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교회력

 

수많은 위인들이 시간에 대한 명언을 남겼다. 그만큼 시간이라는 것이 우리 인간에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시간에 대한 명언 중, 나의 가슴에 가장 남는 명언은 고대 그리스의 비극작가 소포클레스가 남긴 이것이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 하루는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하루이다.”

 

같은 개념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다가오는 느낌이 다르다. 광고계의 전설 데이비드 오글비(David Ogilvy)의 일화도 유명하다. 뉴욕 거리에서 한 맹인이 이런 문구를 들고 구걸하고 있었다. “저는 맹인입니다. 도와주세요! I am blind. Please help!” 오글비는 그 문구를 이렇게 바꾸어 주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날이네요. 하지만 전 볼 수가 없네요. It’s beautiful day, but I can’t see it.” 그 이후, 뉴욕의 맹인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시간에 대한 명언은 대개 시간을 아끼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시간이 짧기 때문에 시간을 아껴야지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 성경은 시간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할까? 대표적인 예로 에베소서의 말씀을 들 수 있다. “시간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5:16). 언뜻 보면, 이 말도 다른 여느 시간에 대한 명언처럼 시간을 아끼는 것에 대한 말 같다. 그러나, 헬라어 원어를 보면 번역이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시간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시간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공한다.

 

시간을 아끼라라는 말에서 아끼다의 헬라어는 엑사고라조이다. 이는 구해내다, 해방하다, 자유롭게 하다의 뜻을 가진 동사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다시 번역하면, “시간을 구해내라 때가 악하니라라고 할 수 있다. 정말 멋진 말이다. 시간을 구해내다. 시간을 해방하다. 시간을 자유케 하다. 그리스도인에게 시간은 단순히 아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구해내야 하는 것이다.

 

교회력은 교회의 행사력이 아니라 구원의 시간이다. 그리스도인의 몸인 교회가 교회력을 쓰는 이유는 교회는 구원 받은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구원 받은 공동체는 세상의 시간을 살지 않고 구원의 시간을 산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회력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세상 사람은 달력으로 11일에 새로운 해를 시작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대림절(Advent)에 새로운 해를 시작한다. 대림절은 희망의 절기이다. 그리스도인은 대림절에 구원자(메시아, 그리스도)가 오시기를 기다린다. 대림절에 그리스도인은 구약성서를 통해서 고백된 그리스도가 이미 왔다는 것을 고백함과 동시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뒤,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그 그리스도가 이제 곧 다시 오길 것을 고백한다.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기다림의 종교다. 그 기다림은 헛된 기다림이 아니라 이미 구원의 완성을 이루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의 거룩한 기다림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시간은 세상 사람들이 사는시간과 같지 않다. 세상 사람들은 시간을 아끼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된 시간 안에서 산다. 시간을 아끼는 행위가 인간을 구원하지 못한다. 구원된 시간 안에 사는 자만이 구원을 받는다.

 

그리스도는 시간 안으로 들어오셔서(성육신 하셔서) 시간을 구원하신, 시간 너머에 계신 영원한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구원된 시간 안에 머물 뿐이다. 구원된 시간 안에 머무는 그리스도인은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그리고 이웃을 위하여 시간을 내어준다. 아낌 없이 내어준다.

 

한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지 알고자 한다면, 그 사람이 시간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를 보면 된다. 자기를 위하여 시간을 아끼는 사람과 주님과 이웃을 위하여 시간을 내어주는 사람의 삶은 같을 수 없다. 자기를 위하여 시간을 아끼는 자는 자기 의(self-righteousness)에 머물지만, 주님과 이웃을 위하여 시간을 내어주는 자는 이미 구원 안에 머문다


시간을 아끼지 말고 시간을 내어주라.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구원 받은 자가 또다른 어떠한 구원이 필요하길래 시간을 아끼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구원 받은 자는 다른 구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아낌없이 시간을 내어준다. 그 아낌 없이 내어주는 시간이 또다른 구원을 낳을 것이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