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희망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리토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은 흐르고 있는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물론 우리는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 발을 담갔던 강물과 두 번째 담갔던 강물은 같을 수 없습니다. 강물은 흐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시간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한 번 살았던 시간에 또 한 번의 삶을 살아낼 수 없습니다. 강물처럼 시간도 흐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반복이 아니라, 매 순간 특별하고 새롭습니다. 요한계시록 215절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께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그 때를 향해 우주 만물은 매 순간의 새로움을 통해 그 새로운 창조(New Creation)을 향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력을 통해서 그 새로운 창조를 경험합니다. 일 년 단위로 돌아오는 교회력은 시간의 반복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새로움을 경험하게 합니다. 새로운 창조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고, 교회력은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하게 하기 때문에 교회력은 새로운 창조로 우리를 인도하는 길과 같습니다.

 

교회력의 시작이 대림절(Advent)부터인 이유는 기독교는 희망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대림절은 오랫동안 기다렸던 메시아의 초림(2천년 전 유대땅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 First Coming)을 기억하는 날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메시아의 재림(그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 Second Coming)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대림절은 4주 동안의 절기(Season)로 지키는데, 그 첫 번째 주일에는 “희망”이 주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일은 지루한 것도 아니요 두려운 것도 아니요, 희망찬 일이기 때문입니다. 금방 다시 오신다고 하면서 승천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지연되자 초대교회의 어떤 성도들은 실망하고 절망한 나머지 신앙을 저버리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실망과 절망이 깊어지면 인간은 그 일에 무감각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승천한 지 2천 년이 흐른 21세기를 사는 요즘 기독교인들은 “재림”이라는 사건에 무감각해졌습니다. 더군다나 그릇된 재림신앙이 판을 치는 바람에 이제는 “재림”이 무감각을 넘어서, 혐오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기독교인들에게서 희망을 빼앗아 가버리는 것과 똑같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 기독교인이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희망 없는 기독교인은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바로 재림신앙에서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림절기를 맞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묵상을 통해 재림신앙과 신앙의 존재 근거인 희망을 되찾아야겠습니다. 우리 기독교인의 희망의 근거는 바로 이 한 마디의 외침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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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