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1. 6. 27. 04:39
 2011 6 26일 주일 예배 설교

본문: 22:1-14

제목: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리라

 

어떤 아들이 "어머니를 사랑한다. 어린양처럼 천사 같은 어머니를 하나님이 계신 하늘나라로 보내드려야 한다"고 생각해 어머니를 살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아들은 평소 종교에 심취해서 사건 발생일 얼마 전부터 방에서 나오지 않고 방언을 하면서 괴성을 질러댔다고 합니다. 아마도 기도(방언)을 통해서 신접(하나님을 만남)했었나 봅니다. 어머니는 그 모습을 보고 겁을 먹고 있는 딸을 달래는 도중 이러한 변을 당했다고 합니다.

 

경찰 조사에 의하면 정신병력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조사 도중 횡설수설하는 등 정신 이상 증세를 보였다고 합니다. 존속살해(자기나 배우자의 직계가족을 죽이는 일)가 심심치 않게 일어납니다. 어머니를 죽인 아들의 진술을 보건 데, 아마도 어머니를 죽이는 일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자신을 변호하고 있는 것 같습니까? 이 진술로 살인에 대한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한국 근대문학의 거장 김동인의 소설 <명문>이라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전 주사라는 독실한 기독교인이 노망이 난 어머니를 편히 보내드리는 것이 하나님께 칭찬 받을 선행이라고 생각하고 어머니를 독살합니다. 이 일로 전 주사는 법정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죽습니다. 죽어서 하늘 나라에 간 전 주사는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법정에 또 다시 서게 됩니다. 자신이 한 일을 통해 하나님께 칭찬 받을 거라고 확신했던 전 주사는 하나님 앞에서 의기양양하지만 하나님께서 어머니를 죽인 것은 살인죄라며 그의 지옥행을 결정하시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납니다.

 

이렇게 존속살해 하는 장면이 성경에도 나오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께 산제물로 바치는 장면을 보고 아멘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성경에 등장하니까 앞뒤 다 떼어놓고 그 이야기를 거룩하게만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게다가 내 이야기가 아니라 남의 이야기니까 더욱 그렇습니다.

 

오늘 예배 드리면서 계시를 받았는데, 그것이 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자녀를 하나님께 산제물로 바치라는 계시였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요즘 시대에 이러한 계시를 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실행에 옮기려고 했다가는 당장 경찰에게 붙잡혀서 철장 신세를 지게 될 겁니다.

 

우리는 오늘 아브라함의 마음을 한 번 따라가 보려고 합니다. 이 사건은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과 관련이 된 사건입니다. 아브라함은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께 이런 약속을 받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그런데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이러한 약속을 받고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낯선 땅에 이르러 거기에서 오랜 세월을 살았는데도 아브라함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고민을 하다가 사라의 몸 종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이라는 자식을 얻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건 하나님의 약속의 자식이 아니라, 인간의 조바심과 욕심에서 비롯된 자식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질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았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나이는 이제 자식을 생산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거의 약속을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에 이삭이라는 아들을 얻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집니다. 어렵게, 아니 불가능한 상태에서 기적적으로 얻은 약속의 자식인 이삭을 하나님께 당신께 산제물로 바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두 가지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는 그 당시 가나안 족속들과 그 주변 나라들 사이에 만연했던 어린 아이의 희생제사를 싫어하셨는데, 그 싫어하시고 폐지하려 하셨던 바로 그 제사를 드리려고 하니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약속하신 그 약속의 자식을 주시고, 이삭을 다시 산제물로 바치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 당신의 약속을 거두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러한 커다란 의구심이 들었었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합니다. 그리고 아들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러 모리아 산으로 향합니다. 모리아 산으로 가는 길은 3일 걸렸습니다. 모리아 산으로 가는 3일 동안 아브라함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여러분 같으면 어떤 생각을 하면서 모리아 산으로 향했겠습니까? 룰루랄라 하면서 갔겠습니까? 그러한 명령을 받아본 적이 없는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생각을 하면서, 극단적인 고뇌에 빠져 3일 동안을 끙끙거리면서 갔을 겁니다.

 

모리아 산에 도착해서 아브라함은 종들을 산 아래 남겨 두고, 아들 이삭하고만 산에 오릅니다. 장작은 이삭이 지고, 불과 칼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산에 오르면서 이삭은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는데, 왜 제물로 드린 어린양은 없습니까?”

 

심장을 파고드는 질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심장에는 화살이 꽂히는 것과 같은 아픔을 느껴졌을 겁니다. 이렇게 질문하는 아들에게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그냥 정직하게 말합니까? “네가 바로 제물이란다!” 이렇게 모질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부모는 이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이 순간, 아니 아예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하는 이 순간에 아브라함은 모든 것이 끝이라는 절망에 빠졌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신 약속은 이제 없어지는구나! 하나님께서 약속을 거두시는구나! 이제 나는 미래가 없는 허망한 인생을 살게 되겠구나!’

 

이 순간, 아브라함은 온 힘을 다해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는 단순한 대답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온 존재가 젖먹던 힘까지 짜내며 지르는 영혼의 탄성이었습니다.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그리고 침묵 가운데 하나님이 지시하신 곳에서의 제사는 진행이 됩니다. 제단을 쌓은 뒤 아들을 결박하여 제물 삼아 제단 위에 놓고 칼을 들어 아들을 잡으려고(죽이려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천사가 아브라함을 막아 섰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영혼의 탄성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아셨노라고 선포합니다.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그리고 눈을 들어 살펴보니,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숫양 한 마리가 수풀에 뿔이 걸린 채 있었습니다. 그 숫양을 잡아다가 이삭을 대신하여 제사를 드리고, 아브라함은 그것을 일컬어 여호와 이레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여호와 이레는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하신 시험(Test)입니다. 약속을 주신 하나님을 참으로 믿고 신뢰하느냐 아니냐를 본 무시무시한 시험입니다. 견딜만한 시험이 아니라 모든 것이 무력화되고 인간의 힘으로 견딜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시험입니다. 이것을 이길 수 있는 길은 믿음 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하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이보다 더 한 시험을 당하신 분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서 죽어갈 때 아바 아버지를 외치고 다 이루었다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의 때처럼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을 겁니다. 죽기 전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예수님을 처형한 무리들을 물리치시고 숨 넘어 가기 전에 있었던 예수님을 극적으로 구해내셨을 겁니다.

 

그러나, 십자가 위에서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경우를 뛰어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 십자가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그냥 그렇게 아무런 힘 없이 죽었습니다. 그냥 모든 것이 끝난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는 순간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죽기까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기까지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셨습니다. 그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을 끝까지 믿고 신뢰했습니다. 그랬더니, 믿지 못할 놀라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꼭 배워야 합니다. 이것을 놓치면 신앙생활은 참 허무한 겁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무너집니다. 약속을 주신 하나님을 붙잡지 못하고, 눈을 자꾸 딴 곳을 돌립니다. 성령으로 시작한 일, 육체로 마치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서는 어떠한 영혼의 탄성이 흘러나옵니까? 어떠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다는 신실한 믿음이 자리 잡고 있습니까? 일이 잘 안 풀리고, 삶이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할지라도, 약속의 하나님을 붙들고 있는 한, 그분께서 친히 준비해 주신다는 믿음이 이 마음 속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까?

 

이 시간,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희망을 전합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해 주십니다. 그러니, 갈등 되지만, 흔들리지만, 힘들고 어렵지만, 아브라함처럼 마음 속 깊은 데서 우러나오는 영혼의 탄성을 질러 보십시오! “아버지! 당신께서 친히 준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친히 준비해 주시는 분입니다. 이것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