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서 몸의 주인이시다

 

골로새서는 거짓 교훈을 바로 잡기 위해 애쓴다. 여기서 말하는 거짓 교훈은 왜곡된 유대주의와 헬라의 이원론이 혼합하여 만들어낸 헛된 사상과 가르침을 말한다.

 

왜곡된 유대주의와 헬라의 이원론이 만나면 아주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무엇보다 육신을 부정하게 되고, 학대하게 되며, 거짓 겸손에 사로잡히게 된다.

 

왜곡된 유대주의는 율법을 오용하게 만든다. 이는 율법의 몇 가지 행위를 철저히 지키는 것을 통해 표출되는데, 음식 규정이나 절기 규정 같은 것을 통해서 종교적 금욕주의로 발전하게 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율법이 그리스도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종교적 금욕주의가 발전하게 되면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 대신 율법이 생명을 준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종교적 금욕주의를 통해 구원 받는다는 사상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생각이 헬라의 이원론과 만나게 되면 몸에 대한 자기 비하는 겉잡을 수 없게 번진다. 플라톤의 사상에 뿌리를 둔 헬라철학은 물질세계를 악한 것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물질세계를 영원의 세계의 그림자로만 볼 뿐이다. 그래서 이원론의 세계에서 구원이란 악한 물질세계를 탈출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몸을 비하하게 만든다. 몸을 벗어버리는 것이 구원이기 때문에, 몸을 정당하게 학대하기 위해서 종교적 금욕주의는 매우 요긴한 도구가 된다. 복음도 이렇게 변한다.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었다는 말을 서슴치 안고 한다.

 

자신의 몸을 비하하는 것은 그릇된 겸손이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몸에 대한 폭력이 신앙의 이름으로 자행된다. 자기의 육신은 저급한 것이니 금욕을 통해 절제하고 통제하고, 괴롭히고 학대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한 것을 효과적으로 잘 하는 사람이 신앙이 좋은 사람이요, 그러한 것을 철저하게 실행하고 실천할 때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거짓된 가르침에 머물게 된다.

 

골로새서는 이러한 헛된 사상과 가르침에 일침을 가하며, 이러한 사상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것을 이미 성경에서 이렇게 2천년 전부터 경고했는데, 아직도 못알아듣고, 자기 비하 가운데 살아가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잘못된 금욕은 생득적인 기쁨을 제어하고 빼앗는다. 이러한 헛된 사상과 가르침에 물들지 않고, 우리에게 주어진 몸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고백이다.

"그리스도께서 몸의 주인이시다."

 

우리는 몸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 날마다 은총과 자비를 간구하며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 그리스도께서 몸의 주인인 것을 실감하고 절감하고 간절히 고백하기 위해서, 한 가지 해볼 수 있는 것은 율법을 과감하게 어겨보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그리스도인은 그 일을 아주 잘 하고 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현대 그리스도인 중에 이것을 잘 지키는 그리스도인이 어디에 있는가? 현대인들은 안식이 무엇인지 모르고, 거룩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래서 늘 불안한 인생을 산다. 그러니, 현대 그리스도인은 "몸의 주인은 그리스도"라는 것을 부지중에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웃긴 이야기 같지만, 사실이다. 자신도 모르게 "그리스도께서 몸의 주인이시다"를 선포하고 있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의 은총과 자비가 함께 하길 빈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