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3. 12. 5. 06:41

엘샤다이

창세기 13

(창세기 17:1-14)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철학자 하이데거가 한 말인데,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우리의 삶을 들여다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미국에 살면서 이민자로서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 언어의 문제입니다. 영어가 한국말처럼 편하지 않다 보니 당하는 어려움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단순한 소통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미국 땅에서의 존재 자체가 여러 가지로 힘듭니다. 그 이유는 영어가 우리의 존재를 나타내주는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어떤 언어를 쓰고 있느냐에 따라서 나의 존재는 달라집니다. 만약 우리가 영어를 모국어로 쓰고 있다면 지금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고 있는 것과 완전히 다른 존재로 살아가겠죠.

 

영어니 한국어니, 이러한 언어뿐만이 아니라, 언어에는 사회적이고 관계적인 언어가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 쓰는 언어가 있고, 부모자식 간에 쓰는 언어가 있고, 친구 간에 쓰는 언어가 있고, 비즈니스 사장과 고객 간에 쓰는 언어가 있습니다. 발음과 발성은 같지만 언어를 통한 관계나 친밀감은 너무도 다릅니다. 또한 법조계에서 쓰는 언어가 있고, 의료계에서 쓰는 언어가 있고, 정치계에서 쓰는 언어가 있고, 언론계에서 쓰는 언어가 있고, 경제계에서 쓰는 언어가 있고, 종교계에서 쓰는 언어가 있습니다. 어느 분야 등 그 분야에 흥미를 느끼고 그 분야의 흐름을 따라가려면 그 분야에서 소통되는 언어를 반드시 익혀야 합니다.

 

이렇듯, 교회에는 교회만의 독특한 언어가 존재합니다. 교회를 다닌다는 뜻은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는데, 예수 그리스도와 깊은 관계를 맺으려면 그분과 소통할 수 있는 고유한 언어가 필요합니다. 그 언어를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세계는 매우 독특한 세계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만을 따라서 울고 웃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말해줍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라는 세계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이라는 존재가 만들어가는 세계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 세 존재는 매우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이상, 우리 자신(인간)에 대하여 알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우리의 존재를 지탱해 주는 자연, 그리고 우리의 존재를 가능하게 해주는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 것은 매우 필수적입니다.

 

철학은 인간에 대하여, 과학은 자연에 대하여, 그리고 신학은 하나님()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말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 세 가지 분야는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들리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서로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과 자연과 하나님은 뗄래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에 대하여 말하려면 자연과 하나님에 대해서 말해야 하고, 자연에 대해서 말하려면 인간과 하나님에 대해서 말해야 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면 인간과 자연에 대해서 말해야 합니다. 기독교의 개념인 삼위일체의 개념과 비슷한 양상입니다.

 

종교를 갖는다는 것, 특별히 우리처럼 교회를 다닌다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하여 좀 더 깊은 이해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존재를 보이는 것처럼 배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의 키워드는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는 부분입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1). 여기서 전능한 하나님을 히브리어로 엘샤다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알아야 할 교회의 언어, 예수 그리스도와 소통하기 위하여 배워야 하는 언어는 바로 엘샤다이입니다. 이 언어를 배운다면, 우리는 좀 더 하나님을 잘 이해하게 되고, 소통이 잘 될 것입니다.

 

도대체 전능한(Almighty)’는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요? 하나님이 전능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일단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전능한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생각해 보죠. 일반적으로 전능한이라는 의미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형상이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이라는 의미가 떠오르면서 수퍼맨같은 형상이 떠오릅니다. 이것은 인간이나 자연과의 관계에서 한 번 생각해 보면, 전능한 존재는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이고, 자연법칙과는 상관없는 존재로 여겨집니다. 수퍼맨을 떠올리면 금방 알 수 있죠. 수퍼맨은 연약한 인간과는 질적으로 다르고,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기 때문에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 다닐 수 있습니다. , 자연계에서 말하는 중력의 법칙 같은 거에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수퍼맨과 같은 존재일까요? 만약 수퍼맨과 같은 존재가 이 땅에 있다면 그는 하나님으로 숭배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오늘 말씀도 그러한 것을 말해주는 것처럼 들립니다. 100세 노인에게 자손을 약속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우리가 아는 자연법칙에 의하면, 100세 노인은 자식을 낳을 수가 없습니다. 남자 노인은 그렇다 치더라도, 여자 노인에게는 정말 불가능한 일입니다. 여자에게는 폐경기라는 것이 있어서,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더 이상 난자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자연법칙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금 더 이상 자식을 낳을 수 없는 노인들에게 자식을 낳게 해주겠다고 약속하며, 아브라함과 사라와 언약을 맺습니다.

 

우리는 그냥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니까 그 정도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는 것을 오해한 생각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앙상식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자연을 창조하셨습니다. 이 말은 이런 뜻이기도 합니다. 인간과 자연이 가지고 있는 어떠한 법칙들은 하나님의 창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죽습니다. 이것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법칙입니다. 인간은 새처럼 날 수 없습니다. 땅을 걸어 다녀야 합니다. 이것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법칙입니다. 인간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더 이상 자식을 생산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법칙입니다. 과학자들이 자연을 관찰해 알아낸 자연법칙들이 즐비합니다. 그것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창조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장난꾸러기 마법사가 아닙니다. 자신의 만든 법칙을 어겨가며, 당신께서 만드신 피조물들(인간과 자연)을 골탕 먹이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리 말했다, 저리 말했다, 요리조리 자기가 유리한대로 말을 바꾸시는 사기꾼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입니다. 당신이 하신 말과 법칙은 꼭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불의를 행하는 자를 틀림없이 징벌하시는 것이지요. 그래서 심판이라는 말이 무서운 것이고,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 앞에서 행하여 완전해지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1절후반부).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다라는 뜻은 자기 마음대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정한 말과 법칙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철저하게 지킨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의 법칙과 하나님께서 정하신 율례를 똑바로 알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뜨거운 불에 손을 대면 살이 탑니다. 그것이 자연법칙입니다. 그러니 뜨거운 불을 가까지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기필코 뜨거운 불에 손을 댄 자의 살을 태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리면 인간은 새처럼 날 수 없기 때문에 떨어져 죽습니다. 그러므로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리거나, 높은 곳을 가야 할 일이 있다면 조심 또 조심해야 합니다. 만약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린 자가 있다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기필코 그 자를 죽이실 것입니다. 운전할 때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질서를 잘 지키며 안전운행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께서 대신 운전해 주실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 놓고 신호등을 어겨가며 과속하는 자가 있다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기필코 교통사고 나게 하실 것입니다. 인간은 식사를 불규칙하게 하고, 잠을 충분히 안 자고, 정기적으로 적당한 운동을 해주지 않으면 건강해질 수 없습니다. 아무거나 막 먹고, 잠도 충분히 안 자고, 꼼지락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교회 열심히 다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기필코 건강을 상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라고 밝히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가 좀 되시는지요? 이것은 하나님 당신께서 만드신 자연법칙을 깨겠다는 뜻이 아니라, 당신께서 하신 말과 당신이 정하신 법칙은 꼭 이루어진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더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언뜻 보기에 자연법칙이 깨지는 것 같은 역사를 행하실 때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무엇인가 새로운 창조를 행하실 때 그렇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자식을 더 이상 생산할 수 없는 아브라함과 사라를 불러 언약을 맺으시는 것은 당신이 정하신 자연법칙을 깨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만드시는 거라는 겁니다. 기존에 하나님 당신께서 이미 정하신 법칙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새로운 창조 활동이 일어나는 것이죠.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지금 맺고 있는 언약은 창조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므로 창조를 거스르는 사건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것이 아니라 창조의 사건을 넘어서는 새창조의 사역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창조를 넘어서는 새창조의 사역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서 발견합니다. 십자가 처형으로 죽임을 당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창조 안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일으키신 사건은 창조를 넘어서는 새창조의 사건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부활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그것은 구원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당신께서 하신 말과 당신께서 정하신 법칙을 철저하게 지키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전능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행하여 완전하지 못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 당신께서 정하신 법칙을 철저하게 지켜주시기 때문에 이렇게 숨쉬고 사는 겁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자연계의 혼란으로 어처구니 없는 죽음을 당했을지도 모릅니다.

 

전능하다는 것은 자기 마음대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이 정한 뜻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이룬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할례언약을 통하여 아브라함과 하신 약속()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지키셨습니다. 언약하신 대로, 아브라함은 만국의 아버지가 되었고, 사라는 만국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삭을 주시고, 야곱을 주시고, 그 후 열 두 명의 아들을 통하여 하늘의 뭇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인 자손을 번창하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모두를 새로운 피조물, 즉 예수 그리스도처럼 부활체로의 새창조를 약속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이루신 뜻은 꼭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부활체로 하나님께 나아가게 될 거라는 것은 틀림 없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믿으시는 자는 하나님 앞에 행하여 완전해지시기를 간구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 앞에 행하여 완전해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갈 때, 엘샤다이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 배운 언어를 통하여 하나님과 더욱더 가까워지셨기를 바랍니다. 아멘.

 

 

 

'바이블 오디세이 I'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이 참으라  (0) 2013.12.16
왜 회개해야 하는가?  (1) 2013.12.09
깨어 있으라  (2) 2013.12.02
우리가 정말 감사해야 하는 이유  (2) 2013.11.25
네 사명이 너와 네 이웃을 살리리라!  (0) 2013.11.18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