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새로우니2020. 4. 15. 09:27

아침묵상 시편 12편 - 경건한 자와 충실한 자 되기

https://youtu.be/SxmovfEZwjc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 그들이 이웃에게 각기 거짓말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 /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 여호와여 그들을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시리이다 / 비열함이 인생 중에 높임을 받는 때에 악인들이 곳곳에서 날뛰는도다”(시편 12).

 

마태복음 11장에 보면, 예수님이 이 세대를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말하는 것에 비유하시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셨다!”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게 인지상정인데, 세상은 이와 반대로 돌아갈 때가 많죠. 기뻐하는 자들 한테 꼴보기 싫다 그러고, 우는 자들한테 손가락질을 하죠.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으니까, 귀신 들려다 그러고, 예수님이 와서 먹고 마시니까,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게,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은 듯합니다.

 

시인은 이런 현실을 탄식하고 있는데요, ‘악인의 아첨과 거짓이 만연하고, 의인이 끊어지고, 경건한 자와 충실한 자가 가련하고 궁핍한 자로 전락하는바로 그 현실을 탄식하고 있습니다.

 

경건한 자(하씨드)’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기 위해 충성을 다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자를 뜻하고요, ‘충실한 자(에무님)’은 진실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렇게, 경건하고 충실하게 살아가는 자들은 가련하고 궁핍한 자로 전락하고, 오히려, 아첨하고 두 마음으로 말하는 자들이 승승장구하는 현실을 보면서, 시인은 탄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죠.

 

아첨하는 자들’,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는 자들이고요, ‘두 마음으로 말하는 자들은 겉으로는 다른 사람을 위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사람을 가리키죠.

이런 말을 하면, 우리는 아주 손쉽게, 혀를 쯧쯧 차면서, 우리 자신은 아첨하는 자두 마음으로 말하는 자가 아닌 양,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기 쉽고, 우리는 마치 경건하고 충실한 자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요?

 

하나님의 말씀은 다른 누구보다, 바로 나 자신에게 먼저 비추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나마 이렇게 먹고 살 만하게 된 게, 이 세상의 번영 원리에 편승해, ‘아첨했거나 두 마음으로 말해서그런 건 아닌지, 우리는 정말로 경건한 자충실한 자가 되어서, ‘를 위해 핍박을 받은 적이 있는지, 한 번 돌아볼 일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 그렇게 되기를 싫어하면서 주변에서 경건한 자충실한 자를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본인이 의인으로 살기는 싫고, 다만, 주변에 있는 의인을 통해 대속받으려는 욕심을 갖죠. 이러한 마음을 놀부 심보라 하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대속은 그러한 의미가 아닌데,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 자기를 대신해줄 존재를 찾습니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세상은 점점 더 대신사회가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서비스의 발달은 나 대신해서누군가 그 일을 해주는 방향으로 가고 있죠. 김혜수와 송강호가 주연했던 ‘YMCA 야구단영화에서 보면, 구한말, 선교사들이 테니스 치며 땀 뻘뻘 흘리는 것 보고, 양반이 지나가면서 한 마디 하죠. “저렇게 땀 흘리는 거, 아랫것들 시키지 왜 본인이 직접하나. 허허이렇게 대신 누군가 해주기를 바라는 사회에서는 어디까지 대신하는 일이 발생할까요? 결국, 사는 것, 죽는 것도, 나 대신 누군가 해주길 바라는 세상이 오게 될까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아무튼,

 

여러분, 누군가 자기를 대신하여’, ‘경건한 자충실한 자가 되어주길 바라지 말고, 우리 스스로 주님의 신실하심에 의지하여, 가련하고 궁핍한 자로 전락하더라도, ‘경건한 자충실한 자가 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러면, 시인이 고백하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이 더 크게 우리의 귀에 들려 올 것입니다. “여호와여 그들을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시리이다”(7).

 

거짓과 속임수를 내려놓고, 순결한 주님의 말씀으로 승리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좋은 하루 되세요!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