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2011. 5. 16. 23:42

뱀에게

 

너는 주는 것도 없이 미움을 산다

사람들에게 특별히 해악을 끼치는 것도 아닌데

너는 늘 혐오의 대상이다

마주치면 날름거리는 혀가 건방져 보여설까?

비비 꽈대는 몸뚱어리가 재수없어설까?

술 취한 듯 비틀거리며 도망치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워설까?

 

네가 악명 높다 할지라도

그래도 너는 영광스럽다

인류 최초의 인간과 함께 위대한 과업을 이루었으니

범죄의 현장에 있었던 너

타락의 현장에 있었던 너

정죄의 현장에 있었던 너

너를 고발하고 있는 거룩한 책을 아느냐?

그 거룩한 책에 등장하는 너는

영광스럽다

 

뱀아 희망을 가져라

거룩한 책에 등장한 네가

토사구팽 당하겠느냐?

속죄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땅을 기어 다니다 보면

새하늘과 새땅을 맞이하리라

그것이 너뿐만이 아니라

너를 통해 타락한 모든 인류의

희망이 아니겠느냐!

 

 

* 새로운 사무실을 얻게 되어 좋아했는데, 며칠 전, 입구 옆에 늘어진 뱀껍질을 발견했다. 뱀이 허물을 벗어놓은 것이다. 실물도 아니고, 벗어놓은 껍데기만 봐도 혐오스러운 뱀은 참으로 불쌍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생긴 것 때문인지, 거룩한 책에 등장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생각만 해도 혐오스러운 뱀도 하나님의 새창조 때에는 오명을 벗고 인류와 화평케 되리라는 기대를 품어본다.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면산  (1) 2011.08.18
어느 부활절 아침의 기억  (4) 2011.05.28
<창조문학> 등단 당선작  (2) 2011.05.01
눈물은 엄마다  (2) 2011.04.20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1  (1) 2011.04.18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