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하지 않기 - 신비에 잠기기

 

과학적 사고란 대상을 분석하는 사고를 말한다. 학문은 이렇게 발전되어 왔다. 대상을 분석하여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 그래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파악'하는 것이 학문의 원리이다.

 

우리는 일상에서도 이런 식의 사고를 한다. 가령 상대방의 성격을 분석하여, 그 사람이 어떠한 유형의 사람인지 '파악'한다.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사람에 대하여 '안다'고 말하며 안심해 한다.

 

이런 질문을 하고 싶다. 대상(타자라고 불러도 좋다)을 분석하는 일은 가능한가? 우리는 왜 대상을 분석하고 싶어하는가?

 

가령, 지금 전 세계는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람들이 불안에 떠는 이유는 아직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의 정체를 파악하려는 이유는 그것을 정복하여 더 이상 그것의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이다.

 

어떤 면에서, 뭔가를 분석하여 파악한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분석은 대상에 대한 '신비감'을 무너뜨린다. 그럴 수밖에 없다. 대상이 파악되고 나면 사람은 그 파악된 대상에 대하여 지배하려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파악된 존재는 나에게 더이상 신비를 줄 수 없다. 내 존재보다 아래의 존재인 것처럼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보다 열등한 존재에게는 결코 신비감을 갖지 못한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과학적 사고를 발휘해야 하는 삶의 부분과 그러면 안 되는 삶의 부분을 구별하고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가령, 사랑하는 사이에서는 상대방을 분석하고 파악하는 일을 삼가는 게 좋다. 상대방을 분석하고 파악하는 순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신비는 무너지고 만다. 신비감 없는 사랑은 타다 만 장작이 될 뿐이다.

 

현대인들이 가진 최고의 비극 중에 하나는 세상을 모두 '과학적 사고'로 바라보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온통 '약육강식'의 세상처럼 서로가 서로를 자기의 발 아래 두려 할 뿐, 상대방에 대한 신비감과 경외심을 갖지 않는다. 이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도 발생하고, 인간과 사물 사이에서도,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도, 그리고 인간과 신(God) 사이에서 발생한다.

 

우리는 분석하지 않고 신비에 잠기는 연습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분석하면 대상에 대해서 '알게 된다'는 착각을 거둘 필요가 있다. 분석하면 자신이 분석한 만큼만 알게 될 뿐이고, 나머지 분석하지 못한 부분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게 되어, 분석된 존재는 그 존재의 크기가 내가 분석한 만큼의 깊이와 넓이를 가지게 될 뿐이다. 이 얼마나 낭비인가.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분석하지 않고 신비에 잠길 때, 우리의 삶은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분석은 '냉소'를 불러오지만, 신비는 감사와 경탄을 불러올 것이다. 냉소가 판 치는 세상에 살기보다 감사와 경탄이 넘치는 세상에 살고 싶다.

 

나는 그대를 분석하지 않는다.

나는 그대를 신비롭게 사랑할 뿐이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