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신교회의 문제점: 정치철학의 부재]

 

다음은 바울 피우스 11(Pius XI) 1931년도 <사회의 혁신>에 대한 회칙의 일부이다.

 

"사람들의 번영을 구성하고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재화들이, 자신의 힘으로 직접 일을 하는 손을 통해서건, 혹은 그들의 노동생산성을 놀라울 정도로 높여주고 있는 기구들 혹은 기계들을 통해서건, 하여튼 일하는 자들의 손들로부터 계속 생산되고 있는 것을 우리들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있지 않은가?

국민 모두의 힘을 다한 공동의 노력이 없었다면, 그 어떤 국민이라 할지라도 결핍과 가난으로부터 높은 수준의 번영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 중에는 지도자 역할을 맡은 자들도 있고, 직접 노동을 담당하고 있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자명한 사실은, 만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선하심 속에서 자연의 부요함과 각종 수단들, 보배들, 그리고 자연의 힘들을 우리에게 미리 허락해 주시지 않았다면 인간들이 아무리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해도 그것은 아무 소용도 없고 열매도 없은 일이 되었을 것이며, 그 노력 자체가 가능하지도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우리의 일이라는 것이 자연의 선물들에 대하여 우리의 육체적 혹은 정신적 능력들을 적용시키고, 또 그 선물들을 사용하는 것 외에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고 있는 자연법은 지금 인간들의 필요를 위해 자연의 선물들을 사용함에 있어 올바른 질서가 보존되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 질서는 각각의 사물이 그 자신의 주인을 갖는다는 사실 속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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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직에서 교황 피우스 11세는 '국가들의 부는 노동자들의 노동에서 나온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교황이 이 문서에 정립하는 정치철학은 자본과 노동의 결합이다. 어떤 자본도 노동 없이 존재할 수 없고, 어떤 노동도 자본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라고 이름 붙여진 경제-사회체제를 보면 노동보다 자본이 우선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실제 우리가 경험한 역사에서 자본가는 노동자들의 우위에 올라서서 노동자들을 자신들의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그래서 수많은 사회적, 정치적 문제들이 발생했다. 자본이 노동을 지배해 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가톨릭은 1981년의 <노동 회칙>을 통해서 그 문제를 지적하며, 노동이 자본보다 우선되어야 하며, 자본은 항상 노동의 결과라는 것을 명시한다. 이러한 회칙들은 자본주의를 견제하며, 노동의 가치를 높이고, 자본가가 노동자를 '종부리듯 마음대로' 대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가들이 득세하는 정치 집단은 자본가에게 유리한 쪽으로 법제정을 하고, 자본가와 결탁한 국가 정부는 자본가에게 유리한 쪽으로 행정을 펼치며 규제를 풀어간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병폐를 견제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종교세력' 밖에는 없다. 가톨릭은 여러 회칙을 통해서 그 일을 해왔다. 물론 실효성 측면에서는 의문이 남지만 말이다.

 

나는 뼛속까지 개신교인이지만 때로 가톨릭이 부러울 때가 있다. 바로 이러한 가톨릭의 정교한 '정치철학'을 접할 때이다. 가톨릭은 사회/경제/정치 문제에 대하여 교회의 회칙을 통해 본인들의 입장을 밝혀왔다. 그것은 대사회적 메시지가 되고, 가톨릭 신자들의 생활 규범이 되며, 교회가 국가 또는 사회에 대하여 어떠한 협력과 견제를 해야 하는 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물론 그러한 시도들이 언제나 성공을 거두고 세상을 변혁시키며 효과를 거두었던 것은 아니나, 가톨릭의 '정치철학'은 현실 세계에 대하여 눈을 뜨게 만드는 가교 역할을 해 온 것은 사실이다.

 

나는 한국 개신교의 가장 큰 문제점을 '정치철학'의 부재로 꼽는다. 각교단이 보유하고 있는 '교단헌법'은 매우 어설플 뿐만 아니라, '정치철학'을 전혀 담아내고 있지 않다. 각 교단의 교단장 명의로 발표되는 대사회 메시지는 수준이 너무 낮고, 철학과 신학을 기반으로 한 담화가 아니라 감정과 집단이기주의를 기반으로 한 담화가 태반이다.

 

한국 개신교는 '성경공부'는 열심히 하지만, 정작 성경이 말하고 있는 사회적/정치적 메시지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지만, 정작 성경의 메시지를 오늘날 우리 시대의 언어로 풀어내는 데는 너무너무 서툴다. 그렇다 보니, 성경공부를 그렇게 많이 하면서도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예언자적인 목소리를 내지도 못하고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한다.

 

한국 개신교회가 성경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 '정치철학'에 관심을 두지 않고, 정치철학을 체계적으로 정립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큰 건물을 세우고 아무리 많은 신자들을 모은다 해도, 그것은 모래 위에 지은 집에 불과할 것이고, 사회의 그림자로 밖에 머물지 못할 것이다. 누가 그림자를 무서워하며, 누가 그림자를 따르겠는가. 그림자를 무서워하고 그림자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림자에게 속아넘어간 '바보들' 밖에 더 있겠는가.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