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9. 8. 17. 04:17

공부하는 교회

(요 1:45-51)

 

성경에는 빌립이라는 이름이 여러 군데 나온다. 그 중 가장 유명한 두 명은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한 명인 빌립과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일곱 집사 가운데 한 명인 빌립니다. ‘빌립()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본문은 예수님의 제자 빌립이 그의 가장 친한 친구 나다나엘에게 예수를 소개하는 장면이다.

 

그렇다면, 나다나엘은 누구인가? 대체적으로 나다나엘은 바돌로매를 가리킨다고 본다. 바돌로매(나다나엘)은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한 명이다. 세례 요한이 자신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한 것처럼, 빌립도 자신이 먼저 만나 알아본 예수님을 가장 친한 친구인 나다나엘에게 소개하고 있다.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나사렛 예수(나사렛 출신 예수)’를 메시아로 소개하자, 나다나엘은 실망한듯 이렇게 답한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46). 여기서 선한 것은 메시아를 가리키는 말이다. 율법과 선지자들의 기록에 의하면 메시아는 나사렛이 아니라 베들레헴출신이어야 한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5:2). 그런데, 빌립이 메시아라고 소개하고 있는 예수가 나사렛출신이라고 하니, 나다나엘은 실망한 것이다.

 

그래도 빌립은 포기하지 않고 나다나엘을 계속하여 설득한다. “와서 보라!” 베스트 프랜의 권유를 물리칠 수 없었던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만나러 간다. 그때, 자기에게 오고 있는 나다나엘을 보며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47). 아마도 예수님이 열 두 제자 중 가장 덕망 있던 사람이 바로 나다나엘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자기에 대하여 이러한 평가를 하시는 예수님에게 나다나엘은 묻는다.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48). 그때 예수님은 나다나엘에게 이런 대답을 하신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48).


겉으로 봤을 때는 별 말 아닌 것 같은 예수님의 이 말에 나다나엘은 예수님의 대한 자신의 태도를 180도 바꾼다.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49). 왜 갑자기, 나다나엘은 예수님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 그에 대한 신앙을 고백했을까?

 

나다나엘은 예수님의 이 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 있을 때 내가 보았노라는 말씀에 마음을 바꾸었다. 나다나엘은 무화과나무 아래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랍비 문헌에 따르면, 낮에 토라를 공부하기에 가장 좋은 나무 그늘은 무화과나무 아래라고 가리킨다. (복음서의 유대적 배경, 21). 무화과나무의 잎사귀는 넓다. 그래서 그늘을 짙게 만든다. 옛날, 무덥기로 유명한 중동 지역에서 낮에 공부할 만한 곳은 단연 무화과나무 아래로 꼽혔다. 또한 무화과나무 아래서 공부하면 무화과의 은은한 향기를 맡을 수 있어 좋았다.

 

나다나엘은 무화과나무 아래서 토라(하나님의 말씀)’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시편 1편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복 있는 사람은 율법(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한다. 토라를 주야로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참 이스라엘 사람이고, 그 마음에 간사한 것이 없는 사람이다. 나다나엘은 무화과나무 아래서 토라를 열심히 공부하면서 당연히 메시아를 기다렸을 것이고, 메시아를 통해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를 대망했을 것이다.

 

예수님이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 있을 때에 보았노라라고 말씀하신 것의 뜻은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서 진심으로 간구하고 찾고자 했던 그 하나님 나라가 지금 임했다라는 뜻이다. (복음서의 유대적 배경, 22). 메시아와 하나님 나라를 간절히 기다리며 열심히 공부했던 나다나엘이 지금 자신의 눈 앞에 임한 메시아와 하나님 나라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 이상한 것이다. 열심히 공부한 나다나엘은 예수님이 메시아인 것을 알아보았다. 그래서 그는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며 예수님을 따른 것이다.

 

진리는 운 좋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자가 발견하는 것이다. 공부하지 않으면 우리는 진리를 발견할 수 없다.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니까, 엉뚱한 것(우상)에 마음을 빼앗겨 인생을 망치며 산다. 며칠 전 신문기사를 보니, 타작마당으로 신도들을 때리고, 피지 섬에 지상 낙원 건설한다며 신도들을 감금, 노역 시킨 신옥주 목사(목사라는 말을 쓰면 안 된다!)가 징역 6년을 구형 받았다.

 

묻고 싶다. 이것을 법원이 판결해 주어야 아나? 법원이 판결해 줄 정도 되면, 이미 개인의 영혼은 상할 대로 상해 있고, 가정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 때다. 그제서야 법원이 판결해서 징역 6년을 구형하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렇게라도 그 사람은 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그러한 일이 나 자신에, 우리 가정에, 우리 교회 공동체에 일어나지 않도록, 그래서 한 영혼도 상하지 않도록, 가정을 지켜내기 위하여, 공동체를 튼실하게 세워나가기 위하여,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무엇이 진리인지,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면, 영혼을 망치고 가정이 파괴되고 공동체가 무너지는 일은 애초부터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리와 우상을 구별하는 분별력은 공부를 통해 기르는 수밖에 없다.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진리를 분별하는 것이 어려운 판에, 아무런 공부도 안 하면서 거짓 교사의 가르침에 속지 않고 인생을 망치지 않을 거라는 요행을 바라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고 어리석은 발상이다. 이는 마치 다음과 같은 어처구니 없는 일을 행하는 사람과 같다.

 

물이 귀해 식수마저 부족한 어느 나라 사람이 서구를 방문했다가 수도꼭지에서 물이 시원스레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경탄했다. 그래서 수도꼭지를 여러 개 사서 자기 나라로 돌아와 벽에 꽂아 놓고 틀어 보았지만 물이 나오지 않아 크게 실망했다. 벽 뒤에 마땅히 있어야 할 배관도, 급수 펌프도, 정수장도 없으니 물이 쏟아져 나올 리가 없다. 심층적 이해(공부) 없이는 해결책도 없다. (김용규,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8-9).

 

공부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일은 건전한 신앙생활을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교회의 사업이다. 여러 가지로 부족한 것이 많지만, 그래도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 공부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면 우리의 삶과 영혼, 우리의 가정, 우리의 공동체를 지키며 아름답게 세워 나갈 수 있다. ‘공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 중의 하나이다.

 

일례로, 얼마 전 한국에 다녀오신 OOO 권사님 내외분이 동생의 장례를 도와준 어느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는데, 그 교회를 가서 단 번에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셨단다. 그 이유는 우리 교회에서 얼마 전 했던 <두 편의 영화와 한 번의 강의>를 통해서 기독교 죄론에 대한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그 교회를 가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죄에 대한 이야기밖에 안하고, 죄만 강조해서 사람들을 죄인 만들어 놓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권사님 내외분은, 그 교회의 위성험을 알겠더라고, 말씀해 주셨다.

 

공부를 해 나가다 보면, 몰랐던 것, 잘못 알았던 것이 보이고, 어떠한 것이 선한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 우리의 가정, 우리의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선한 것에 마음을 기울이고, 우리의 영혼, 우리의 가정, 우리의 공동체를 파괴하려는 악한 것에서 마음을 돌이켜야 한다.

 

나는 지금 선한 것과 사귐을 가지며 풍성한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혹시 악한 것을 선한 것으로 착각하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보석 같은 삶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우리의 삶과 영혼, 우리의 가정, 우리의 공동체를 건강하게 지켜 나가기 위하여, 무엇보다, 공부해야 한다. 공부하는 공동체, 그래서 선한 것을 알아보는 공동체, 그래서 생명의 풍요로움을 누리는 공동체, 우리 교회가 바로 그런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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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