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2. 2. 6. 06:22

2012 2 5일 주일 예배 설교

본문: 마가복음 1:29-39

제목: 복음은 능력이다

 

마가복음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은 제자를 부르시는 것에서부터 당신의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의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고 더러운 귀신을 내쫓을 것을 행하십니다. 이는 모두 하나님 나라의 임박성과 관련이 있는 행동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가까이 온 하나님 나라를 향해 온 존재를 트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와 어울리지 않는 악의 세력이 물러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두 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치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도여행을 떠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가버나움의 회당에서 나와 시몬의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한 집안의 어머니가 누워 있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어머니가 병석에 누워 계신 관계로 그 집은 당연히 집안 꼴이 말이 아니었을 겁니다. 악은 늘 이러한 모습을 띱니다. 그 위치에서 본인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각자의 자리가 있습니다. 그 자리가 하나 비면 주변 사람들의 삶이 여간 버거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축구 경기에서도 선수 하나가 반칙을 여러 번 해서 퇴장 당했을 경우, 그 선수가 맡았던 포지션이 비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에게 그만큼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악은 그런 식으로 공동체의 활기를 빼앗고, 공동체를 우울하게 하고, 공동체를 수렁에 빠뜨립니다.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습니다. 마가복음 저자는 장모의 열병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 열병을 우습게 볼 수 없습니다. 옛날은 요즘과 달리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열병은 곧 죽음으로 치달을 수 있는 치명적인 병이었습니다. 열병으로 누워 있는 시몬의 장모를 예수님께서 일으키십니다. 마가복음의 저자는 이것 또한 장황하게 묘사하지 않습니다. 너무도 간단하게, 몇 마디로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몇 마디 안 되는 짤막한 표현이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두 개의 단어에 지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일으키다(egeiro)”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종들다(diakoneo)”는 것입니다. 우선 일으키다라는 단어는 마가복음에서 매우 강력한 의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일으키다는 행위는 어떤 사람의 힘이 다른 사람에게 전가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의 장모를 일으키신 것처럼, “일으키다는 힘이 전가되는 것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시몬의 장모가 예수님에 의해 일으킴을 받았다는 것은 그녀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맛보았다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시몬의 장모에게 전가된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란 하나님의 능력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복음서를 볼 때 조심해야 할 것 중 하나인데, 하나님 나라는 어떠한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일으키다라는 말이 이렇게 의미 있는 말이 되는 이유는 마가복음 16 6절에서 예수님은 이 단어를 본인에게 직접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6 6절은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기사가 담겨 있습니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여기에서 시몬의 장모에게 쓰였던 일으키다라는 단어는 그가 살아나셨고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조금 잘못된 번역이고, 그 어감이 살아나지 않는 번역입니다. 이 부분을 정확하게 풀어서 번역하자면, “예수는 하나님에 의해서 일으켜졌다.”입니다.

 

그러니까, 시몬의 장모가 일으켜진 사건은 예수님이 죽음에서 사흘만에 일으켜진 부활 사건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시몬의 장모가 일으켜진 사건과 예수님이 부활한 사건이 동일한 사건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 위에 임한 하나님의 능력이 동일하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몬의 장로가 일으킴은 받은 사건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온 것에 대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이 일으킴의 사건은 곧바로 시몬의 장모가 예수님과 제자들을 수종 드는 일과 연관 됩니다. 우리가 눈여겨 살펴야 할 두 분째 단어가 여기서 등장합니다. 우리 나라 말로 수종들다로 번역된 이 단어는 영어로 “serve”입니다. 사실 수종들다는 어감이 좋지 못합니다. 시쳇말로 누구 밑에서 딱가리 또는 시다바리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는 심부름 정도의 하찮은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수종들다보다는 우리에게 조금 더 친숙하고 점잖은 단어로 번역하면 섬긴다정도가 나을 듯 합니다. 그러니까 시몬의 장모가 열병에서 일으킴을 받아 예수님과 제자들을 수종들었다는 것은 심부름 정도의 하찮은 일을 했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이로움을 끼칠 정도로 자발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섬겼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하냐면, 이것 또한 예수님 당신의 사역과 연관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와 똑 같은 단어를 당신의 사역의 성격을 설명하시는 데 사용하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10:45). 시몬의 장모가 수종들었을 때를 표현했던 그 단어와 예수님께서 섬기려오셨다고 말씀하실 때의 그 단어는 같은 단어입니다. 예수님의 섬김은 시몬의 장모의 섬김처럼 수종 드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열병에서 일으킴을 받은 시몬의 장모가 본문에서 어떠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 지 알 수 있습니다. 시몬의 장모는 단순히 병석에 누웠다 고침을 받은 가엾은, 그러나 축복받은 여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그 몸에 지닌, 섬기는 참된 제자였던 것입니다.

 

마가복음의 진술에 의하면, 예수님은 이 후에 당신에게로 오는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십니다. 복음서에서 묘사되고 있는 병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한 질병이 아닙니다. 병원 가서 치료 받고, 약 몇 알 먹으면 낫게 되는 그러한 단순한 병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은 훨씬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병은 악의 보이는 실체였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병든 사람은 우선 가정의 큰 짐이 됩니다. 가정의 각자 구성원은 곧 생계 수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자녀를 많이 낳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병은 가정의 경제를 위태롭게 했습니다. 이것은 곧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빼앗아 가는 데까지 연결됩니다. 가정이나 공동체에서의 영예로운 지위를 박탈당함으로 소외된 자로 전락하게 됩니다.

 

요즘 시대는 병이 이러한 식으로 가정이나 사회에서 작용하지 않습니다. 가정에 병든 사람이 한 명 있다고 그 가정의 생계가 치명적으로 어려워지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웬만한 병은 모두 치료가 가능합니다. 또한 병들었다고 사회적으로 소외당하는 일도 거의 없습니다. 요즘에 우리가 병에 대해서 생각하는 그러한 느낌으로 성경에 등장하는 병을 바라보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예수님 당시(고대 사회)의 사람들에게 이란 자신들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악의 실체였습니다. 그래서 병을 고칠 때 귀신이 나갔다는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병을 일으키는 악의 실체를 귀신으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은 이렇게 악의 실체가 무너진다는 것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우리의 삶을 무너뜨리는 실제적인 세력이 맥을 못 추고 물러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며 하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선포는 기쁜 소식(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드는 원인이 귀신 때문이라는 것을 믿는 사회에서 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어쩔 수 없는 문제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아마도 사는 동안 이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그 문제들 때문에 낙심하고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통해 우리에게 온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삶 속에 실제적으로 깃드는 능력입니다.

 

열병으로 누워 있던 시몬의 장모처럼, 우리는 우리의 삶의 문제들 때문에 열병에 걸린 것처럼 누워 있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삶의 문제들은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가 우리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그리고 우리가 속한 더 큰 공동체 내에서도 그저 주저 앉아 웅크리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서도 우리가 힘을 낼 수 있는 이유,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에게 들여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우리에게 들려오는 이 복음은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우리를 일으켜 세웁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하게 창조하신 그 목적에 맞게 우리 각자를 있어야 할 자리로 복귀시키십니다. 우리가 우리를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을 듣고도 일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헤매고 있는 이유는 그 복음에 우리의 자신의 온 존재를 던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손이 시몬의 장모의 손에 닿았다는 것은, 시몬의 장모가 복음에 온 존재를 던졌다는 뜻입니다. 그럴 때 시몬의 장모는 일으킴을 받았습니다. 병이 나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 수종들 수 있었습니다.

 

복음은 능력입니다. 복음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온 존재를 걸고 살 때 우는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하는 결정적인 사건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입니다. 부활 사건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신 사건입니다. 이 부활 사건으로 인하여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그 자체가 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 나라 자체이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에게 집중하면서 살아갈 때 복음의 능력, 일으킴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에게 집중하면서 살아갈 때 일으킴을 받아 우리가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 하나님과 이웃을 섬길 수 있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음의 능력에 우리의 삶을 맡겨 봅시다. 그 능력이 우리를 새롭게 할 것입니다. 우리의 병든 몸을 낫게 할 것이며, 우리의 병든 마음을 치유할 것이며, 우리의 무너진 삶을 회복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공동체를 위하여 해야 하는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문제는 복음의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능력에 온 삶을 걸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이 시간 결단하십시오. 복음의 능력이 우리의 삶을 뒤 덮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 드립시다.


'바이블 오디세이 I'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갑절의 영감을 구하는 자가 되라  (1) 2012.02.22
예수님의 소외  (2) 2012.02.15
사랑은 덕을 세운다  (3) 2012.01.30
종말론적 신앙  (1) 2012.01.23
부르심이란 무엇인가?  (1) 2012.01.16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