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9. 8. 27. 09:10

언약 공동체 (나는 사랑하기로 했다)

(잠언 10:12 / 벧전 4:8)

 

미움은 다툼들을 일으키거니와 사랑은 모든 죄를 덮느니라” (10:12).

무엇보다도 서로 뜨겁게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벧전4:8).

 

3년 전, 2016821일 주일 예배를 마치고 조지아를 떠나 6일동안 대륙횡단을 하여 캘리포니아에 827일 토요일에 도착했다. 우리 교회 처음 와서 인사한 날이 828일 주일이었다. 그날의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보면, 비상대책회의를 하느라 교회 오기 전 데니스에서 이응기, 김형한, 김덕수 권사님을 만났다. 생각해 보면, 나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살려내라고 특명을 받고 이곳에 보냄을 받았던 것 같다.

 

주일 예배에 참석하여 인사를 드리러 왔는데, 예배당의 분기위는 매우 어수선했다. 블라인드가 내려 있어 햇볕이 깊숙히 들어와 눈을 부시게 만들었고, 창문이 열려 있어 바깥 소음이 무질서 하게 들어왔다. 그러나 예배 자체는 매우 간절했다. 사회를 보시는 분은 눈물을 흘렸고, 예배에 참석한 분들의 마음은 자비를 간구하는 종의 모습이었다.

 

나는 교회를 사랑한다. 나를 키운 건 팔할이 교회이다. 나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인 것을 믿는다. 그래서 교회는 이 세상 그 어느 것보다 귀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믿음과 생각은 나만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게 되는 보편적인 믿음과 생각이다.

 

오늘은 우리 교회 창립 21주년이다. 참 기쁜 날이다. 그런데, 우리 교회 창립의 의미는 매우 독특하다. 길지 않은 지난 21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는데, 우리 교회의 창립 기념은 마치 개천절과 같다. 지난 2017430일 주일 예배 때, 교회 이름을 세화교회로 정하고 내가 정식으로 세화교회의 담임목사로 취임할 때에 많은 논의가 있었다. 왜냐하면, UMC에서 교회 closing letter를 받고 교단의 공식 결정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이전 교회를 closing하고 새롭게 교회를 여는 차원에서 교회 이름을 바꾸고 담임목사 취임식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주 technical하게 말해서, 우리 세화교회의 역사는 2017430일부터 시작된다고 말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5월에 그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화하늘축제를 여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한 공동체의 역사에는 질곡도 있고, 눈부신 영광의 순간도 있는 것이다. 발생한 역사를 부정하고 외면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가 어떻게 하고 있는가이다. 우리는 정말 잘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역사를 존중하여, 8월에 있는 교회 창립기념일을 개천절성격을 지니고 지키고, 5월에 있는 세화하늘축제를 제헌절성격을 지니고 지킨다. 대개 나라들이 다 그렇다. 대한민국도 나라가 처음 열린 날을 기념하기 위해 103일에 개천절을 지키고, ‘대한민국의 새로운 정체성을 기념하기 위하여 717일에 제헌절을 지키지 않는가. 역사는 품어내야 하는 것이지, 밀어내면 안 된다. 그러므로, 이 자리에 우리 교회의 역사를 분명히 했으면 좋겠다. 8월의 교회 창립기념일은 개천절’, 5월의 세화하늘축제는 제헌절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에 대해 교회 공동체 모두가 공감하면 좋겠다.

 

이처럼 교회창립기념 예배를 드리면서 교회 공동체의 정체성을 생각하는 날, 우리는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신약성경은 교회를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구약성경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를 들어 설명하고, 신약성경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 또는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교회를 신부로 묘사하여 설명한다. 이러한 비유를 써서 교회를 설명하는 이유는 교회가 세상의 어느 공동체와는 구별된 언약 공동체인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언약(covenant)’와 대비되는 개념은 계약(contract)’이다. 보통 계약은 집을 계약할 때, 또는 직장과 계약할 때 쓰는 개념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언약도 계약의 일종이지만, 그 성격이 매우 다르다. 계약은 그 계약서에 써 있는 조항 대로 서로 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그러다가, 그 조항에서 어긋나는 것이 있으면 책임을 물으며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 그러나, 언약은 계약처럼 그 언약의 조항을 힘써 지켜야 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조항에서 어긋나는 것을 했다고 해서 계약처럼 책임을 물으며 파기하지 않는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대표적인 언약이 결혼이다. 물론 요즘에는 계약결혼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결혼의 세속화일 뿐이지, 결혼이 지닌 신성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결혼할 때 신랑신부는 마주보며 서로에게 서약한다.

 

, 000은 그대 000을 남편(아내)로 맞아 이제부터 평생토록 즐거우나 괴로우나, 부할 때나 가난할 때나, 병들거나 건강하거나, 어떤 환경 중에서라도 그대를 귀중히 여기고 사랑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에 따라 죽음이 우리를 나눌 때까지, 이 약속을 지키기로 하나님 앞과 여러 증인들 앞에서 서약합니다.

 

그리고, 그 언약의 징표로 대개 반지를 교환한다. 계약의 기초는 이익이지만, ‘언약의 기초는 사랑이다. 그렇기 때문에 계약을 맺은 사람들끼리는 서로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냉정하게 갈라서지만, 언약을 맺은 사람들끼리는 서로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상대방을 버리지 않는다. 사랑의 언약을 맺은 관계는 즐겁고, 부하고, 건강할때만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괴로울 때도, 가난할 때로, 병들었을 때도상배방을 귀중히 여기고 사랑한다.

 

이러한 언약적 사랑을 보여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다. 이러한 사랑을 구약은 헤세드의 사랑이라고 한다. 영어는헤세드‘steadfast’라고 번역한다. 우리 나라 말로는 영원불변한사랑이라고 한다. 신약성경에서 증거되고 있는 복음은 그 하나님의 헤세드 사랑, steadfast love, 영원불변한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나타났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 사랑으로 구원 받았다. 바로 계약적 사랑이 아닌, 언약적 사랑을 통해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

 

그 사랑 위에 세워진 교회는 본질적으로 언약 공동체가 될 수밖에 없다. 복음을 전하는 핵심적인 위치에 있는 목사로서 나는 날마다 이 언약에 대하여 생각한다. 나는 교회와 계약을 맺은 게 아니라 언약을 맺었다. 나는 그래서 즐거우나 괴로우나, 부할 때나 가난할 때나, 병들거나 건강하거나, 어떤 환경 중에서라도 교회를 귀중히 여기고 사랑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에 따라 죽음이 우리를 나눌 때까지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겠다고 매일 같이 다짐한다.

 

교회는 언약 공동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부흥이란 근본적으로 숫자의 부흥이 될 수 없다. 뭐가 부흥인가? 교인 숫자 늘어난 게 부흥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늘어나 내 옆사람을 더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이 풍성해진 것이 부흥이다. 그러면 교회는 건강하게 숫자적으로도 부흥한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데, 교회가 숫자적으로 부흥하지 않더라도 무슨 상관인가.

 

우리는 로마서의 이 말씀을 기억한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8). 우리에게 사랑할 만한 구석이 있어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이 아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사랑할 만한 구석이 없어도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이다. 언약이란 이런 것이다. 사랑할 만한 구석이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로 결단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가 오늘 하나님께 말씀을 받았듯이, 미움은 다툼들을 일으키지만, 사랑은 모든 죄를 덮는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도 바울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1-3).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로 모인 우리들에게우리는 언약 공동체이다라는 진리에 대한 깨달음, 그래서 나는 사랑하기로 했다라는 결단이 없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소음에 불과하고, 허무한 일이 될 것이며, 아무에게도 유익을 주지 못하는 무익한 것이 될 것이다. 방언과 천사의 말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예언하고, 높은 지식을 쌓고, 굳건한 믿음을 가지는 게 중요하지 않다. 넉넉하게 되어 구제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서는 것, 그리고 열심을 다해 헌신하는 게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일이다. “나는 사랑하기로 했다.” 이 결단이 먼저 우리의 영혼을 울리지 못한다면, 우리 삶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일 하지 말고, 사랑하자. 사랑하면 해야 할 일이 보인다. 그 일을 하면 서로에게 만족과 기쁨이 온다. 우리는 언약 공동체이다. 언약 공동체가 언약에 따라서 서로 사랑하는 일에 전념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사랑하기로 했다.” 우리 모두, 이 결단 위에서, 행복이 넘치는 언약 공동체, 세화교회를 세워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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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