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얕보지 말라

 

곳곳마다 들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들꽃의 정체는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꽃을 피우는 절기 이외에는 그 정체를 알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체를 알아보기 힘들다기 보다는 자신의 정체를 잡초로 위장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평소 우리는 그것이 잡초라고 생각하기에 뽑고 또 뽑아 그 씨를 말려버리려고 합니다. 잔디 깎는 기계로 깎아대고, 잡초를 죽이는 화학약품도 뿌려봅니다. 그런데도 어김없이 봄이 오면 고개를 쑥쑥 들어대는 들꽃을 보면 차라리 신비롭습니다.

 

 

요즘 이곳 저곳을 다니다가 보게 되는 들꽃 때문에 오가는 길이 지루하지 않습니다. 즐겁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미안한 마음도 갖습니다. 평소에는 전혀 생각도 안 하다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때만 관심을 가져주니 말입니다. 올 해부터는 들꽃에 관심을 좀 가져야겠습니다. 관심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내년 봄에도 어김없이 흐드러지게 피어날 들꽃을 기다리는 마음을 갖는 것이지요.

 

푸른 하늘만큼, 시원한 바람만큼, 따스한 햇살만큼 요즘 저에게 기쁨을 주는 들꽃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를 얕보지 말라." 그렇습니다. 이 세상 어느 것도 얕봐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솔로몬의 영화도 저 들에 핀 꽃들보다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들꽃처럼 소소한 것에도 하나님의 숨결이 숨어 있음을 아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영성일 것입니다.

 

오늘 집으로 돌아가면서 눈에 들어노는 들꽃을 물끄러미 바라 보십시오. 제가 들꽃으로부터 들은 목소리가 들리나 안 들리나 한 번 확인해 보시죠. "아무 것도 얕보지 말라."는 세미한 음성이 들리는 신비로운 일이 여러분의 귓가에 펼쳐지기를 두손 모아 빕니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