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읽는 법을 배워야 하는 이유]

 

4세기에 활동했던 사막의 교부 에피파니우스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습니다.

 

“성경에 대한 무지는 절벽이요 깊은 심연이다.”

 

기독교 영성가들은 하나님께로 가는 ‘길’에 대한 탐구를 진지하고 처절하게 했습니다. 몸의 행실을 죽이고, 오롯이 하나님과 대면하기 위하여 무던히도 애썼습니다. 그 중에 폰투스의 에바그리우스(c.345-377)라는 사막의 교부가 있습니다. 이 수도사가 개발한 영성은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 가운데 있을 때 우리의 생각을 어지럽히고 산만하게 방해하는 여덟 가지의 악한 생각 유형을 밝히고, 그것을 이 길 힘인 하나님의 말씀을 제시한 것입니다.

 

에바그리우스가 밝힌 여덟 가지의 악한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탐식’

(2) ‘음욕’

(3) ‘탐욕’이 그 뒤를 잇고,

(4) ‘슬픔’

(5) ‘분노’

(6) ‘아케디아’가 있고,

(7) ‘헛된 영광’

(8) ‘교만’이 있습니다.

 

1)~3)은 인간의 기본 욕구입니다. 4)의 슬픔은 인간의 기본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 느끼는 좌절감의 감정입니다. 그래서 이 슬픔은 시기나 질투의 감정으로 나타나 인간을 괴롭힙니다. 5)의 분노는 슬픔의 시기가 지나면 오는 것인데, 인간은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 처음에는 슬픈 감정에 휩싸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슬픔이 분노로 바뀝니다. 대개 타자(other people)를 향한 폭력은 이 감정에 휩싸이게 될 때 발생합니다.

 

6)의 ‘아케디아’는 한국말로 옮기기 힘든 용어인데, 권태, 절망, 무기력, 우울 등의 감정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이 아케디아가 무서운 것은 이 감정은 사람을 자살로 이끄는 치명적인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슬픔과 분노의 시기를 지나면, ‘아케디아’의 상태, 즉 우울한 상태가 되고, 이때는 타자를 해치는 게 아니라 결국 자기 자신을 해치게 됩니다.

 

7)의 헛된 영광은 ‘자기애, 자기의(self-righteousness), 인정욕구’를 의미합니다. 자기애가 강하고, 자기의를 표출하며, 인정욕구를 갈망하는 사람은 언제나 모든 것이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야 직성이 풀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헛된 영광을 구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그러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조차 모릅니다. 불쌍한 인생이지요. 그리스 신화에서 나르키소스(Narcissus)가 가졌던, 그런 욕망이죠. 이러한 상태를 우리는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라 부릅니다. 나르키소스는 물가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그것에 매혹되어 결국 그 환영을 쫓아 물에 빠져 죽게 됩니다.

 

8)의 교만은 ‘다른 사람보다 자기를 위에 올려놓은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교만은 단순히 자기를 다른 사람보다 낫게 여기는 행위가 아닙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자리를 두고 다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 그것이 교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자신은 하나님이 아니라고 겸손한 척하면서, 결국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다른 사람을 판단합니다. 그래서 교만은 결국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는 최고의 악한 행동인 것이죠.

 

에바그리우스는 이렇게 여덟 가지의 악한 생각을 제시하고, 이것을 이길 힘은 성경을 읽은 데서 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각각의 악한 생각에 대응하는 성경 말씀을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위의 악한 생각 중에서 ‘아케디아’에 대한 대응 말씀을 에바그리우스는 이렇게 제시합니다.

 

‘아케디아’의 사례 중 ‘아케디아에 빠졌을 때 형제들에게 얼른 가서 위로를 받고 싶다는 유혹’에 맞서 주님은 시편 77편 3-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영혼은 위로도 마다하네. 하나님을 생각하니 즐거워지네. 내가 이 말을 하니 내 얼이 아뜩해지네” (『안티레티코스』 VI, 24).

 

우리는 성경 읽는 법을 배우는 것, 성경 읽는 것의 중요성을 잘 알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듯합니다. 요즘엔 스마트폰으로 성경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전에 스마트폰이나 다른 전자기기가 없어 그냥 성경책을 손수 펴서 보아야 할 때보다 성경을 더 안 읽는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을 열어서 성경을 읽을라 치면 그보다 재밌어 보이는 온갖 자극적인 기사나 영상이 우리의 시선을 빼앗아 갑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왕도는 없습니다. 스마트폰을 좀 내려놓고, 아날로그식으로 종이 성경책을 곁에 가까이 두고 수시로 성경을 들여다 보는 것이 최선입니다. 성경을 왜 읽어야 하는 지 모르겠다고, 혹시, 투덜거림이 내 안에서 올라오는 분이 있다면, 신앙의 선배로부터 배워보세요. 성경은 하나님께로 가는 그 험난한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최고의 안내자입니다. 성경은 힘입니다. 이 힘을 잃지 마세요. 힘이 있어야 길을 끝까지 잘 걸어갈 수 있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힘인 성경을 가까이 두고, 자주, 펴서 읽어보세요. 성경이 힘을 주고, 길이 되어 줄 겁니다. 성경(말씀)은 우리의 최종병기입니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