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2011. 10. 20. 08:16

이렇게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

- 사랑은 상식만큼 피어난다

 

어린 시절 비 올 적마다 엄마가 만들어 주신 도너츠. 지금 생각하면 끔찍하다. 기름에 튀긴 거라 끔찍하고 그런 걸 정신 없이 먹었다는 것이 끔찍하다. 그런데 그 시절엔 그것이 상식이었다. 기름에 튀긴다는 사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것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행복했을 뿐이고 그런 사실에 풍요롭다고 느꼈을 뿐이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는 나에게 맛있는 간식을 주신 것이 아니라 독을 주신 것이나 다름 없다. 지금은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 트랜스 지방이 엄청 들어간 기름에 튀긴 도너츠를 간식으로 주셨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러한 엄마의 사랑에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엄마의 상식에서는 그것이 최선이었고, 그것이 엄마가 자식들에게 베푼 최고의 사랑이었다. 사랑의 행위는 늘 바르고 정직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사랑은 상식에서 벗어나 있고 상식을 비껴간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아는 만큼, 자신의 상식 선에서만 사랑을 베풀 수 있다. 그것을 넘어서는 사랑은 이미 인간의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상식만큼 피어난다. 상식만큼만 사랑을 이해하고 받으면 된다. 그래서 난 이렇게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이면 엄마의 그 끔찍한도너츠가 그립고 또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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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