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Great Disasters / 두 가지 거대한 재앙]
Do not stand aloof from your reality. Do not be a bystander at the presence of something happening.
우리는 지금 두 가지의 거대한 재앙을 마주하고 있다. 하나는 자연적 재앙(natural disaster)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재앙(social disaster)이다. 성질은 다르나 원인은 같다. 모두 '인간'에게서 비롯된 재앙이다.
우리는 지금 '기후변화'의 자연적 재앙을 마주하고 있다. 재앙이 닥쳤고 지금 그 재앙 안에서 고통받고 있는데 여전히 '감사'를 외치고 있다면, 그것은 자기를 속이고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이다. 평안하지 않은데 평안하다고 외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는가.
또한 우리는 지금 '불평등'의 사회적 재앙을 마주하고 있다. 자본주의를 등에 업고 달리는 인간의 욕망은 더 이상 멈출 수 없는 폭주 기관차가 되었다. 큰 사고를 일으키며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내고 강제로 멈추어 서게 될 것이다.
인류는 어떤 최후를 맞이하게 될까. 물론 남은 자들은 존재할 것이다. 남은 자들이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일 뿐, 하나님께서 택하신 남은 자들 외에 모든 인류는 재앙의 심판을 피하지 못하고 멸망하게 될 것이다.
이단이 판을 치기 딱 좋은 환경이 조성되었다. 습하고 어두우면 바퀴벌레가 들끓듯이, 이단들이 들끓을 것이다. '지혜'가 없는 자들은 이단의 '후려치는 언사'에 모두 넘어갈 것이다.
이단들은 종말을 말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이 종말의 증거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게 이단들은 사람들의 마음에 '불안'을 조성할 것이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불안에 넘어가는 사람들은 그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이단들의 말에 더 추종할 것이다.
이단들은 그들의 불안 심리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착취할 것이다. 처음부터 착취하지 않을 것이다. 충분히 불안을 조성한 뒤 착취할 것이다. 충분한 불안이 조성되어야 본인이 착취당하는지 모르고 자발적 착취를 당할 것이다.
이단들은 '이 세상에 소망이 없다'고 강변하며 '저 세상에 관심을 둘 것'에 대하여 강력하게 요청할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 이 세상에서 발생하고 있는 재앙들(자연적 재앙과 사회적 재앙 / 기후변화와 불평등의 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만들 것이다.
기후변화와 불평등의 문제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은 세속적인 사람들이요 이 세상의 것에 집착하는 사람들로 치부할 것이다. 그러면서 본인들은 이 세상을 초월한, 대단한 존재인 것처럼 자신들을 치장할 것이다.
이단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우리 삶의 현실의 문제에서 초연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삶의 문제들에 대하여 '구경꾼(bystander)'이 되게 한다는 것이다.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에 나오는 등장인물 중 제사장과 레위인을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현실의 문제를 못 본채 지나치게 만든다는 것이다. 결국, 제사장이나 레위인처럼 거룩한 것 같으나 위선적인 인물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참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참 인간이 된다는 것은 현실의 문제를 초월해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다. 현실의 문제에 '참여'하게 될 때 비로소 참 인간,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성육신(incarnation)은 '참여(participation)'이다. '참여'함으로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리스도가 참 인간이 된 것은 인간 운명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 된 것은 하나님의 운명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참여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존재'하지 못한다.
우리는 지금 두 개의 거대한 재앙을 마주하고 있다. 그 재앙은 피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참여'할 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불안하고 두렵고 떨리더라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담대한 마음(파레시아)를 가지고 기후변화의 문제에 참여하고, 불평등의 문제에 참여할 때 우리는 파국을 면할 수 있다.
구원은 초연이 아니라 참여이다.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의 잘못을 가슴 깊이 회개하며, 두 가지 거대한 재앙에 참여하여 구원을 얻는 참 사람, 참 그리스도인 되기를 소망한다.
Do not stand aloof from your reality. Do not be a bystander at the presence of something happ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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