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 없는 그리스도교
김누리 교수의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를 읽었다.
첫 번째 챕터에서 김누리 교수는 한국의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 챕터를 읽으며 정확히 한국 기독교의 괴리 현상과 오버랩 됐다.
왜 김누리 교수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없는 민주주의'라고 평할까? 그는 이렇게 말한다. "광화문에 모여서 목이 터져라 민주주의를 외친 사람이 집에 가서는 완전히 가부장적인 아버지요, 다음 날 학교에 가서는 아이들을 쥐 잡듯이 들볶는 권위주의적 교사요, 혹은 회사에 가서는 갑질을 일삼는 상사라면, 민주주의는 어디서 하지요? 다시 말하면 이 나라에서는 '광장 민주주의'와 '일상 민주주의'가 괴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32쪽).
그는 한국의 일상 민주주의가 낙후되어 있는 이유에 대해서 '뿌리 깊은 유교 사상과 일본 제국주의 식민통치, 군사독재 시대가 남긴 집단주의, 그리고 군사주의와 병영문화'를 꼽는다. 특별히 그가 주목하는 것은 한국인의 일상생활에 깊게 뿌리 내리고 있는 '군사문화'이다.
한국의 모든 집단에서는 '군사문화'가 그 근본에서 작동한다. 나이를 따지는 문화(물론 이것은 유교 문화라고 볼 수 있으나, 나이가 깡패 역할을 하는 것은 군사문화다), 학번을 따져 서열 세우는 문화, 정신교육 같은 것도 해병대 가서 받는 문화 등이 그것이다.
군사문화가 그 기저에 작동하는 한국사회를 일컬어 김누리 교수는 "사디스트(sadist)와 마조히스트(mashchist)들의 향연"이라고 말한다(33쪽).
최근 한국교회에서 '빛과진리교회' 사건이 이슈다. 이 교회에서 발생한 사건은 한국의 군사문화가 한국사회에 얼마나 깊이 박혀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그들은 '교회리더훈련' 명목으로 교인들에게 공동묘지에서 매를 맞고, 인분을 먹는 일을 요구했다. 그들이 '리더훈련'을 위해서 내세운 성경말씀은 고린도후서 6장의 말씀이다.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까지 않게 하고,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빛과진리교회의 문제를 언론을 통해 밝힌 이들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위의 성경구절이 이렇게 적용되었다고 말한다. "특정 행동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었느나, 훈련 참가자들은 이 구절을 적용해 '믿음이 뛰어나다'는 점을 보여줘야 했다. 예를 들어, B의 LTC 훈련은 이렇게 구성됐다. '먹지 못함'은 3일 금식, '매 맞음'은 종로 게이 바 골목에 가서 매 맞을 때까지 전도하기, '영광과 욕됨'은 사창가에 가서 전도하기, '많이 견디는 것'은 양수리에서 교회까지 약 30k를 7시간 30분 만에 행군해서 도착하기, '갇힘'은 음식물 쓰레기장에 3시간 갇혀 있기 등으로 진행됐다.' (뉴스앤조이, 2020년 4월 30일 자 보도)
물론 여기에는 '믿음'에 대한 비뚤어진 이해도 작용했겠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것은 이러한 문화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한국인과 한국사회에 만연한 '군사문화'가 작동하는 것이다.
저자는 '군사문화'가 아무렇지도 않게 작동하는 것을 에리히 프롬의 책 <건전한 사회>에서 말하고 있는 '정상성의 병리성(pathology of normality)'의 용어를 들어 설명한다. 이는, 너무나 병든 사회인데, 아무런 일 없다는 듯이 정상생활 하는 사람들을 정상인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믿음에 대한 기독교 신앙에 대한 오해와 군사문화가 합쳐져 생긴 기형적인 믿음 때문이다. 군사문화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 목사를 섬기는 것이 마치 믿음이 좋은 것처럼 오도되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군사문화에 대한 청산과 민주주의의 일상화를 이루지 못하는 한,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인 없는 그리스도교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것을 안다면, 대한민국의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에 뿌리깊게 작동하고 있는 군사문화를 해체하고 일상의 민주주의가 자리잡는 일에 헌신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결코 그 사회의 컨텍스트와 분리되어 생존할 수 없다. 한국교회의 '그리스도인 없는 그리스도교'화(化)를 막아 설,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속속히 일어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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