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게 두지 않기

 

최근 ‘노인의학 저널: 심리과학(Journal of Gerontology: Psychological Sciences)’에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 의대 연구팀의 연구 결과가 게재되었다(조선일보 기사). 그 연구에 의하면, 외로운 사람일수록 치매를 앓을 확률이 높다. 외로움은 치매 확률을 40% 증가시킨다. 이 연구가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 큰 표본을 장기간 추적했다는 데 있다(12030명을 10년간 추적). 표본에는 성별, 인종, 종교, 교육 수준, 친구 및 가족과의 사회적 접촉 등의 요소가 고려되었다. 외로움이 치매를 불러온다는 사실이 보편적이라는 뜻이다. 누구나 외로우면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외로움이란 무엇일까? 외로움은 관계의 단절을 의미한다. 여기서 관계는 세 가지의 관계를 말한다. 첫째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이고, 둘째는 타인과의 관계이고, 셋째는 절대 존재(하나님)와의 관계이다.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관계가 단절되면, 인간은 외로움을 느낀다.

 

대개 사람들은 외롭지 않기 위하여 두 번째의 관계, 즉 타인과의 관계를 잘 맺으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현대인들에게 더욱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인데, 현대인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 있으려고 타인을 모방한다. 같은 패션, 같은 말투, 같은 생각 등, 현대인은 자기 자신이 타인과의 연대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을 부단히 증명하려고 애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첫 번째 관계, 즉 자기 자신과의 관계의 외로움을 불러온다. 타인과의 연대를 부지런히 증명하다 보니,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잘 맺지 못한다. 다른 말로 표현해서 자기 자신을 잊어버린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상실한 사람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혼자 있는 시간에 인터넷이라도 해야 한다. 스마트폰을 손에 붙들고 있기라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자신이 혼자라는 생각에 압도당해 불안해한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잘 맺지 못하는 사람은 결과적으로 절대 존재(하나님)과의 관계로 잘 못 맺는다. 생각이 온통 밖으로 향해 있고, 자기 자신이 아닌 타자로 영혼의 중심을 채우고 있으니, 절대 존재와 직면할 시간도 공간도 없다. 그렇다 보니 현대인들의 삶은 점점 더 빈곤해져 가기만 한다.

 

현대인들 중에서 치매 환자가 증가하는 이유는 오래 살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관계의 빈곤함, 즉 외로움 때문에 그런 것이 크다. 치매는 노인에게만 오는 질병이 아니다. 요즘에는 젊은이들에게도 치매가 온다. 그만큼 요즘 시대는 노인이나 젊은이나 가릴 것 없이 외롭게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김상중은 그의 책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에서 악은 아무런 내용이 없는 공허한 것이라고 말한다(85). 그는 에리히 프롬의 생각을 빌어, 인간 존재에는 죽음을 추구하는 요인인 네크로필리아(necrophilia)’와 삶을 추구하는 요인인 바이오필리아(biophilia)’, 두 개의 인자가 있다고 말한다(116). 여기서 전자는 악을 말하고, 후자는 선을 가리킨다. 전자는 죽음, 파괴, 폭력을 향한 인자이고, 후자는 생을 향한 생산적이며 생명력 있는 인자이다.

 

인간이 악을 생산해 내는 이유는 공허한 악의 요인(네크로필리아)으로 자기의 존재를 채우기 때문인데, 그 공허는 바로 관계의 단절에서 온다(121). 악은 자기 자신과의 단절, 세상과의 단절, 절대 존재와의 단절에서 생기는 자기혐오의 파괴적 행위이다.

 

그러므로, 악을 생산해 내는 사악한 인간이 되지 않으려면 인간은 부단히 자기를 자기 자신과 세상과 절대 존재와 관계 맺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단절의 경험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구원하는 길은 자기 자신을 세상의 일부로 인정하는 데 있다. 김상중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세계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계가 아무리 악하다 하더라도 세계와 자기 자신을 선하다 여길 수 있는 능력, 이것이 사랑의 능력입니다”(159).

 

자기 자신을 외롭게 두지 않는 방법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세계(타인)를 사랑하고, 절대 존재(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다. 이 사랑은 책임(responsibility, response+ability)을 불러온다(159). 책임이란 나 자신, 타자, 그리고 절대 존재에게 응답(response)할 수 있는 능력(ability)이다. 외로운 사람은 응답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그래서 외로운 사람은 늘 무기력하게 웅크리고 있다. 그러나 외롭지 않은 사람, 즉 자기 자신과 세상과 절대 존재와 연결되어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세계(타인), 절대 존재에 응답한다. 응답해야 하기 때문에 무기력하게 웅크리고 있을 수 없고, 응답해야 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초월해서 누군가와 연합하지 않을 수 없다.

 

외로움에서 만들어지는 공허, 그 공허에서 생성되는 악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김상중이 제시하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는 세간에 대해서 말한다(163). 세간을 다른 말로 바꾸면, ‘소소한 일상이라고 할 수 있다. 소소한 일상을 사랑하며 소소한 일상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하여 책임질 줄 아는 소소한 마음이 악을 극복하는 방법이라는 말은 대단한 통찰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소소한 일상(세간)’을 공허하게 느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 공허가 우리를 외롭게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짜증, 배우자의 잔소리, 일터에서의 스트레스, 이 모든 소소한 일상은 우리가 사랑해야 할, 그리고 응답해야 할 소중한 것들이다. 그 누구도 외로워서는 안 된다. 나 자신도, 내 곁에 있는 사람도, 지금 내 앞을 지나고 있는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저 사람도. 치매에 걸려 자기 존재를 잃지 않기 위해서. 공허에 사로잡혀 악을 생산해 내지 않기 위해서.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