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2012. 1. 4. 05:54

종말론 책에서 종말을 맞이한 날파리 한 마리를 보았다

너무도 쬐끔해서 한 글자조차 가리지 못하는 몸뚱어리가 글자인양 누워있었다

사실 거기에 써 있는 글자들은 읽어내기가 너무 어렵다

아직 우리에게 닥치지 않은 알 수 없는 미래를 논하는 글이기에

약간만 딴생각을 해도 따라가기 힘든 논리들이다

바로 그러한 종말론 책에서 종말을 맞이한 날파리는

종말론 책을 읽으며 종말을 이해해 보려고 애쓰는 나보다 더 종말을 잘 이해하고 있으리라

그 얼마나 위대한 종말인가?

살다가 종말을 맞이하는 것도 위대한 일인데

종말을 논하는 종말론 책에서 종말을 맞이했으니

이 날파리는 참으로 행운아다

나는

한 글자조차도 가리지 못하는 몸뚱어리를 종말론 책에 파묻으며 종말을 맞이한 이 날파리에게서 종말을 이해해보려고 즐비하게 늘어지는 논리를 펴는 이 책에서보다

많은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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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