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의 한국인의 역사적 맥락

 

193269일자 동아일보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안창호)23세 때 경성에서 지금 부인과 혼인해서 유학의 목적으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 건너간 후 얼마 안 되어 개발회사를 통해 미국으로 건너오는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늘었으나 민족적 통제기관이 없었음으로 건너오는 동포들이 타락의 구렁으로 빠지기가 쉬웠다. 이에 도산은 학업을 중지하고 다 쳐서 50여명밖에 되지 않는 동포들을 모아 친목회의 산하에 규합해서 생활 향상에 노력했고개발회사를 통해 도미하는 동포의 지도와 직업 소개에 몰두한 결과 미국인의 조선인에 대한 신용이 두터워졌다.”

 

안창호가 미국에 유학 온 때는 1902년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16년 전이다. 안창호가 미국으로 유학을 나와 학업을 중단하면서까지 이미 삶의 터전을 가꾸어 가고 있었던 50여명의 한인들을 규합하여 그들의 삶을 돌본 지역이 바로 샌프란시스코이다. 샌프란시스코 배이지역에 현재 한국인은 10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대부분 한인들이 이곳에서 굶지 않고 잘 살고 있다. 참 감사한 일이다. 한인들이 이렇게 삶의 터전을 잘 가꾸어 갈 수 있는 초석을 놓은 사람이 안창호이다.

 

1930년대에 안창호의 제자 중 한 명이 샌프란시스코 배이지역으로 유학은 나왔다. 그가 다닌 학교는 버클리 소재 GTU(버클리연합신학대학원) 소속 학교 중 하나인 PSR(태평양신학교)이다. 그는 PSR에서 학업을 마친 뒤 한국에 돌아가 목회자가 되었고, 소설가로도 활동했다. 그가 쓴 소설은 <화수분>인데, 그는 소설을 썼을 뿐만 아니라, 김동리, 주요한과 함께 한민족 최초의 문학 동인지 <창조>를 창간했고, 1935년에는 기독교 잡지 <새사람>을 창간하기도 했으며, 한국인이 즐겨 부르는 찬송가 <내 진정 사모하는>을 번역하기도 했다. 그는 소설가이자 목회자, 그리고 신학교 교수로서 살면서 한국인의 계몽을 위해서 힘썼는데, 그가 바로 전영택이다.

 

안창호는 교민 사회를 돌보며 교민들에게 교회에 나갈 것을 권하고, 좋은 교회를 찾아 소개해 주기도 했다. 그는 교민들을 돌보며 교민들의 생활 향상에 힘썼는데, 이러한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미국의 과수원에서 귤 한 개를 정성껏 따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것이다.” 안창호의 이러한 노력은 농장의 수입을 올렸고 한인 노동자들에 대한 신뢰를 높여 주었다. 그리고 한인 교회는 안창호의 그러한 노력을 높이 치하했다.

 

안창호와 전영택은 모두 개신교인이었다. 안창호는 장로교 교인이었고, 전영택은 감리교 목사였다. 이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고백을 삶의 실천으로 옮기며 살았다. 특별히 안창호는 교육자로서 기독교 신앙의 바탕 위에서 사랑의 절대 가치를 실천하며 한 사람 한 사람을 성실과 정직이 몸에 밴 사람으로 개조하려고 노력했으며, 대한독립의 소망에 가치를 두고 이웃 사랑과 나라 사랑에 온 삶을 바쳤다.

 

안창호는 당시 한국 교회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던 선교사들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일제의 지배를 기정사실의 민족 현실로 받아들일 것에 대하여 신앙 지도를 했으며, 한인 기독교인들이 사회적/민족적 죄에 대해서는 도외시하고 개인적인 죄에만 집중하도록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 때, 교인들이 예배당에 모여 죄를 자복한다 하여 울부짖고 땅에 구르는 것을 보고 안창호는 이렇게 한탄했다. “저 어리석은 백성을 어떻게 깨우칠꼬?”

 

2007, 한국에서는 Again 1907년을 외치며, 평양대부흥운동 때처럼 회개 운동을 벌였다. 그런데, 그 회개운동은 무엇을 위한 회개 운동이었나. 회개한 한국 기독교가 왜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가. 안창호가 작금의 한국 기독교를 본다면, 똑같이 한탄할 것이다. “저 어리석은 백성을 어떻게 깨우칠꼬?”

 

안창호가 샌프란시스코 배이지역에서 교민들의 생활 향상에 힘써 교민들이 이곳에 잘 정착하기 시작한 역사가 벌써 100년이 훨씬 넘었다. 우리는 지금 100년이 넘은 한인 이민 역사의 한 자락을 채우고 있다. 우리는 개신교인이고 한국인으로서 모두 안창호의 후예들이다. 안창호의 후예로서 우리는 어떠한 가치를 지키며 이 시대에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삶을 돌보아 주며 생활 향상에 힘쓰고 있는가. 기독교 정신으로 무장하여 사랑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고, 삶의 자리에서 성실과 정직으로 무장하여 나에게 맡겨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나라 사랑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사는가. 또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교회에 나가서 신앙생활 할 것을 권고하며 좋은 교회(우리 세화교회?)를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있는가. 샌프란시스코 배이지역에서 한인으로서 사는 우리의 역사적 맥락은 안창호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안창호처럼, 전영택처럼 기독교 정신으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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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