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대항 헤게모니로서의 슬기로운 집단]

ㅡ 그람시와 교회론

 

안토니오 그람시는 니체, 칼 슈미트와 더불어 현대 정치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정치 사상가이다.

 

그의 정치사상 중 '헤게모니' 이론과 그에 맞서는 '대항 헤게모니' 이론은 현대 정치철학에서 매우 중요한 정치사상이다. 그람시는 지배계급이 어떻게 형성되며, 그 지배계급의 작동방식이 무엇인지를 파헤치는 데 힘을 썼다. 그러면서 그가 주조한 개념이 '헤게모니'이다. 헤게모니는 흔히 '주도권'이라고 번역하는데, 지배계급은 자신 속한 세계에서 주도권을 쥐고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한다. 피지배계급은 그들의 헤게모니 속에서 착취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그람시의 관심은 지배계급이 확보하고 있는 '헤게모니'를 어떻게 뒤집을 것인가에 있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헤게모니가 어떻게 형성되는 지, 그 메커니즘을 알아야 하는 것이고, 그 메커니즘을 바탕으로 '대항 헤게모니'를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지배계급에 맞선 '대항 헤게모니'를 형성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국민적이고 대중적인 문화'이다. '문화'라는 것은 지배계급이 기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국민적이고 대중적인 문화는 지배계급의 강요에 의해서 형성될 수 없는 것이고, 문화는 자발적으로 형성되는 것이기에 지배계급에 저항할 수 있는 '대항 헤게모니'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고 보았다.

 

사실, 한국 사회는 지난 2016~2017년도에 발생한 '촛불혁명'을 통해서 '대항 헤게모니'의 힘을 직접 목격했고, 대항 헤게모니를 위한 문화가 어떻게 형성되고 작동되는 지를 직접 경험했다. 촛불집회를 기획한 사람들에게 직접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십중팔구 그들은 그람시가 주창한 '대항 헤게모니로서의 문화'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교회가 지배계급에 맞선 '대항 헤게모니'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교회는 '대항 헤게모니로서의 문화'를 계속해서 새롭게 창조하는 '슬기로운 집단'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현실에서 경험하는 교회의 모습은 대항 헤게모니로서의 슬기로운 집단이 아니라, 지배계급과 그 뜻을 같이 하는 지배계급 그 자체인 것을 본다. 그리고 그 역할은 주로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서 감행된다.

 

물론 종교 지도자들 중에서 '대항 헤게모니'를 형성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부류도 있다. 그러나 그 세력이 미미하여 그들만의 '대항 헤게모니'만으로 지배계급에 맞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대항 헤게모니로서의 슬기로운 집단'이 되기 위해서 마지막 희망은 교회 구성원의 대다수를 이루는 소위 '평신도 집단'이 그람시가 말하는 '국민적이고 대중적인 문화'의 창조를 통해 '대항 헤게모니'를 형성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문화'라는 것은 '놀이'이다. 놀이는 누군가 조작하거나 강요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렇게 놀라'고 지배계급이 지침을 내려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문화와 놀이는 인간이 가진 고유의 창조성이다. 그 고유한 능력을 발휘할 줄 아는 사람들이 모여 지배계급에 맞선 '대항 헤게모니'를 만든다면,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역사는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고이고 썩은 물'이 되지 않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내는 역동적인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대항 헤게모니로서의 슬기로운 집단'인 교회 공동체를 세우고 싶다. 자기 안에 내재된 창조성을 마음껏 발휘할 줄 아는, 소위 '놀 줄 아는' 사람들과 교회 공동체를 세워 나가고 싶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그러한 사람이고 싶다.

 

"모여라! 우리 한 번 신나게 놀아보자!"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