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절규]
다윈이 <종의 기원>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 인간은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이 땅의 존재, 자연의 일부라는 것이다. 그러나, 초월적 형이상학에 바탕을 두고 성장한 기독교는 다윈의 그러한 주장을 용납할 수 없었다.
<종의 기원>은 1859년에 출판되었다. 그 후, 160 여년이 흘렀다. 다윈의 절규를 무시한 기독교는 현재 생태의 위기에 무슨 책임을 지고 있는가? 여전히 초월적 형이상학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이데아인 천국을 꿈꾸고, 그곳에 가는 것을 삶의 최종 목표로 삼고 있는가? 언제까지 하나님이 지으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긍정한 이 세계와 인간을 '죄'라는 형이상학적인 논리를 덮어씌워 이 세계와 인간을 이 세상에서 쫓아내려고 하는가?
우리에게 '어머니 지구' 이외에 다른 세상이 있는가? 우리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내가 알지도 못하는 '죄'의 굴레를 뒤집어 쓰고 '죄인'으로 살아야 하는가. 왜 우리는 생명을 긍정하지 못하고 부정해야만 하는가. 생명을 무한 긍정하신 하나님의 창조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온데 간데 없어지고, 왜 우리에게는 죄만 남았는가. 누구의 잘못인가. 누가, 왜 그런 못된 짓을 해놓았는가.
진화의 신학적인 의미는 우리가 이 땅의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라는 것이다. 다윈의 절규를 왜곡하여 이 땅을 보듬지 못하게 하려는 자, 이 땅을 떠나야 할 자들은 바로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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