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그리스도인
(디모데후서 3:16-17)
작년(2018년) 2월경 우리 교회를 방문하여 약 두 달 반 동안 우리 교회를 출석하였던 ‘이자경 자매’는 남미 여행을 마치고 현재는 유럽을 여행하는 중입니다. 이자경 자매는 여행 중에 제 설교를 꼬박꼬박 챙겨서 듣는답니다. 그리고, 종종 저한테 엽서도 보내고, SNS 메신저로 근황을 알리고 이런 저런 질문도 합니다. 아래의 글은 이자경 자매가 그동안 여행을 하면서 느낀 점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에 비추어 우리 교회에 대하여 느낀 점에 대해서 간략하게 정리하여 보내온 편지입니다.
“목사님 제가 북미 남미 유럽을 여행하면서 느낀 건데, 이게 틀릴 수도 있어요. 근데 제가 교회에 대해서 느낀 거는 옛날에 개발도상국 시기에 교회는 그 사회에 확실히 물질적으로 제공해 줄 수 있는 게 정말 많았어요. 왜냐하면 선진국에서 재정적인 지원과 문화적인 경험을 가지고 후진국에게 많는 도움을 줬잖아요. 그래서 콘서트나 집회같이 사람들 많이 모이고 하니까요. 그래서 교회가 그 사회 제시해 줄 수 있는 게 선진 문화로 여겨졌는데, 현재 선진국의 교회에서는 그게 아니잖아요.
목사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처럼 더 세련된 문화를 다 돈으로 살 수 있잖아요. 그래서 예전에 개발도상국의 교회에서 행사를 통해서 주님을 만나야 하는 건데 주님은 모르고 행사에만 집중했을 때, 그리고 그거를 그냥 사람들 의식 선에서 좋게 받아들이고요.
그 이상의 신앙적 발전이 없어서 지금은 자본이나 또 약간 팬시해 보이는 사상(낙태, 동성애 등)에 무너진 거 같아요.
하지만 지금도 부자 나라 사람들이 엄청 필요한 게 있잖아요. 예전에도 그랬지만 인정과 사랑과 정말로 나를 지켜 줄 것 같은 공동체. 그런 게 되게 필요한데, 세화교회가 샌프란시스코 중심에 있잖아요. 그래서 더욱 그런 쪽으로 잘 가는 거 같아요.
뭐라 해야 되지. 이런 말 해도 되나요? 선진국형 교회?ㅎㅎ 이 교회가 잘 났다 이게 아니고, 정말 성경을 들여다보고 말씀을 핵을 짚고 이런 거죠. 외형적으로 불어나는데 신경 쓰지 않구요.
그래서 항상 목사님 설교와 초빙 오시는 분들 설교를 들어보면 세화 교회는 성경의 핵을 파고 드는 그런 문화(?)가 잘 되어 있구나라는 걸 느껴요. 그래서 좋아요.ㅎㅎ”
위의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이자경 자매는 우리 교회를 ‘선진국형 교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우리 교회에 대하여 이러한 것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발짝 떨어져서 바라본, 북미와 남미, 그리고 유럽을 여행하며 경험한 교회에 대한 생각을 바탕으로 제시한 우리 교회에 대한 이자경 자매의 평가는 귀기울여 들어볼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는 개발도상국이 아닙니다. 우리 삶의 자리는 선진국입니다. 개발도상국 시기의 교회와 선진국 시기의 교회의 모습은 같을 수 없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개발도상국 시기 교회의 선교전략과 선진국 시기 교회의 선교전략이 같을 수 없습니다. 개발도상국 시기에는 물질적 지원과 문화적 지원을 통해서 사람들을 교회로 이끌 수 있었지만,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물질적 지원과 문화적 지원은 더 이상 통하는 선교의 도구가 아닙니다. 이미 사회 안에서 충분히 물질적 풍요와 문화적 다양성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간절히 필요한 게 있습니다. 그것을 위에서 이자경 자매가 정확히 짚었습니다. “인정과 사랑과 정말로 나를 지켜 줄 것 같은 공동체”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선진국에서는 ‘진검승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것도 위에서 이자경 자매가 잘 짚어주고 있죠. “성경을 들여다보고 말씀의 핵을 짚는 교회의 문화”가 그것입니다.
선진국에 사는 사람일수록 외롭습니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문화 체계가 사람을 그렇게 외롭게 만듭니다. 그래서 선진국일수록 ‘인정과 사랑’을 주며, ‘나를 지겨 줄 것 같은 공동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물질적 풍요나 문화적 자원을 통해서 사람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말씀’으로 사람을 이끌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주목하십시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All Scripture is God-breathed and is useful for teaching, rebuking, correcting and training in righteousness),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so that the man of God may be thoroughly equipped for every good work).”(딤후 3:16-17).
예수 사건에 휘말린 사람들은 ‘왜 내가 그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는지’를 알기 위해서, 그리고 ‘그 사건의 휘말림의 의미와 결론’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성경을 들여다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치, 어떠한 사람이 어떠한 사건에 휘말려서 그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 사건의 전말을 살피고, 법정 다툼을 벌이기 위해서 ‘법전’을 들여다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성경을 가장 안 읽는(듣는) 시대에 살고 있기도 합니다. 예전(개발도상국시대)에는 교회의 행사가 가장 재밌는 문화행사였습니다. 그러나 요즘엔 주변에 재밌는 문화행사(여가문화)가 많습니다. 교회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습니다.
예전(밥 한 끼 먹는 게 힘든 시절)에는 교회에 나오면 밥도 주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었지만, 지금은 교회가 아니어도 밥 먹을 데가 많고, 교회가 아니어도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많습니다. 예전에는 ‘쌀 교인’이라고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쌀을 주니까, 그거 받으러 나온 것이죠. 그렇게라도 와서 복음을 듣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선진국에서 쌀 준다고 교회 나오는 사람은 더 이상 없습니다. 교회가 아니어도, 그 쌀은 정부에서 얼마든지 받을 수 있습니다.
물질과 문화가 풍요로워졌지만, 사람들은 점점 더 인정과 사랑에 목말라 갑니다. 자신을 지켜줄 든든한 공동체를 찾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주의(신자유주의/시장주의)는 과학기술을 도구 삼아서 각 사람을 떼어놓고, 각 사람을 시장 삼았기 때문입니다. 편해지기는 했지만, 인정과 사랑은 없어졌고, 존재가 더 불안해졌습니다. 자기가 자기의 삶을 감당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살기 때문입니다.
개인주의/사생활은 현대 사회에 가장 중요한 윤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개인과 사생활을 존중해야 합니다. 요즘 시대는 그것을 하지 못하면 윤리적이지 못한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사람들을 외롭게 만듭니다. 자기의 짐을 다른 누구에게 지울 수 없습니다. 각자의 삶을 각자가 책임져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삶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죽는 것도 개인의 일이고 사생활이다’라고 말이죠.
죽음에 대한 애도의 시간이 얼마나 짧은 지, 결혼식장에서 가정을 공장에서 찍어내듯 찍어내는데, 장례식장에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음을 공장에서 찍어내듯 짧게 애도하고 맙니다. 다음 손님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며칠 지나면, 마치 그 사람은 존재한 적이 없었던 사람인 것처럼,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갑니다. 그의 죽음은 그의 일이지, 나의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는 것도, 죽어가는 것도, 우리는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사는 것도 외롭고, 죽는 것도 외롭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정과 사랑에 목말라 있고, 자기를 지켜줄 공동체를 간절히 찾습니다. (지금 시대에 이단 사이비 집단이 더 판을 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현대 그리스도인, 선진국에 사는 그리스도인은 다른 것으로 만족을 얻을 수 없고, 다른 것으로 이웃에게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진검 승부를 해야 합니다. 물질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으로는 안 됩니다. 이미 물질과 문화의 풍요로움이 인간의 마음, 영혼을 풍요롭게 하지 못한다는 것은 판명나지 않았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진검 승부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 진검이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그 어느 것도 만족을 주지 못하지만, 성경의 말씀은 영혼을 의롭게 합니다. 요즘 그 어떤 것이 나를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인도합니까? 그저 나를 시장(market) 만들어서 나한테 무엇인가 빼먹으려만 하죠. 자본주의(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 스스로를 착취하고, 누군가에게 착취당하면서 살고, 누군가를 착취하면서 삽니다. 구조 자체가 악합니다. 그렇다보니, 그 악에 노출된 사람들이 견디지 못하고, 절망하고 좌절하는 겁니다. 선한 일을 하지 못하고, 결국 악한 일을 합니다. 악한 일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만들어 줍니다. 성경을 들여다 보고,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새롭게 합니다. 우리를 변화시켜, 선한 일을 하도록 준비시켜 주십니다. 성경을 암송하시고, 필사하십시오.
요즘엔 성경을 직접 들여다 보는 것보다 설교자의 설교 듣는 일을 많이 합니다. 설교 많이 듣는 것을 통해서, 성경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물 속에 들어가지 않은 상태에서 수영을 배워보겠다고 하는 무모한 일에 불과합니다. 물 속에 들어가서 수영 강사의 지시에 따라 몸을 움직여야 수영을 배우는 겁니다. 그런데, 물 속(성경)에 들어가지도 않은 상태에서 수영 강사(설교자)의 지시만 듣는다면, 그 사람이 수영을 잘 하게 될까요?
우리 교회가 ‘선진국형’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함께 ‘선진국형’ 교회를 세워 나가길 원합니다. 인정과 사랑이 넘치고, ‘나를 지켜줄 것 같은 공동체’를 세워나가길 원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경을 들여다보고 말씀의 핵을 짚는 교회의 문화”가 잘 정착되기를 원합니다.
이자경 자매의 눈에는 우리 교회가 그러한 것을 잘 하고 있는 ‘선진국형 교회’로 보인 모양입니다. 그런 통찰을 우리에게 전해준 것이 참 고마운 일이죠. 한 발짝 떨어져서 보는 사람들의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눈에도 그렇게 보여야 하고, 우리 스스로가 그러한 목표를 가지고 교회를 세워 나가는 것이 더욱더 중요합니다. 우리 모두가 잘 하고 있다는 자부심 또는 자신감을 가지고, 서로 협력하며 더욱더 분발하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세화 시대, 세화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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