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지배계급의 주요 논리
1) 성장과 발전 가치의 절대화
2) 반공 이데올로기의 재생산과 확대
3) 미국 없는 독자생존의 불가능성
(현대정치의 위기와 비전, 121쪽)
이번 한국의 총선 결과는 팬데믹 영향일까, 아니면 위에서 열거한 지배계급의 주요 논리에 대한 반발일까?
'자유 민주주의'를 주창하는 지배계급의 논리는 1번과 2번의 논리에 맞닿아 있다. 자유 민주주의를 거역하는 것은 성장과 발전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요, 자유 민주주의와 대립적인 이념인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에 패배하는 것이라 여긴다.
성장과 발전 가치의 절대화를 주장하는 것은 자신들의 끝없는 탐욕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선언과 같다. 탈북자 출신들이 보수당 의원으로 국회에 진출하게 된 것은 한국의 보수당이 아직까지 얼마나 2번의 논리를 내세워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유지하려는 지 알 수 있는 예시이다.
탈북자 출신 정치인들이 한국 사회에 희망이 되려면 '반공 이데올로기의 재생산과 확대'를 공고히 하는 데, 그리고 반공 이데올로기를 정치에 활용하는 데 그치면 안 된다. 그러한 논리와 기반으로 한국에서 정치활동을 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그들은 '새터민'의 인권과 번영을 위해 일해야 함과 동시에 '사회적 약자층'의 인권과 번영도 함께 챙겨야 한다. 더 나아가, 남북통일을 위한 지렛대가 되어야지, 반공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고 확대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경험을 활용하여 남북분열을 조장하면 안 된다.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되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대국'에 기대어 사는 것에 너무 익숙하다. 오랜 세월 한국은 중국에 기대어 살았고, 미국에 기대어 산지도 벌써 70년의 세월이 흘렀다. 언제까지 이러한 역사를 반복할 것인가.
게다가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현상에 대처하고 있는 미국의 그 부족한 역량을 목도하고서도 아직까지 '미국 만세'를 부르고 살 것인가? 한국은 더이상 미국의 헐리우드 액션에 속지 말아야 한다. 미국은 그동안 헐리우드 영화 등을 통해 거대서사를 창조하여, 그 거대서사 속에서 자신을 극대화시키는 일을 끊임없이 해왔다.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 미국은 지구의 크고 작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일 뿐만 아니라, 인류의 위기를 구원해 주는 메시아의 이미지를 심어 놓았다. 자연발생 위기가 닥쳐도, 외계인이 침입해도, 미국은 언제나 앞장서서 자신들의 발전된 문명과 기술을 바탕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거대한 힘인 것처럼 자신을 포장해 왔다.
그런데, 미국의 거대서사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에 의해 비참하게 무너졌다. 실제 문제가 발생하니, 대처 능력이 없는 게 탄로났다. 동네에서 제일 싸움 잘 하는 '형님'인 줄 알았는데, 막상 붙어보니 별거 아닌 허풍쟁이였던 것이다.
한국 사회의 지배계급의 논리도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가 되었다. 한마디로, 한국 사회의 지배계급의 논리는 너무 시대착오적이다. 아직까지 이 논리를 통해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유지하려 든다면, 그들은 스스로 멍청이인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내가 보기에 민주당의 국정철학도 그렇게 진보적이지 않다. 민주당의 국정철학은 보수당이 가질 만한 정도 밖에 안 된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한국의 보수당이 얼마나 시대에 뒤쳐져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정치가 얼마나 뒤쳐져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시대는 변한다. 그 변화에 맞춰 정치도 열심히 변해야 한다. 안 그러면 그 어느 당이라 할지라도, 국가의 발전을 저해하는 '불한당'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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