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2012. 2. 21. 06:10

해님과 바람과 아들

 

소파에서 독서하고 있던 아버지를 따라

책 하나 집어 들고 아버지 옆에서 독서하던

세 살배기 작은 아들이

책장을 몇 장 넘기는가 싶더니 이내 잠들어 버렸다

 

아버지 눈에 아들은 지금 잠 든 것이 아니라

글을 몰라 책을 읽을 수 없으니 아예

책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것처럼 보인다

아들이 보고있던 책은 <이솝이야기>인데

그 중에서도 해님과 바람이야기였다

 

세 살배기 작은 아들은

자기도 사내 녀석이라고 날마다 힘 자랑을 한다

난유 팀 때지?(찬유 힘 세지?)’

나름대로 무겁다고 생각하는 물건을 들어올리며

사내 아이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듯 하다

 

아들이 보고있던 해님과 바람에는 이런 대화가 나온다

 

난 세상에서 제일 힘이 세.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어느 날, 바람이 해님에게 우쭐대며 말했어요.

과연 그럴까? 힘만으로는 안 되는 게 있단다.”

해님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어요.

 

아들은 지금 유난히 좋아하는 해님과 바람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해님과 바람의 내기 속에 등장하는 바로 그 나그네로 변하여

바람 부는 길과 햇살 가득한 길을 걷고 있는지 모르겠다

 

햇살 가득한 늦은 오후

새록새록 잠 든 아들 머리 위를

해님이 방긋 웃으며 지나가는 것을 보면

아들은 지금

이 세상에는 힘만으로는 안 되는 게 있다는 것

배우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 국경일(Presidential Day)이라 한가하다. 나른한 오후, 소파에 앉아 독서하고 있는데 작은 아들이 옆에서 나를 따라 책을 읽다
잠든 모습을 보고 시상이 떠올라 쓴 시이다. 아들이 지혜롭게 성장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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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