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1. 7. 28. 06:56

2011 7 27일 수요 예배 설교

본문: 에스겔 28:1-9

제목: 내가 주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의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불의, 즉 정의롭지 못한 일에 대하여 분노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의분이라는 것이 잘못 쓰이면 남을 정죄하는 데 쓰입니다. 나만 의롭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은 불의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오히려 남이 불의한 만큼 자기 자신도 불의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겸손한 겁니다.

 

우리는 살면서 의분을 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의분을 낼 때는 굉장히 조심해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의분을 낸다고 하니까, 우리는 과격한 말과 행동을 떠올리지만, “의분은 꼭 과격한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그것을 볼 수 있는데,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향해서 의분을 내신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 사건은 그 상황이 매우 폭력적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들의 폭력성이 드러난 것이지, 그것에 대처하는 하나님의 의분은 인간들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폭력에 폭력으로 대항하지 않으시고, 용서하심과 자비하심으로 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의분은 사실 아무나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말씀에 따르고, 그분께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절대로 의분을 올바로 낼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 보면 팔복이 나옵니다. 그 중에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의분입니다. 애통하는 마음은 아무나 갖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믿음 아래서만 의분이 나오는 것입니다. 애통하는 마음이란 하나님의 의가 이 땅 위에 올바로 실현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의가 올바로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애통해 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 세상은 기본적으로 의롭지 못합니다. 불의가 판을 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또는 내 삶의 구석구석에서는 의롭지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생명, 구원을 말합니다. 의롭지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생명을 파괴하는 일, 구원의 상황이 아니라 오히려 절망과 고통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얼마 전 그 평화로운 나라 노르웨이에서 대량학살 테러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무려 76명의 생명이 이슬같이 사라졌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일본 소설가가 있습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소설이 상실의 시대라는 소설인데, 한국말로는 그렇게 번역되었지만, 원작의 제목은 노르웨이의 숲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노르웨이의 숲에서 이러한 대학살이 벌어졌습니다. 그 작가는 어떤 생각을 할까요? 또 비틀즈의 노래 중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비틀즈의 노래를 좋아했던 분들은 아실 겁니다. 노르웨이의 숲에서 속삭인 사랑 또는 이별 노래죠. 비틀즈가 이 소식을 듣는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요? 또 있습니다. 노벨상은 원래 스웨덴 것이지만, 노벨 평화상 만큼은 노르웨이에서 선정하고 상을 줍니다. 그런 노벨 평화상이 베풀어지는 노르웨이의 숲에서 이러한 끔찍한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 노벨평화상 위원회는 어떠한 생각을 할까요? 한 마디로, 불의하고 이해되지 않는 세상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 것입니다.

 

이 사건도 불의하지만, 이 사건을 일으킨 학살자 안데르스 브레이빅의 삶 자체도 불의합니다. 부모의 이혼과 복잡해진 가족 관계 속에서 외롭게 십대를 보낸 브레이빅의 삶은 그에게 고통을 안겨다 주었고 정상적인 삶을 할 수 없는 비뚤어진 마음을 심어주었습니다. 그의 삶은 불의합니다. 불의한 삶에서 나온 불의한 일입니다.

 

어제는 서울에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곳곳이 침수되고, 특별히 우면산에서 토사가 흘러내려 그 주변의 주민들이 여러 명 죽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서울시 서초구 우면동은 개인적으로는 제가 살던 동네입니다. 지난 7년 동안 나의 살던 고향을 못 봤는데, 토사로 쓸려 내려가 전쟁터처럼 변해버린 동네를 인터넷 사진으로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러한 자연재해를 통한 일들도 의롭지 못합니다. 생명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생명을 앗아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정말 불의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큰 사건들이지만, 우리가 알지도 못하고 감지하지도 못하는 불의한 일들이 우리 주변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러한 불의한 일들을 보면서, 우리의 마음은 어떠해야 합니까? 바로, 애통해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하면서 하나님께 따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하나님의 의로움이 드러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애통해야 한다는 겁니다. “주의 나라가 하루 빨리 임하옵소서!”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울부짖어야 한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불의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 불의를 불의로 인식할 수 있고, 불의를 보고 애통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간구하십시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마음입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것은 불의한 일을 보고 애통하지 못하고, 오히려 교만해지는 두로 왕의 간악한 마음입니다. 이번 주 성경통독 범위를 읽어보신 분을 알겠지만, 이스라엘 주변 나라들 모두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계속 반복해서 등장하는 문구가 바로 내가 주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통해서 열방에게 당신이 여호와 하나님임을 선포하시길 원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열방을 비추는 빛이 되길 바라셨습니다. 열방을 일깨워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인 것을 알기 바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일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하고,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쓰러지는 이스라엘을 보고 주변 나라들은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삼으시고 제사장 나라 삼으신 이스라엘이 망하는 일은 불의한 일입니다. 열방이 만약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그를 두려워했다면, 이스라엘이 멸망해 가는 그 불의한 일을 보고, 그들이 해야 할 일은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애통하는 마음을 가졌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애통하는 마음을 갖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이 망하는 것을 보면서 비웃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기는커녕, 하나님을 능멸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불의를 보고 애통하기는커녕, 불의를 보고 기뻐하며 마음이 교만해진 두로 왕을 심판하겠다고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장엄한 말씀입니다. 각 나라마다 심판을 선포하시는 장면이 너무 장엄하고, 너무 심오하고, 너무 깊습니다. 하나님의 애통하는 마음이 읽어지는 듯 합니다. 그 중에서 두로 왕을 심판하시겠다는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우리에게 경종을 울립니다.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27장을 보면 두로에 대한 애가가 기록되어 있는데, 두로가 얼마나 부국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실로 잘 먹고 잘 살던 나라였습니다. 요즘으로 따지면, 미국이나 일본쯤 되는 나라입니다. 여러 나라와의 무역을 통해서 부를 축적했습니다. 두로의 입장에서 보면 이웃 나라였던 이스라엘(북이스라엘, 남유다)는 망해가는데, 자신들은 계속 부를 누리고 있는 상황 속에서 마음이 교만해진 것입니다. 심지어, 두로 왕은 자기 자신을 신으로 생각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28 4-5절 말씀이 전해줍니다. “네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금과 은을 곳간에 저축하였으며 네 큰 지혜와 네 무역으로 재물을 더하고 그 재물로 말미암아 네 마음이 교만해졌도다.” 이러한 상황을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의 입을 빌어 28 11절 이하에서 에덴동산의 아담으로 비유합니다. 13절 말씀입니다.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과…”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어떻게 하다가 쫓겨났습니까? 불의한 일을 불의하다고 하지 못하고, 애통하지 못하고, 그저 불의한 일을 쫓아 행하다가 그렇게 망하게 되었습니다.

 

두로를 비롯해서 이스라엘 주변의 모든 나라들이 불의한 일을 불의하게 보지 못하니까, 애통한 마음이 없고, 도리어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안일한 생각을 갖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백성이 왜 망합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란, 의가 무엇인지 아는 것입니다. 의가 무엇인지 아는 하나님의 참된 백성은 불의를 보고 그냥 있지 아니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도 사도 바울이 뭐라고 합니까?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사랑은 무엇입니까? 아가페 사랑, 즉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우리 마음은 의로움으로 가득 찹니다. 다른 말로 해서, 우리 마음은 생명으로 가득 차고, 구원으로 가득 찹니다. 생명과 구원이 가득한 의로운 마음은 절대적으로 불의를 미워하고 불의를 보면 의분이 생기고, 불의를 대하면 애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주 여호와 하나님을 아십니까? 그분을 아는 자는 의로움 가운데 살 것이요, 그분을 모르는 자는 불의 가운데 살게 될 것입니다. 그분을 알아, 애통하는 마음으로 사십시오. 그분께서 마음을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