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와 톨킨]

 

바그너는 19세기 사람이고, 톨킨은 20세기 사람이다. 바그너는 자본주의의 병폐와 낭만주의와 이성의 극대화를 경험했다. 그러나 바그너는 20세기의 두 비극, 1,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하지 못했다.

 

톨킨은 바그너를 잘 알고 있었고, 그의 <니벨룽의 반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톨킨은 20세기의 두 비극을 모두 경험했다. 그리고 톨킨은 <반지의 제왕>을 집필했다.

 

바그너는 19세기 낭만주의의 정점에 있었던 사람답게, 그리고 산업혁명을 경험하고 이성의 긍정에 동의했던 사람답게 <니벨룽의 반지>를 써내려 갔다. 그리고 바그너는 니체의 영향 아래 신들의 세계의 몰락과 '위버멘쉬(초인/영웅)'를 통한 새로운 세계를 꿈꿨다.

 

그러나, 톨킨은 이성의 정점에서 스스로 몰락한 인간들의 군상을 직접 목도했고, 모든 인간의 노력과 진보가 부질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이 없는 세상은 안전하지 않다. 그렇다고 존재하는 신은 인간을 지배하지 않는다. 인간은 인간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되, 신비에 휩싸여 나갈 뿐이다.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와 톨킨의 <반지의 제왕> '반지'라는 모티프를 이용하여 이야기를 이끌어 가지만, 그 전개방식이나 방향은 완전히 다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우리가 사는 세상의 결국(end)은 무엇인가? 바그너는 '반지'에 의해 파괴되는 세상을 그리고 있지만, 톨킨은 '반지'를 파괴하는 세상을 그리고 있다.

 

19세기의 인물인 바그너와 20세기의 인물인 톨킨의 이야기는 같을 수 없다.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21세기, 우리는 바그너와 톨킨을 안다. 그런 우리의 경험은 그들의 경험과 다르다. 그러므로, 우리도 '반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새롭게 써 내려가야 할 것이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