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3. 11. 25. 15:12

우리가 정말 감사해야 하는 이유

(골로새서 1:15-20)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이기도 하지만, 교회력에 의하면 오늘은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입니다. 또한 교회력의 마지막 주일이기도 합니다. 다음 주부터는 대림절(대강절)로 시작되는 새로운 교회력이 시작됩니다. 교회에서 교회력을 지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교회력은 온통 삼위일체 하나님께만 집중하도록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오늘은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로서 그리스도에게 집중하도록 우리를 이끕니다.

 

여러분은 왜 감사하십니까? 무엇이 여러분의 입술에서 감사의 언어가 흘러나오게 합니까? 우리가 감사하는 이유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우리는 쉽게 우리가 부자인 것(잘 먹고 잘 사는 것), 우리가 건강한 것, 우리의 어떠한 모습이 잘 된 것에 대해서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그러한 것들을 가능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고 고백합니다. 물론 그러한 감사의 고백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정말 감사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 그리스도가 우리의 으로 존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왕 또는 왕권은 다스림을 말합니다. 왕권은 다스리는 권세를 말합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왕이라는 고백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다스리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의 삶에 실제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왕이 가지고 있는 세속적 의미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그리스도의 왕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왕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대부분 권력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러면서 권력이란 자기 마음대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게 해주는 능력으로 생각합니다. 역사에서 패권을 차지하려고 했던 모든 영웅들은 권력을 손에 거머쥐고 천하를 호령하는 꿈을 꾸며 이 세상의 왕이 되려고 했습니다. 지금도 왕권을 차지하려고 하는 경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민주적이라는 단어로 조금 세련되게 포장되어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에 대한 세속적 이미지가 그리스도의 왕권을 흐리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왕권도 세속적인 왕권처럼 그 아래 있는 모든 것을 굴복시키는 패권 정도로 생각하게 끔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왕권은 세상에서 말하는 왕권과는 근본적으로, 질적으로 다릅니다. 이 세상에서의 왕권은 우리의 삶을 피폐시키고 멸망시키고 종속시킬 뿐이지만, 그리스도의 왕권은 우리는 구원하는 왕권이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오르는 섬김의 왕권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세상의 왕권은 우리들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왕권은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 줍니다.

 

이 세상에서 왕권을 주장하는 것들을 짚어 보면, 정치인들, , 죽음 정도로 추려낼 수 있을 겁니다. 이에 대해서 깊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러한 것들이 왜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지 못하는지 우리는 압니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서 백성을 기만하기 일쑤입니다. 그들이 하는 정치적 공약은 모두 장밋빛 거짓말에 불과합니다.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어 표를 모아 권력을 쟁취하려는 술수에 불과합니다. 일단 당선되고 나면 정치적 공약은 휴지통에 버려지기 일쑤입니다. 공약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변명을 늘어놓기에 바쁩니다.

 

이 시대에 왕권을 가진 것 중 가장 강력한 것은 돈입니다.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팽배한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물론 돈이 있으면 좀 편하게 살 수 있는 것은 맞지만,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못합니다. 이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돈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특별히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들은 절대로 돈 주고 살 수 없습니다. 물론 돈이 있으면 값비싼 건강보험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 자체는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물론 돈이 있으면 으리으리한 집과 최신형 좋은 차를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물론 돈이 있으면 의료서비스를 그때그때 잘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명을 연장시킬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돈이 죽음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인간이 풀 수 없는 죽음의 문제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인류가 이 땅에서 살아온 이래로 가장 치열하게 싸워온 문제는 죽음의 문제입니다. 이것을 둘러 싸고 철학이 발달되어 왔고, 이것을 둘러 싸고 의학과 과학기술이 발달되어 왔습니다. 죽음이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고찰과 죽음을 막아보려고 하는 인간의 노력은 눈물 겹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인간이 가장 작고 초라해지는 순간은 죽음 앞에 섰을 때입니다.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죽음이 밀려올 때 그저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는 것 외에는 어떠한 방도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이 세상의 왕권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왕권을 만납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왕권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왜 그리스도가 왕이신지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가질 수 있습니다.

 

첫째, 오늘 말씀은 그리스도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말해 줍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알고 만날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은 그에 대한 답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그리스도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15).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지만, 그리스도는 보이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 그리스도를 보면 하나님을 보는 것이라 합니다. 성경은 일관되게 주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가장 분명하고 정확하게 만날 수 있다고 말이죠.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왕권은 하나님 그 자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오늘 말씀은 그리스도와 이 세상과의 관계에 대해서 말해 줍니다. “그는(그리스도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15b-16a). 초대 교회 성도들(사도들)이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수의 부활체험 때문입니다. 예수의 부활체험을 통해서 그들은 그리스도를 창조의 중재자로 인식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단순히 구원을 가져다 주는 존재 일뿐만 아니라, 모든 만물의 창조자로 인식된 것이죠.

 

셋째, 그리스도가 세상을 창조한 분이기 때문에, 그는 세상의 주권자로 받아들여 집니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16). 보이는 것들은 우리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말하나, 보이지 않는 것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들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생명은 보이지 않는 것인데,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생명현상만 볼 뿐이지, 생명 자체를 보지는 못합니다.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죽음현상만 볼 뿐이지, 죽음 자체를 보지 못합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았다는 것은 생명의 근원(또는 죽음의 근원)이 그리스도에게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고 창조주이시고 이 세상 모든 것(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의 주권자시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고 하시는 일에 대해서 오늘 말씀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19-20).

 

이 세상의 왕권은 우리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배만 불리고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 뿐이지만, 그리스도의 왕권은 화평을 이루는 왕권, 하나님과 화해시키는 왕권, 즉 우리를 구원하는 왕권입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은 진정한 섬김의 왕권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사도들)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그리스도의 왕권과 같은 것을 만나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살고 있던 시대의 패권은 로마 황제가 쥐고 있었는데, 로마 황제는 자기 자신을 신이라고 말하며 자기 자신을 숭배할 것을 명령합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 성도들은 부활의 예수를 만난 뒤, 스스로를 신이라 하며 자신을 숭배할 것을 강요하는 로마 황제를 왕으로 모실 수 없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통하여 그들은 어떤 왕이 참된 왕인지, 뼈 속 깊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우리는 여러 가지 감사의 이유는 놓고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올려드리는 감사의 이유를 면밀히 살펴보면 참으로 세속적입니다. 우리는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것 때문에, 건강한 것 때문에, 자식이 잘 된 것 때문에, 또는 하늘이 맑은 것 때문에 감사합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즉 가난해지거나 건강을 잃거나 자식이 속 썩이거나 또는 하늘이 흐리면 감사할 이유가 없어져 하나님을 섬길 이유가 없는 것처럼 감사의 이유를 세상적인 것에서 찾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추수감사주일과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을 맞아, 우리가 정말 감사해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왕이신 것에 감사하십시오. 이 세상의 그 어떤 무엇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선포하고, 그분의 다스리심만을 받으며 사십시오. 왜냐하면 바로 거기에, 바로 그리스도께만 하나님과 화해하고 화평을 이루는 참된 구원의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하나님이시요 창조주이시요 모든 만물의 주권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왕이신 것을 감사합시다. 이것이 우리가 정말 감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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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