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새로우니2020. 4. 19. 09:37

아침묵상 시편 16편 - 주님만이 나의 재산이시다

https://youtu.be/YRHVLMgIWHs


오늘은 시편 16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루를 열어봅니다.

 

오늘 조금 다른 방식으로 시편 16편을 묵상해 보려 하는데요, 한 구절씩 읽고, 그 한 절에 대한 묵상을 하면서 읽어나가려고 합니다.

 

1절에서 시인은 하나님께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동사를 현재형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과거형으로 볼 것이냐에 따라서 뜻에서 조금씩 차이가 나는데요, 동사를 과거형으로 보면, 시인은 지금 주님께 피하여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다시 읽어보면, 이렇게 읽히죠. “내가 주께 피하였나이다! 주여, 나를 지켜주소서.” 이것은, ‘지켜 주시면 피하겠다는 조건문이 아니라, ‘이미 피했으니까, 지켜달라는간청문인 것이죠. 저는 이 뜻이 참 좋다고 생각하는데요, 무슨 일이 생기면 일단 주님께 피하고 보는 것이죠. 주님은 나의 피난처되시니까요. 그러면,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겠죠. 여러분, 무슨 일이 생기면, 망설이지 말고, 무조건 주님께 먼저 피하고 보세요. 주님께서 반드시 지켜주실 겁니다.

 

2절에서 시인은 이런 고백을 하는데요,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주님을 떠나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없다는 말이죠. 살다가, 왜 나는 이렇게 행복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드시면, 한 번 자신을 돌아보세요. 내가 혹시 주님을 떠나 있는 것은 아닌지요.

 

3절에서 시인은 참 마음이 따스한 고백을 하는데요,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우리는 기쁨을 먼 곳에서 찾으려 하는 경향이 있죠. 그러나 기쁨은 먼 곳에 있지 않고, 바로 곁에 있습니다. 바로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기쁨이죠.

 

길가메시 서사시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길가메시가 친구의 허무한 죽음을 경험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아 여행을 떠나죠. “어차피 죽어야 하는데 왜 살아야 하는가?”라고 한탄하면서요. 방황하던 길가메시는 선지자를 만나는데요, 그가 길가메시에게 이렇게 말해줍니다. “길가메시야, 너무 슬퍼하지 말고 다시 집에 돌아가 원하는 일을 하며 아름다운 여자를 사랑하거라. 그리고 좋은 친구들과 종종 만나 맛있는 것을 먹고 술도 마시며 대화를 나누거라. 길가메시야, 인생이란 네가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동안 흘러 없어지는 바로 그것이란다.” 우리는 인생의 의미를 찾아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할 때가 많지만, 바로 곁에 있는 사람이 나에게 가장 소중한 기쁨의 원천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다면, 삶의 자세가 분명 달라질 겁니다. 옆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세요.

5절에서 시인은 매우 독특한 고백을 하는데요, 이것은 여호수아서에서 보듯이,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그 땅을 제비 뽑아 분배 받는 것에서 온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요즘 사람들이 들으면 별로 감흥이 없는 말씀일 수 있습니다. 재산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더욱더 그렇겠죠. 그래서 주님께서는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부자가 천국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라고 말씀하신 것일 겁니다.

 

5절 말씀은 쉽게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재산이시다!” 우리는 돈, , , 뭐 이런 것을 재산(property)으로 생각을 하고, 이런 것을 모으고 지키는 데 힘을 쏟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참 엉뚱한 고백을 합니다. “주님만이 나의 재산이십니다!” 이 말씀을 실제로 삶에서 구현한 신앙의 선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부잣집 도련님 출신인 성 프란체스코가 대표적이죠. 엄청난 재산을 부모한테 물려 받은 프란체스코는 자신의 재산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탁발수도사(밥 빌어먹는 수도사)가 됩니다. 프란체스코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도 주님만이 나의 재산이십니다!”라는 고백을 했기 때문이죠. 너무 아름다운 고백이고 삶이죠. 이런 말씀과 이야기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욕심이 얼마나 과도한지를 알 수 있고요, 그 욕심이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는 것도 배워야겠죠.

 

16편의 다른 구절도 아름다운 구절이 많은데요, 마지막 11절의 구절을 묵상하면서 마칠까 합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여기서 보이신다는 히브리어의 야다라는 단어입니다. 육신의 모든 감각이 그것을 알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육신의 모든 감각이 생명의 길을 안다면, 인생이 다른 것에서 생명의 길을 찾지 않겠죠. 오직,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생명의 길을 알고 그 길을 걸어가려고 할 것입니다. 주의 오른쪽은 주님이 거하시는 자리입니다. 이러한 말씀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이 보이신 생명의 길이고, 그분은 승천하시어 주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이죠.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겁니다.

 

또한 11절의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라는 고백은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양 주가 보이신 생명의 길을 떠올리게 합니다. 오늘은 묵상을 마치면서, 제가 주가 보이신 생명의 길을 불러보도록 하겠습니다. 끝까지 들어주세요!

 

우리의 피난처 되시고, 우리의 행복이 되시며, 우리의 유일한 재산이신 하나님과 함께 오늘도 생명이 충만한 즐거운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좋은 하루 되세요!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