받은 민족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 지구상에 유대인과 같이 하나님의 복을 받은 민족은 없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어처구니없는 상황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복을 받은 민족인데, 하나님에게 반역(revolt)하고 결국 망하는(destroyed) 그들의 모습을 본다. 결정적으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8. 바울이 유대인을 향하여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들의 가치에 대해서 인정하면서도 부정하는 이유는 그들이 스스로의 가치를 무익한 것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유대인들)과 언약을 맺고 그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구약성경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보듯이,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언약에 신실하지 못했다. 출애굽기의 가데스 바네아 사건에서 보듯이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반란을 일으켰고, 여리고성 전투 이후 아이성 전투를 하면서 탐욕을 버리지 못해 전투에서 패하고, 가나안 땅에 정착한 뒤 사사시대를 통해서 그들이 보여준 모습은 ‘마치 하나님이 없는 모습’이었다.

 

9. 그뿐만 아니다. 열왕기상하의 역사기록이 보여주듯이, 사무엘 시대 이후에 사울 왕을 세워 왕정이 시작된 이래 다윗 왕 이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이 집권하여 하나님과의 언약에 충실하고 신실한 나라를 세워간 역사가 거의 없다. 엘리야와 엘리사 선지자의 활동을 통해서 보듯이, 오므리 왕조(아합왕)와 예후왕조 등에서 보듯이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신앙은 온데간데없고, 바울과 아세라 등 우상을 섬기기에 바쁘고, 결국,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주변의 힘센 제국들을 의지하다, 의지하던 바로 그 제국에 의해서 나라가 멸망 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한마디로, 이스라엘의 역사는 불충과 불의의 역사이다.

 

10. 이스라엘(유대인들)은 하나님과의 언약 사이에서 불충하고 불의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언약에 충실하시고 의로우셨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그냥 지엽적인 이스라엘의 역사로 끝나지 않고 인류의 보편적인 역사로 확대되는 이유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보편적인 인류가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불충하고 불의한 가를 그림언어로 보여주듯이 펼쳐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11. 가치는 저절로 생성되지 않는다. 하나님에게 선택 받은 민족이라고, 율법을 받았다고, 하나님께 다른 민족과 비교할 수 없는 복을 받았다고 해서, 그들의 가치가 천년만년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복을 생각하면서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며, 그 안에 머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냥 놓아둔다고 가치가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가치를 계속 가치 있는 것이 되도록 부지런히 노력해야 한다.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12. 새로운 교회력이 시작되는 대림절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본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I am a Christian”이라는 고백이 무슨 가치를 지니는가? 바울이 말하는 것처럼,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차이가 없다는데, 우리는 이방인으로서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유대인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역사를 보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유대인들을 판단하고 핍박했는가? 그런 것을 생각하면,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뒤집어서 적용되는 듯싶다. 로마서에서는 유대인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묻고 있지만, 현재 우리는 동일하게 이방인의 가치가 무엇이지, 그리스도인의 가치가 무엇인지, 질문을 받고 있는 것이다.

 

13. 그리스도인의 가치는 다른 데서 오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아는 데서 온다. 대림절에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땅에서 이루신 일들에 주목하는 것이다. 우리는 대림절에 네 개의 촛불을 켜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찬양한다. 소망, 사랑, 기쁨, 평화의 촛불이 그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소망을 주셨고, 사랑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셨고, 우리의 기쁨이 되셨고, 평화를 이루셨다. 그리스도인의 가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들을 묵상하면서 동일하게 그렇게 살아가는 데 있다.

 

14. 우리는 소망 가운데 있는가. 혹시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낙심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마음에는 소망이 더 가득한가, 아니면 낙심이 더 가득한가? 우리는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가? 혹시 우리 안에 미움이 가득한 것 아닌가? 우리는 기쁨이 충만한가? 혹시 우리는 우울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무슨 노력을 하고 있는가? 불화하는 것을 보면서도 마음 아파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땅에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15. 나는 무엇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다시 집중하기를 바란다. 그리스도인의 가치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하는 일은 성경을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된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이야기를 기록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읽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이 된 것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은 구원은 이 세상 어떠한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것이다. 우리는 그 가치 있는 것을 가치 있게 머물도록 하고 있는가? 아니면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들고 있는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가치 있는 삶을 굳건하게 지켜 나가는 복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