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9. 8. 19. 09:32

생태계를 바꾸는 교회

(사도행전 2:43-47)

 

예배 컨퍼런스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공항에서 기념품을 샀다. 아이들 기념품으로는 껌을, 집사람 기념품으로는 열쇠고리를 사왔다. 열쇠고리를 고르는데, 각종 문구가 있었다. “number 1 dad, number 1 husband, number 1 grandpa”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number 1 wife”만 없었다. 그래서 결국 고른 기념품 문구는 “number 1 mom”이다.

 

우리는 상대방에 대한 사랑을 고백할 때 “number 1”이라는 수사를 동원한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우리 교회에 대한 사랑을 고백할 때 “number 1 church”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다. 나는 우리 교회를 너무도 사랑하여, 우리 교회가 “number 1 church”라고 고백한다. 그런데, 개인도 마찬가지겠지만, 교회 공동체는 그 공동체 구성원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number 1 church”가 될 수도 있고, “the worst church”가 될 수도 있다.

 

좋은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 많은 이들은 좋은 교회를 떠올릴 때 외적인 것(시설, 규모, 프로그램 등)부터 떠올린다. 그런 것(외적인 것)도 좋은 교회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겠으나, 교회 공동체를 규정짓는 절대적인 요소는 아니다. 본질적으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에 휘말린 사람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좋은 교회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각(인식)’이다.

 

여기서 자기 자신에 대한 자각(인식)’은 자기 스스로를 생각할 때 자기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떠한 존재로 인식하느냐를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복음이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핵심적인 말씀인 에베소서 2:1-10의 말씀에 의하면, 그리스도인은 포이에마이다. ,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하도록 새롭게 창조된 사람이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다른 서신에서 이것을 옛사람새사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대조시킨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하도록 새롭게 창조된 사람을 새사람이라고 하고, 복음 안에서 믿음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을 옛사람이라고 한다.

 

이 논리에 의해서 좋은 교회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그 교회에 옛사람이 많은 지, 아니면 새사람이 많은 지를 보면 그 교회가 “number 1 church”인지, 아니면 “the worst church”인지 알 수 있다. 물론, “어중간한 so-so church”도 있다. 그러므로 좋은 교회를 세워 나가는 데 가장 필수적인 요소는 교회를 다니는 우리들이 우리 스스로를 누구라고 규정하는 지에 대한 자각이다. 나는 포이에마다! (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하도록 새롭게 창조된 그리스도인이다!)

 

에를레프니스(Erlebnis)’라는 독일어는 이러한 상황을 잘 담고 있다. ‘에를레프니스를 풀어서 설명하면 이런 뜻이다. 어떤 힘이 개입해 기존의 사고방식에 균열을 일으키고 개별적 사실을 뛰어넘어 보편적 진리를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 이러한 경험은 정확히 예수 그리스도 사건을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어나는 것이다. ‘어떠한 힘이라는 것은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이고, 그 힘을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 사건을 경험하고 나면, 기존의 사고방식에 균열이 생긴다. 그리고 더 이상 이전에 살던 삶의 방식을 고수할 수 없게 되고,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 나라에 사는, ‘개별적 사실을 뛰어넘어 보편적 진리를 드러내는삶의 방식을 취하게 된다.

 

우리는 본문에서 이렇게 살아가는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을 만난다.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하도록 새롭게 창조되었고, ‘에를레프니스의 순간을 경험하였기에 기존의 사고방식을 버리고 개별적 사실을 뛰어넘어 보편적 진리를 드러내는 삶의 방식을 취한다. 그들은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했다.

 

이것이 가능한가? 대개 사람들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공산당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공산당도 이렇게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포이에마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실제로 발생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두 눈으로 목격하고 있는 초대교회의 삶을 그대로 재현해야 한다는 것보다는, 그들이 생태계를 바꾸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본문에서처럼 살아간 이유는 그 당시에는 가난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때는 로마제목의 착취가 심했다. 귀족들과 로마제국에 부역한 몇몇 관리층만 빼놓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가난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러한 상황은 이미 요한계시록 공부할 때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된 사람들을 가난으로 인한 생명의 위협에서 구원할 수 있는 길은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는삶의 방식을 취하는 것이었다. 남의 것을 착취하여 생명을 유지하는 제국주의적 삶의 방식과 정반대의 삶의 방식이다.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굶주린 사람들, 가난으로 인해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방법은 복지가 아니라 나눔이다. 복지는 세금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한계가 분명하다. 그러나 나눔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다만, 그것을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사람들과 그것을 알기에 행하는 사람들이 존재할 뿐이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을 살리는 그 나눔을 기꺼이 행한 것이다. 이게 바로 복음의 능력이다.

 

생태계란 생명이 생명을 보존하는 시스템이다. 생태계에 교란이 오거나, 생태계가 파괴되면 그 안에 있는 생명은 극심한 고통을 당하거나 생명을 잃는다. 그래서 생태계를 지키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교회이므로, 교회의 생태계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교회를 다니는 인구가 계속 줄고 있다. 왜 그러한 일이 벌어질까? 교회의 생태계가 사람들이 그곳에서 생명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을 만큼 건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UCLA의 한국교회사가 옥성득 교수가 밝힌 한국의 대표 교단 중 하나인 장로교 통합측의 교인 추이와 전망 통계표이다.

이 그래프를 보면, 현재 교회의 생태계가 심각하게 망가져 있고, 그래서 앞으로 10년 후에는 교인수가 엄청나게 줄어들 것을 예상하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교단이 이러한 상황이니, 다른 교단은 어떻겠는가? 다른 교단의 통계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계속해서 교회의 생태계는 무너져 가고 있고, 생태계가 무너져 가니 그곳에 더 이상 생명이 깃들 수 없어, 생명(교인수)은 계속 줄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그것의 원인은 무엇이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원인을 찾아내고, 그에 따른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공부이다. 그래서 지난 주일 예배 설교에서 강조했듯이, ‘공부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공부를 하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되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파악을 해야만, 그 이후 우리의 행동을 바꿀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해 나가는 교회를 일컬어 나는 생태계를 바꾸는 교회라 부르고 싶다. 무너진 교회의 생태계를 바꾸는 일은 교회의 생존을 위하여 가장 필수적인 요소이다. 여기서 생태계는 범지구적인 보편적인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우리 교회, 지역 교회의 한 교회만 아무런 문제없고 평안하다고, 그래서 우리는 만족한다고 말할 수 없다. 결국 지역 교회도 언젠가는 그 생태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민기가 불렀던 작은 연못이라는 노래의 가사가 우리가 논하고 있는 생태계를 예쁜 언어로 잘 말해주고 있다.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속에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위에 떠오르고

여린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속에선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죠

 

우리는 부흥하고 싶어한다. 어느 교회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본문의 말씀 중,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는 말씀에 집중하며, 우리 교회도 그렇게 부흥하게 해 달라고 가슴을 치며 기도한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렇게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신 이유에 대해서는 외면한다. 가히, 놀부심보라 할 만하다.

 

본문의 방점은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에 있지 않다. 이것은 결과에 대한 신앙고백이다. 본문의 방점은 그들이 바꾼 생태계에 있다. 그들은 모든 물건을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했다. 생명이 깃들 수 있는 생태계가 조성되니, 생명이 풍성해졌다. 너무도 당연한 창조의 이치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그래서 그들은 신앙고백 했다.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셨다!”

 

애들만 낳아 놓으면 뭐하나? 가정이 풍비박산인데! 그 아이가 풍비박산인 가정의 생태계에서 온전히 성장할 수 있는가? 죽거나, 비뚤어지거나, 가정을 떠나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다. 교회가 부흥만 되면 뭐하나? 교인의 숫자가 늘어나면 뭐하나? 교회의 생태계가 풍비박산인데! 죽거나, 비뚤어지거나, 교회를 떠나게 될 것이다.

 

바로 우리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롭게 창조된 하나님의 작품, 포이에마가 되지 못한다면, 그래서 선한 일에 힘쓸 믿음과 용기와 헌신이 없다면, 그래서 교회의 생태계를 생명이 풍성하게 번성하도록 아름답게 만들지 못한다면, 우리는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는 신앙의 고백을 입술로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롭게 창조된 포이에마가 되고, 그래서 선한 일에 힘쓸 믿음과 용기와 헌신을 체득한다면, 그래서 교회의 생태계를 생명이 풍성하게 번성하도록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면, 우리는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는 신앙의 고백을 우리 신앙의 선조들과 동일하게 입술로 고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우리 교회가, 공부하는 교회, 그래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발견하고 어떻게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어야 하는지 발견하는 교회, 그래서 교회의 생태계를 바꾸어 생명이 풍성하게 깃들도록 만드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교회의 생태계가 무너져 많은 어려움이 있는 이 시대에, 할 일이 정말 많다. 우리는 정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하도록 새롭게 창조된 그리스도인인가? 그렇다면 우리 함께 공부하는 교회’, ‘생태계를 바꾸는 교회를 세워 나가자. 그리하면,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우리 교회는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는 교회,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시는 아름다운 교회가 될 것이다. 그야말로 “number 1 church”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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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