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 시편 18편 1부 -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오늘은 시편 18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루를 열어봅니다. 18편은 50절로 구성된, 긴 시편인데요, 그래서 오늘 한 숨에 18편 전체를 다 묵상할 수는 없을 것 같고요, 몇 번에 나누어 묵상해 보기로 합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 교회에서는 유진 피터슨 열풍이 분 적이 있습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책은 주로 IVP 출판사에서 출간이 되었죠. 그때 저는 20대 중후반을 지나고 있었는데요, 강남역에 있었던 사랑의 교회 앞에 ‘라 비블’이라는 기독교서점에서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책들을 사서 읽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여담이지만, 거기서 C. S 루이스의 판타지 소설 <나니아 연대기>의 원서도 구입한 기억이 나네요. 아직도 그 책들은 제 서재에 꽂혀 있습니다.
‘시편’, 하면, 다윗이 떠오르는데요, 유진 피터슨 목사님이 쓰신 책 중에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원서 제목은 <Leap Over a Wall>이고, 부제는 ‘Earthy Spirituality for Everyday Christians’입니다. 원서 제목에서 책 내용을 알 수 있듯이, 뭔가 벽이 앞에 가로 막고 있는데, 그것을 뛰어넘는 일에 대한 지혜를 담은 책인 것이죠.
우리는 대개 “spirituality(영성)”이라는 말을 들으면, 하늘 나라 일을 생각하는데요, 피터슨 목사님이 부제목에서 ‘earthy spirituality’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영성은 저 하늘 나라의 일이 아니라, 바로 여기, 우리가 두 발붙이고 사는 ‘땅의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영성은 다름 아닌 ‘everyday Christians’ 즉, 평범한 일반 성도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평신도들을 위한 영성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죠.
안타깝게도, 2018년도 10월 22일에, 유진 피터슨 목사님이 세상을 떠나셨는데요, 그분의 책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몬타나(Montana)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셨죠. 몬타나주는 브래드 피트(Brad Pitt)가 주연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한데요, 그 자연환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합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책은 지금 다시 읽어도 그 깊이와 넓이가 대단한 작품입니다. 아니, 공부를 좀 더 하고 들여다보니까, 그분의 영성의 깊이와 넓이가 조금 시야에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안타까운 마음도 동시에 들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책을 그때 그리스도인들이 진지하게 읽었다면, 한국 기독교가 지금 이렇게 위기를 겪고 있지 않을텐데…”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에서 유진 피터슨 목사님이 하신 말씀을 조금 들어야 볼까 합니다. 이런 말을 하십니다.
1) “다윗의 이야기 속에서는 인간적(human)이라는 단어와 그리스도인다운(Christian)이라는 단어가 동의어였다.” (12쪽)
2) “하나님을 향한 갈망, 하나님을 향한 갈증은 인간 안에 있는 가장 강력한 욕구다. 이는 성, 권력, 안정, 명성을 향한 욕구를 전부 합친 것보다도 훨씬 더 강한 욕구이다.” (17쪽)
3) “인간이란 단순히 하나님이 너그럽게 봐주는 존재 정도가 아니라 놀랍도록 존엄한 존재다. 조금 다르게 표현하자면, 하나님을 성부, 성자, 성령 – 세 거룩한 신비! 세 신성한 무한! – 으로 계시하는 성경에서, 인간(human)이라는 말은 결코 깎아내리거나 무시하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명예로운 호칭으로 쓰인다. 하나님 앞에서 말이다.” (19쪽)
이러한 말들은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인간 이해를 엿볼 수 있는 문장입니다.
특별히,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다윗 이야기의 주인공이, 즉 다윗이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환기시키면서, 현재 우리가 사는 시대는 지나칠 정도로 각종 전문가들에게 자신의 삶을 너무 의존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비판합니다.
“지금 우리는 각종 전문가들을 지나칠 정도로 중시하는 문화 속에 살고 있다. 그 결과,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은 거의 바보로 취급당하며,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해서 마땅히 그에 따라야 할 사람으로만 여긴다. 그 결과는 그리 고무적이지 않다. 우리는 우리 몸을 돌보는 일을 의료 전문가들에게 내맡겼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개인의 건강 수준은 계속해서 악화되어 왔을 뿐이다.
우리는 우리의 학습 책임을 교육 전문가들에게 내맡겼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스스로 사고할 줄 모르고, 인류의 문화 유산과 역사에 대해 무지하며, 광고와 정치의 조롱 섞인 조작 행위에 대해 무방비 상태인 대중을 만들어 놓았다.” (31쪽)
그러면서, 우리의 신앙에 대해서 이렇게 비판을 가합니다. “우리는 신앙에 대한 책임을 종교 전문가들에게 내맡겼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범퍼 스티커와 TV 유명 인사들이 대중 기독교의 정체성을 지배하고 있으며, 일반 그리스도인들은 종교 공연 구경과 영양가 없는 종교 상품 구매에만 강박적으로 빠져 있을 뿐이다. 종교 메시지 전달과 종교 상품 판매는 인류 역사상 과거 어느 때보다 더 활발해졌다. 이로 인해 어렸을 때부터 전문가에게 의존하도록 훈련받아 온 일반 평신도들은 여전히 믿음과 기도, 원수 사랑과 낯선 이를 환대하는 일에 무기력하고 무능력하다.” (31-32쪽)
그러면서,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신앙이라는 모험을 감행한 사람은 대부분 평신도”였다고 말하며, 종교 전문가들의 허세에 겁먹지 말고, 수동적인 종교 소비자로서의 존재에서 벗어나, 다윗처럼, 능동적인, 현실 속에서, 일상 속에서, 하나님과 신실하게 대면하는, 주체적인 신앙인으로 거듭나라고, 힘 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35쪽)
어떠세요? 제 말이 맞지 않나요?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저서들을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진지하게 읽었다면, 지금 한국교회가 이렇게 어려움을 겪지 않고, 시대를 이끄는, 사랑과 존경을 듬뿍 받는 존재가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목회자로서, 즉 전문 성직자로서 하고 싶은 일은, 전문가의 특권을 내세우고 허세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공부수련으로 터득한 진리를 여러분들에게 나누어 드리며, 여러분 스스로 일상에서, 현실에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신앙인으로 우뚝 서는 것을 도와 드리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고백처럼, ‘여러분이 흥하시는 것을 도와 드리기 위하여, 저는 쇠하는 것’이, 저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시편 18편을 묵상하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시편 18편은 진실로, 현실에서 우러나온 신앙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위에서 유진 피터슨 목사님이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듯이, 여러분의 삶을 ‘전문가 집단’에게 맡기지 마세요. 전문가에게 맡기지 말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의 삶을 깊고 넓게 가꾸어 보세요. 여러분의 삶, 여러분의 생명은 그 누구에게도 양도될 수 없는,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선물로 주신, 여러분의 것입니다. 시편을 통해, 현실에서, 일상에서 꽃을 피우는 신앙의 길을 배우게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여러분,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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