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과 교회]

 

현대사회에서 교회는 남유다 왕국처럼 작은 나라이다. 앗수르와 바벨론이라고 하는 거대 제국, 즉 자본주의의 끊임없는 압박과 요구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다. 교회는 제국(자본주의)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자율성을 확보해야만 한다. 그런데 그게 녹록치 않다.

 

열왕기를 보면, 제국의 압박과 요구를 수용하여 과도한 행보를 보이는 왕(아하스)도 있고, 제국의 압박과 요구에 저항한 왕(히스기야)도 있다. 그러나 결국, 남유다는 제국의 압박과 요구를 견디지 못하고 멸망하고 만다.

 

열왕기를 보고 있으면, 마치 자본주의 제국에 맞서 힘겹게 생존하고 있는 이 시대의 교회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어떤 교회는 자본주의의 압박과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도 하고, 어떤 교회는 자본주의의 압박과 요구에 저항하기도 한다. 그런데, 결과는 같다. 점점 쇠퇴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의 압박과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교회는 좀 더 오래 살아남을지 모르지만, 긴 시간을 두고 보면, 결국 같은 길을 간다. 멸망.

 

우리는(교회는) 머지않아 나라를 잃고 멸망 당하여 디아스포라가 된 유대민족처럼 디아스포라가 될 지 모른다. 영토를 확보하기 힘들고, 국민을 모으기 힘들고, 독자적인 정치와 경제 체제를 갖추기 힘들게 될지 모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성경의 유대인들에게 말씀 중심의 신앙(시나고그 신앙)이 생기게 된 것은 더 이상 성전 중심의 신앙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성전 중심의 신앙을 하는 마지막 세대일지 모른다. 우리 시대가 지나고 나면, 나라를 잃은 이스라엘처럼 교회는 더 이상 성전 중심의 신앙을 하는 게 힘들어 질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 신앙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유대 나라가 사라졌다고 해서 유대인이 사라지거나 여호와 신앙이 사라지지 않은 것처럼, 교회가 사라졌다고 해서 기독교인이 사라지거나 그리스도 신앙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 신앙을 지켜나가는 형태가 바뀔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야 한다. 건물이 성전이 아니라 나 자신이 성전이 되어 어느 곳에 있든지, 어느 형편에 있든지,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그분의 뜻대로 사는 것을 성육신같이 이루고 사는 삶을 연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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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