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누가복음 2:39-52)
예수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누가복음에만 나온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탄생, 난 지 팔 일만에 받는 할례의식, 그리고 첫째 아들이 드려야 하는 대속제사 등을 전하고 있다. 주의 율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친 예수님은 나사렛으로 돌아와 유년기를 보낸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유년기를 압축적으로 묘사한다.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40절).
누가복음은 네 개의 동사를 이용하여, 예수님의 육체적, 지적, 그리고 영적 성장을 그리고 있다. 그는 자랐고, 강해졌고 (이것은 육체적 성장이다), 그리고 지혜가 충만해 졌고,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머물렀다. 특별히, 지혜는 대개 ‘소피아’로 표현하는데,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지혜를 표현할 때, ‘소피아’말고 ‘쉬네시스’(47절)라는 말로 예수님의 지혜를 표현한다. 예수님의 지혜는 소피아와 구별되는 ‘총명함’, ‘고도의 이해력’을 말한다.
예수님의 성장을 나타내 주는 증거는 유월절 순례 도중 일어난 일화를 통해서 드러난다. 유대인에게는 3대 절기가 있다(유월절, 오순절, 장막절). 3대 절기 때가 되면, 13세 이상의 유대인 남자는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전에서 하나님께 얼굴을 보여야 했다. “네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출 23:17).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일 년에 세 번만 교회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ETC 크리스천이라고 부른다. (Easter, Thanksgiving, Christmas에만 교회 와서 얼굴을 보이는 사람들을 말한다.)
유월절 순례를 마치고, 예수님의 가족은 다시 고향 나사렛으로 가는 중이었다. 예수님의 부모님은 도중에 12살 먹은 어린 아들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들은 놀라서 오던 길을 되돌아 갔는데, 사흘 뒤에, 성전에서 아들을 발견한다. 거기서 예수는 율법 선생들과 토론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발견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그에게 말한다.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를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So, why have you treated us this way? Behold, Your father and I have been anxiously looking for you.”(48).
이에 대하여, 예수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Why is it that you were looking for Me? Did you not know that I had to be in my Father’s house?”(49). 누가복음은 이렇게 말하는 예수의 말을 그의 부모가 이해하지 못했다고 기록한다.
여기서, 가장 대비되는 것은 예수의 어머니가 ‘your father’라고 한 것과, 예수가 ‘my father’라고 한 것이다. 여기서 ‘your father’는 요셉을 가리키고, ‘my father’는 ‘하나님’을 가리킨다. 두 개의 ‘fathers’가 절묘하게 교차되고 있다. 누가복음은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이라는 말에서 ‘해야 마땅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는 ‘데이’라는 동사를 써서,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인정하고 정당화하는 예수님의 ‘성장’을 그리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성장’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통찰을 얻게 된다. 예수님에게 있어 성장은 두 가지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식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육신의 아버지가 있다. 그런데, 성장하면서 우리는 육신의 아버지 외에, 하늘 아버지가 계신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이게 성장이다. 육신의 아버지는 영원히 우리를 돌보아주지 못하지만, 하늘 아버지는 우리를 영원히 돌봐 주신다.
육신의 아버지의 역할이 이런 것 아니겠는가. 자기 자신이 영원히 돌봐 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영원히 돌봐 주시는 하늘 아버지에게 그 소유권을 넘기는 것이다. 육신의 아버지가 자식에게 모든 것을 다해주려 하기 보다, 계속하여 하늘 아버지에게 양육권을 넘기는 것이 중요하다. 육신의 아버지의 성숙은 이런 것이다. 그리고 아이의 성숙은 육신의 아버지가 아닌 하늘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분께 계속하여 가까이 다가서는 것이다.
이러한 성장은 우리의 삶 속에서 매우 실제적인 영향을 미친다. 육신의 아버지는 영의 일을 자식에게 가르치지 못하고 육의 일을 가르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리고 육의 유산만 남겨주어 육신의 죄를 짓게 만들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러나, 하늘 아버지의 양육(돌봄)을 사모하도록 훈련된 자식은 하늘 아버지로부터 영의 일을 배워 영적인 삶을 살 수 있다. 무엇보다, 기도를 드릴 때, 하늘 아버지에게 간절한 기도를 드리는 법을 배워, ‘아버지’라는 용어가 가슴 속 깊이 남아, 육의 아버지가 죽어 이 세상에 없더라도 하늘 ‘아버지’의 돌보심을 받아 이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예수님에게서 배우는 성장의 두 번째 요소는 ‘사명의 발견’이다. 예수님은 어머니의 꾸중에 이렇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마땅한 것 아닙니까?” 성장이란 자신이 어떠한 일을 마땅히 해야 하는지 깨닫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또는 주변사람들에게 가장 답답한 상황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를 때’이다. 자신이 마땅히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그 사명을 깨달은 사람에게는 ‘열정’이라는 것이 있다. 이 ‘열정’은 돈을 100만불 줘도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오직, 자신이 마땅히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사명을 발견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영혼의 힘이다.
성장하는 사람, 즉,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식하는 것’과 ‘자신이 마땅히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인식하는 것’은 다음의 결과를 낳는다. 52절의 말씀이 그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 가며(성장해 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52절). 우리 인간을 내적으로 풍성하게 해 주는 요소는 인정과 사랑이다. 인정과 사랑이 부족한 사람은 결핍을 느끼기 때문에 영혼의 목마름에서 벗어나지 못해 괴로워한다. 그러나, 인정과 사랑을 풍성히 받은 사람은 ‘썩어지는 밀알’이 되어 생명의 풍성한 열매는 나누며 산다.
우리는 ‘성장’을 경제지표와 숫자지표로 표현하고 인식하는 데 너무도 익숙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다 보니, 엉뚱한 것을 성장의 지표로 삼아 생명을 허비한다. 누가복음이 말하는 성장은 예수님의 보여주신 성장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식하는 것’, 그리고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인식하는 것’이 성장이다. 나는 이렇게 성장하고 있는가. 그 성장 가운데, 풍성한 생명을 누리고 있는가. 그 풍성한 생명에서 맺히는 열매는 아낌없이 나누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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