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2. 2. 22. 00:50

2012 2 19일 주일 예배 설교

본문: 열하 2 1- 22

제목: 갑절의 영감을 구하는 자가 되라

 

모 재벌 총수가 기술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중에 한 사람의 기술이 백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을 했습니다. 한 사람의 기술은 단지 백만 명 정도가 아니라 수천만 명, 수억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1769년에 제임스 와트는 방에 있는 난로 위의 주전자에서 물이 끓는 동안 뚜껑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증기기관을 발명했습니다. 거대한 기계를 움직일 수 있는 원리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 이후에 일어난 산업 혁명과 기술의 발전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1813년에는 스티븐슨이 바로 그 증기기관을 이용하여 증기기차를 만들었습니다. 그 이후 일본의 신칸센이나 프랑스의 떼제베에 이르기까지 기차는 전 세계적으로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어왔습니다. 이 기차와 관련해서 전 세계적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의 숫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마차를 타고 여행하다가 갑자기 말이 쓰러지는 바람에 속수무책으로 밤을 꼬박 새워야만 했던 포드가, 말이 없이도 달릴 수 있는 마차를 만들기로 하고 자동차를 발명한 것이 1892년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20년이 지난 오늘날 전 세계에 여러 자동차 회사들이 등장했습니다. 그 자동차 회사들과 관련된 하청공장이나 업체에서 근무하는 사람들과 부양 가족들을 따진다면,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동차로 먹고 사는 지 알 수 있습니다.

 

1903년에 라이트 형제는 비행기를 발명했습니다. 그 이후 1919년 네덜란드의 KLM이 최초의 민간항공회사로 발족한 이래 항공망은 전 세계에 거미줄처럼 퍼져 있습니다. 그러니 비행기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또 얼마나 많겠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개발해야 할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영감이라는 것입니다. 이 영감의 개발을 위해서 2800년 전에 이 땅에 살았던 엘리사라는 인물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엘리사에게는 엘리야라는 훌륭한 스승이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누가 참된 신인지 밝히기 위해 우상 숭배자 850명과 갈멜산에서 대결을 벌여 하나님으로부터 불로 응답을 받았던 영감의 사람이었고, 죽은 자도 살려 낸 능력의 선지자였습니다. 당대에 그와 같은 선지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엘리야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죽음을 보지 않고 육신을 가진 채 승천했다는 전설일 겁니다. 얼마나 그 삶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충만했으면,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웠으면, 육신이 산 채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었겠습니까? 선지자 엘리야는 진실로 영감의 사람이었습니다.

 

열왕기 하 2 1절에서 18절 말씀은 바로 이 영감에 찬 선지자 엘리야가 이 세상을 떠나 승천하는 날의 장면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2 1절에 보니까, 하나님께서 회오리 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에 올리고자 하신다는 표현이 나와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곧 죽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천국으로 데리고 가신다는 말이죠. 그래서 엘리야는 그의 제자, 엘리사와 길갈을 떠납니다. 길갈은 선지자 생도들이 함께 모여 살면서 일종의 수도원 같은 것을 이루어 살 던 곳입니다. 엘리사는 그들과 함께 살았는데, 엘리야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엘리야는 길갈에서 자신의 제자들에게 작별을 고합니다. 그리고 길갈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벧엘로 떠나려 했던 것이죠.  엘리야는 혼자 가려고 엘리사에게 길갈에 남아 있으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죽어도 함께 가겠다고 고집합니다. 엘리사는 매우 고집이 센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위해서 목숨 걸고 덤비는, 매우 집념이 강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3절에서 6절의 말씀을 보면, 이런 식으로 엘리사는 엘리야와 벧엘을 거쳐, 여리고, 그리고 요단까지 함께 여행을 합니다. 길갈에서 벧엘로, 그리고 여리고로, 그리고 요단으로엘리야의 마지막 인생 여정길에 함께 한 엘리사.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누군가와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한다는 것,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죠. 마지막 나날들을 함께 걷고, 함께 자고, 함께 먹고그러는 동안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무엇을 얻었을까? 바로 인생의 지혜를 얻었을 것입니다. 인생의 지혜를 얻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다음 구절을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단강에 이르러, 엘리사는 이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준비를 합니다. 그러면서 엘리야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마지막 몇 날들을 함께 해 온 제자 엘리사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엘리야는 굉장한 능력의 소유자였습니다. 어떤 것을 구하더라도 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아 보였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그런 엘리야에게 무엇을 구하시겠습니까?

 

엘리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것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사가 구한 것은 오직 엘리야가 가지고 있던 영감을, 그것도 갑절의 영감을 요구했습니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 엘리사가 가로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9)

 

왜 엘리사는 다른 것을 다 제쳐 놓고, 엘리야가 가지고 있던 영감의 갑절을 원했을까? 이것이 바로 엘리사가 엘리야에게서 받은 지혜로 선택한 최고의 선물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영감이란 무엇입니까?? 영감은 히브리어로 루아흐’, 즉 영, 생명, 또는 호흡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저 사람은 영감이 충만하다는 말은 저 사람은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자, 하나님의 생명이 충만한 자, 하나님과 더불어 호흡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라고 한 엘리사의 말은, 엘리야가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혔던 것보다 갑절이나 더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히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엘리야에게 충만했던 하나님의 생명력이 갑절이나 자기에게 충만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을 호흡했던 것보다 두 배나 더 하나님을 호흡하면서 살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엘리사가 엘리야에게서 얻은 지혜의 결과였습니다. 무엇이 중요한 지 정확하게 깨달았던 것이죠. 우리는 살면서 이러한 지혜를 꼭 깨우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충고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 1:7). 지혜 있는 자는 어떤 자입니까? 여호와를 경외할 줄 아는 자입니다. 지혜 있다라는 말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이다 라는 말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삶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게 되면, 세상의 그 어떤 것을 준다고 해도 바꾸지 않게 됩니다. 이것을 알았던 엘리야, 그리고 이러한 지혜를 물려받았던 엘리사. 그래서 엘리사는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영이 갑절이나 있기를 바랐던 것이죠. 그런데 왜 갑절이나 바랐을까? 한 번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엘리사처럼 날마다 갑절의 영감을 구하는 주님의 신실한 종이 되어야만 될 줄로 믿습니다. 왜 갑절을 구해야 합니까? 그것은 세상이 점점 더 악해져 가기 때문입니다. 갑절을 구하지 않으면, 어제 보다 더 악해진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엘리야가 활동하던 시대보다, 엘리사가 활동하던 시대는 더 힘든 시대였습니다(엘리야아합왕조, 엘리사예후왕조). 엘리사는 그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내가 활동하는 시대는 스승인 엘리야가 활동하던 시대보다 더 악이 충만해서, 스승 엘리야가 가지고 있던 영감의 갑절을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는 것이 실로 자신 없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갑절의 영감을 구했고, 갑절의 영감으로 위대한 일들을 많이 해 냅니다.


엘리사가 원했던 대로 엘리야에게 주어졌던 영감보다 갑절이나 많은 영감이 주어졌을 때 엘리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첫 번째로 일어났던 일을 13절과 14절이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 가지고 돌아와 요단 언덕에 서서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이르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그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갑절의 영감을 얻은 엘리사 앞에 제일 먼저 일어난 이른 그를 가로막고 있던 요단강이 갈리지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의 영감을 가진 자에게는 그 어떤 것도 장애물이 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영감이야말로 미래를 내다보는 힘이요, 장애물을 뛰어넘는 능력이요, 절망의 골을 메우는 다리입니다. 하나님의 영감을 가진 자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그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가 될 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영감에 찼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성서에 많이 나옵니다. 누가 있습니까? 모세가 있죠. 영감으로 가득 찼던 모세에게는 홍해가 그의 장애물이 될 수 없었습니다. 또 누가 있습니까? 여호수아가 있죠. 영감으로 가득 찼던 여호수아에게는 8000년의 역사를 가진 여리고성이 문제가 될 수 없었습니다.

 

갑절의 영감이 임한 엘리사에게 일어났던 두 번째 일은 19절에서 22절이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그 성읍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우리 주인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나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엘리사가 이르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에 던지며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그 물이 엘리사가 한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에 이르렀더라.”

 

엘리사에게 갑절의 영감이 주어졌을 때 일어난 두 번째 일은, 식물이든 사람이든 전혀 먹을 수 없는 죽은 물이 생명의 물로 되살아난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성읍이 바로 여리고 성읍이었는데, 도시가 오래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땅이 황폐해지고 물이 나빠졌습니다. 환경이 오염된 것이죠. 이렇게 모든 것이 오염돼서 죽어가던 성읍을, 영감에 찬 한 사람, 엘리사가 살려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가득 차 있다면, 우리는 죽어가는 자, 죄에 빠져 죽어가는 자를 살려낼 것이고, 환경이 오염돼서 신음하고 있는 이 지구를 지켜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일 들려오는 뉴스를 들어보십시오. 모두 죽어가는 소식뿐입니다. 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소식뿐입니다. 오래된 성읍, 여리고처럼 모든 것이 하나씩 하나씩 죽어가고 있는 세상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입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생명력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바로 하나님의 영감으로 가득 찬 사람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이 컬럼버스 지역에 영적인 새바람을 불러 일으켜 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여리고성처럼 죽어만 가는 내가 사는 삶의 터전 컬럼버스를 그냥 놓아둘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여리고성과 같이 생명력을 잃어가는 이 컬럼버스 지역을 살릴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갑절의 영감을 구하면 됩니다. 갑절의 영감을 구해서, 컬럼버스를 이런 지역으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컬럼버스 지역은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지역입니다. 참 잘 오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길이고, 그 일은 바로 저와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영감을 개발해야 합니다. 엘리사가 구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의 영을 구해야겠습니다. 그러면, 엘리사에게 일어났던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 삶의 장애물들이 제거될 것이고, 죽어가는 모든 것들을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바이블 오디세이 I'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홍수는 하나님의 새창조 사건이다  (1) 2012.02.27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1) 2012.02.23
예수님의 소외  (2) 2012.02.15
복음은 능력이다  (1) 2012.02.06
사랑은 덕을 세운다  (3) 2012.01.30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