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 시편 23편 - 행복의 조건
오늘은 시편 23편을 묵상하면서 하루를 열어봅니다.
시편 23편은 가장 대중적인 시편이죠. 적어도 시편 23편 만큼은 낭독을 안 하고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은데요, 공동번역 버전으로 낭독해 보겠습니다.
[1]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누워 놀게 하시고
[2] 물가로 이끌어 쉬게 하시니
[3] 지쳤던 이 몸에 생기가 넘친다. 그 이름 목자이시니 인도하시는 길, 언제나 곧은 길이요,
[4] 나 비록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내 곁에 주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어라. 막대기와 지팡이로 인도하시니 걱정할 것 없어라.
[5] 원수들 보라는 듯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부어 내 머리에 발라 주시니, 내 잔이 넘치옵니다.
[6] 한평생 은총과 복에 겨워 사는 이 몸, 영원히 주님 집에 거하리이다.
우리는 모두 행복한 삶을 꿈 꿉니다. 무엇이 행복일까요? 행복에 관한 논의로 가장 잘 알려져 있고,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쳐 왔던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입니다. 시중에 나온 도서 중, ‘행복론’에 관한 책은 모두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을 따르거나 아니면 비판하는 책들이죠.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시편 23편을 비교해서,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분석해 보면, 굉장히 재밌는 것이 발견됩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제시되는 행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이성’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과 선(좋은/good)과 행복을 연결시키는데요, 조금 거칠게 말해서, 행복은 인간의 이성과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행복의 주도권이 인간에게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런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이 포스트모던 사회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게 사실입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른 데 있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렇다 보니까, 현대인들이 더 불행하기도 합니다. 행복의 기준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 보니, 자기 자신의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 손쉽게 넘겨주기도 하기 때문인데요, 무엇이 행복인지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 보니, 사람들은 보통 다른 사람의 행복을 모방하거나, 대중적이고 획일적인 행복의 기준을 자신의 행복의 기준으로 삼기도 하죠. 그래서 결국 현대인들을 보면, 행복의 기준이 오히려 하나 인것처럼 보이죠. 쾌락, 명예, 돈! 그런데, 정말 재밌는 것은, 이러한 요소들은 정작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비판하고 있는 행복의 조건이라는 것이죠.
시편 23편에서 드러나고 있는 행복은 사뭇 다릅니다. 행복을 하나님과 연결시키는데요, 두 가지 점에서 그렇습니다.
시편 23편에서 시인이 제시하고 있는 행복의 조건 첫번째는 1절에서 드러나고 있는데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에서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는 히브리 사람들의 독특한 시간 개념이 반영된 문장입니다. 여기에 미완료형 동사가 쓰이고 있는데요, 한국어에는 없는 문법입니다. 미완료형 동사는 미래 시점이나 지속의 의미를 지니는 동사인데요, 그 안에서 과거, 현재, 미래가 통합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하나님 안에서 통합되는 겁니다. 시간이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현재가 되는 것이죠.
우리는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어서 보는 경향이 있는데요, 우리가 시인의 영성을 가져 하나님의 실재 속으로 들어가면, 우리의 시간은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현재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과거의 아픔도 하나님 안에서 치유되는 것이고, 불안한 미래도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이고요.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현재로 볼 수 있는 시인의 영성을 지닌다면, 그 자체가 행복일 것입니다.
시편 23편에서 시인이 제시하고 있는 행복의 조건 두 번째는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에서 드러나고 있는데요, 여기서 우리는 ‘상, 기름, 잔’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대 근동의 문화 중, hospitality라는 게 있습니다. 손님 대접하기,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는데요, 주인은 손님을 잘 대접하는 것이 예의였죠.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은 집주인(호스트)이시고, 우리는 손님이라는 삶의 태도가 필요한데요, 하나님의 초대를 받아 이 땅에 온 손님인 우리들은 집주인이신 하나님이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려 주신 잔칫상을 감사한 마음으로 배부르게 먹으면 되는 것이죠.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영성인데요, 우리가 살면서 고통받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집주인인 것처럼 상을 차리려 하니, 그리고 내가 집주인인데 그것을 몰라주나, 하는 섭섭한 마음 때문에 그런 것이죠.
정리해 보면, 시편 23편에서 시인이 제시하고 있는 행복의 조건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시간을 다르게 바라보는 것, 우리가 사는 시간은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현재라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의 삶은 감사가 넘칠 것이고, 감사가 넘치는 삶은 행복한 삶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죠. 둘째, 우리는 집주인이 아니라 손님이라는 것, 그래서 집주인이신 하나님이 차려 주시는 푸짐한 잔칫상을 감사함으로 배부르게 먹으면 된다는 것, 먹고 배 부르려고 우리가 스스로 상을 차리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힘 빼고 평안하게 살 수 있게 되겠죠. 그러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행복한 삶을 살고 싶으시죠? 그렇다면, 시편 23편에서 시인이 행복에 겨워 부르는 이 노래를 마음에 잘 새겨보세요. 시간을 좀 다르게 바라보시고, 주인이 아닌 손님으로 힘 빼고 살아 보세요. 분명, 어느덧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로 와서 행복을 누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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