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아버지!

 

미국 달력에는 Father’s day(아버지 날)라는 날이 있습니다. 미국에 오래 사신 분들에게는 낯설지 않지만, 한국에서 오신지 얼마 안 되신 분들은 낯선 풍경일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Mother’s day Father’s day가 구분되어 있지 않고, Parent’s day(어버이 날)로 통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개인주의적인 생각이 더 편만한 미국의 문화를 반영하는 것이겠죠. 한국은 아무래도 아직까지 가족의 개념이 개별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어머니 날과 아버지 날을 따도 구분하지 않고, 어버이 날의 형태로 가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한 전직 경찰이 지은 ‘아버지’라는 소설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가장으로서, 사회인으로서 권위와 힘이 축소되고 자꾸 나약해지면서 소외되어 가는 우리 시대의 아버지 상을 아주 실감나게 그려내 많은 사람의 눈시울을 적셨던 소설입니다. 이 시대의 아버지를 흔히 ‘고개 숙인 아버지’라고 합니다. 가장으로서의 절대적 권위를 잃고 직장인으로서의 정당한 자기 역할을 상실한 중년 이상 된 아버지들의 자화상인데, 참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아버지를 떠올리면 왠지 가슴 찡한 정감과 서글픔이 몰려오기도 합니다. 이런 ‘아버지’라는 호칭은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먼저, 아버지를 친근하게 부르는 말인 ‘아빠’를 살펴보면 그 역사가 상당히 깊습니다. 15세기 문헌에는 ‘아바’라는 형태로 나타나는데 흔히 사극에서 등장하는 ‘아바마마’의 ‘아바’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바’의 어원을 밝히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마 ‘엄마’의 전 단계인 ‘어마’와 비슷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아바’는 오랫동안 아버지를 부르는 호칭어로 쓰여 왔는데 20세기를 넘어서면서 ‘압바’ 또는 ‘아빠’로 그 어형이 바뀌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빠에 비해 아버지는 그 역사가 그리 길지 않습니다. 19세기 이후에 처음 등장하는데 그것도 아버지가 아닌 ‘아바지’로 나옵니다. 평범한 호칭어인 ‘아바’에 접미사 ‘지’가 붙어 만들어졌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여기에 붙은 접미사 ‘지’는 고대의 관직명인 ‘막리지’, ‘세리지’ 등에 붙은 ‘지’와 비슷한데 이때의 ‘지’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 ‘아바지’라는 말이 ‘아버지’로 변한 것은 19세기 말입니다. 지금의 아빠와 아버지는 같은 호칭어이면서도 하나는 유아어 다른 하나는 성인어로 그 성격이 분명해집니다. 그런데 아빠라는 말은 1960년대만 해도 그렇게 자유롭게 쓰이던 호칭은 아니었습니다. 가족 구조가 핵가족화되고 생활양식이 서구화되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나를 낳아주신 아버지에 대한 호칭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하지만, 자녀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주저함이 없는 것입니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