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3. 3. 25. 11:12

2013 3 24일 주일 예배 설교

본문: 룻기 4:18-22

제목: 내 무릎은 무엇을 위해 힘쓰는가?

 

성경에서 족보가 나오는 곳은 유심히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물론 족보를 살피는 일은 참 재미가 없죠. 하지만 족보는 하나님께서 크게 역사하셨다는 증거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룻기서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룻기가 족보로 끝나고 있다는 것은, 룻기서의 주인공인 보아스와 룻에게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 은총을 베푸셨는가를 알 수 있다는 것이죠.

 

오늘 족보를 보면 보아스의 아버지가 살몬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 5절 말씀을 보면 이 사람이 누구인지가 분명해지는데, 거기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살몬의 아내가 라합입니다.

 

그러니까, 보아스의 아버지는 여리고 성 정탐꾼으로 파견 받아서 갔던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는 것이고, 보아스의 어머니는 아버지 살몬이 여리고 성 정탐 갔다가 만났던 라합이었다는 것입니다. 참 기가 막힌 인연입니다.

 

전쟁을 하려면 반드시 먼저 정탐을 먼저 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에 정탐꾼 두 명을 보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 때에 가데스 바네아의 가나안 정탐에 참여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눈에 보이는 현상을 보지 않고 믿음의 실상을 볼 수 있는, 기도하는 두 사람이면 정탐하는 데 충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예전에 12명의 정탐꾼 중 10명이 눈에 보이는 현상에 겁을 먹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해서 불신앙을 선동했던 기억이 생생했을 것입니다.

 

두 사람이 여리고 성으로 몰래 잠입해서 들어가 보니 사람들이 잔뜩 겁을 먹고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아모리 왕국과 바산 왕국과 모압 족속이 히브리 족속들한테 다 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입니다. 정탐꾼들은 몰래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 집에 숨어 들어갔습니다. 이를 눈치 챈 군사들이 쫓아오자 기생 라합은 두 사람을 지붕 위에 있는 삼대 밑에 숨겨 주었습니다. 정탐꾼은 정탐을 눈으로 합니다. 그런데 삼대 밑에 숨어 뭘 정탐했겠습니까? 하나님은 예전처럼 눈으로 보고 겁먹지 않게 이들의 눈을 가리고, 대신 믿음의 사람 기생 라합을 통해서 성안의 소식을 듣게 하십니다.

 

라합은 옛날 우리나라로 치면 주막 같은 곳에서 일하던 여성일 것입니다. 기생 라합은 한 번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난 적이 없지만 출애굽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셨던 하나님의 행적을 다 들었을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라합은 들어서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기생 라합이 정탐꾼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 땅을 당신들에게 반드시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 백성들은 마음이 녹아버렸고 정신을 잃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이 그 땅을 차지할 때 자신과 가족을 구원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정탐꾼들은 그녀의 믿음을 보고붉은 줄을 문에다 내리고 있으면 여리고 성을 전부 멸할 때 너희 집만은 살려주겠다.”고 말합니다( 2:18-19 참조).

 

실제로 여리고 성이 정복당했을 때 기생 라합의 믿음으로 그 집안 식구들은 모두 구원을 얻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16:31). 정탐꾼들은 왜붉은 줄을 매달라고 했습니까? 잘 보이는 색깔이니까 그렇기도 하지만, 그것이 유월절 어린양의 피, 십자가의 보혈을 상징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리고 정탐 사건을 통해서 꼭 배워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보아스의 아버지 살몬은 정탐꾼이었습니다. 그의 무릎은 정탐을 하느라 힘들었어야 합니다. 그게 상식입니다. 그러나, 보아스의 아버지 살몬이 여리고 성을 들어가서 그의 무릎이 정탐 하느라 힘들지 않았습니다. 정탐하러 들어갔는데, 라합의 집 옥상에 갇혀 지내고 말았습니다. 거기서 살몬이 무엇을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적군 속으로 정탐하러 온 사람이 숨어 지낸다는 것은 일촉즉발의 상황입니다. 잡히면 죽습니다. 가슴이 조마조마했겠죠. 기도가 저절로 나왔을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정탐꾼에게, 보아스의 아버지 살몬에게 여리고 정탐 일을 통해서 받고 싶은 것이 뭐였냐면 바로, 기도였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무릎을 통해서 받고 싶어하신 수고로움은 정탐의 수고로움이 아니라, 기도의 수고로움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옛날 가데스 바네아에서 12명의 정탐꾼이 다리품 팔아서 자유롭게 가나안 땅 정탐을 하고 돌아왔지만,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절망적인 말뿐이었습니다. 그 일 때문에 모세가 얼마나 고통을 겪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게 됩니까? 위에서 잠깐 말씀드렸습니다만, 눈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았던 여호수아. 본인이 직접 가나안 정탐꾼 임무를 수행해 보았기 때문에 눈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가를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 정탐하는 일에 두 명만 보냈던 것인데, 이들이 무엇에 능한 사람들이었겠습니까? 정탐 잘 하는, 정보 파악 능력이 뛰어나고, 눈이 좋아서 먼 곳까지 보는 사람들이었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고 계시는가를 볼 수 있는 영안을 지닌 자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기도 할 줄 아는 사람들을 보냈던 것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주의 일은 돈 많은 사람, 잘난 사람, 건강한 사람 등 눈에 보이는 것이 화려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일은 기도하는 사람이 합니다. 무릎을 기도하는데 쓰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일하신다는 겁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가장 중점에 두고 있는 것이 기도요, 여러분들에게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기도입니다. 여러분은 제 마음을 이해하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기도에 중점을 두는 이유는, 모세처럼 하나님 앞에 늘 엎드리는 사람이 진정한 지도자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고, 여호수아처럼 기도의 사람을 쓰는 것이 주의 일을 부흥케 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무릎이 기도하는 데 힘쓰게 해 보십시오. 다리가 저리도록 기도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고 계신지 기도를 통해서 알게 되면, 경거망동하거나 요동치 않습니다. 폭풍 속에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보아스의 아버지, 살몬의 삶이 그랬고, 보아스의 어머니, 라합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배우며 자랐던 보아스도 그랬습니다.

 

라합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역사를 보는 안목을 가지고 있던 여성입니다. 하나님을 볼 줄 아는 여인이있습니다. 그는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의 소식을 듣고 하나님에 대해 관심을 가졌습니다. 직접 보진 않았지만, 듣고 믿은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재물, 창칼, 전술의 의지했던 여리고 사람들이 다 죽어갈 때, 그 여인은 하나님의 능력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고 생명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던 이 사람 라합. 두 명의 정탐꾼 대신에 정탐 일을 합니다. 사실, 라합은 여호수아가 보낸 두 명의 정탐꾼 대신에 여리고 성 곳곳을 돌아다닐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미 여리고 성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막에서 일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온갖 소문을 한 번에 접할 수 있는 정보력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확하게, 필요한 곳에 필요한 사람을 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 있는 자를 들어서, 쓰시고자 하는 일에 쓰신다는 겁니다. 이 믿음의 사람 라합. 그런 라합이 아들 보아스를 키우면서 무엇을 가장 열심히 가르쳤겠습니까? 무엇보다 자기 일생 최대의 경험, 즉 여리고 성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틈바구니 속에서 자기가 살 수 있었던 이유를 들려주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가르쳤을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고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쳤을 것입니다.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17:6”. 보아스가 살던 시대는 왕이 없었으므로, 자기 자신이 왕이 되어 자기가 옳은 대로 살았던 시대입니다. 요즘 시대와 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로부터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것을 배웠던 보아스는 남들이 다 각자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던 무법 천지의 시대, 사사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외우고 실천하며 살아갔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라합은 자신의 무릎이 무엇을 하는데 힘쓰게 했다는 겁니까? 아들 보아스를 무릎에 앉혀 놓고 하나님 말씀 전하는데 힘썼다는 겁니다.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어머니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귀하고 귀하다 우리 어머니가 들려주시던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 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이 찬송이 누구의 찬송으로 들리십니까? 물론 이 찬송을 지은 사람은 M. B. 윌리암스라는 분이지만, 이 찬송이 보아스의 찬송으로 들리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컬럼버스 감리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가 자녀들 앞에서아이고 무릎이야…’ 하면 자녀들이 물어봅니다. ‘왜 무릎이 아프세요?’ 그러면 우리는 흔히 이렇게 대답합니다. ‘너희들 먹여 살리느라, 죽도록 일해서 그렇다!’ 그래요, 이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신 것 때문에 무릎이 아프다니요참 가슴 저미는 말입니다. 그런데 세상 일이 그렇습니까? 무릎 아프도록 열심히 돈 벌어서 키워놨더니, 자식이 효도하던가요? 사람 되던가요? 내가 계획하고 생각했던 대로, 가르친 대로 자녀들이 자라던가요?

 

노인들을 대상으로 상담을 하시는 분들이나, 정신과 치료를 하는 의사들은 한결 같이 이런 말을 합니다. ‘자녀들, 계획하고 가르친 대로 절대로 자라지 않습니다!’저희 어머니도 이런 저런 이유로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하시는데, 그 정신과 의사가 그러더랍니다. ‘자식 때문에 속 썩는 일은 없으시죠? 그러면 정말 행복하신 거에요. 저한테 오는 대부분의 노인분들 자식 문제 때문에 가장 속상해들 하세요! 어머님은 두 아드님이 다 목회 잘 하시고 속 안 썩이시니까 감사한거에요!’

 

자녀들뿐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계획했던 대로 우리의 인생이 그렇게 흘러가던가요? ‘어쩌다 내가 컬럼버스까지 굴러오게 됐나…’ 조지아에는 숲 밖에 없으니까, 대도시에 살다 오신 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세요. ‘여기가 사람 살 곳인가? 짐승 사는 곳이지?’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고 계획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내 생각과 계획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착각이고 교만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 맡기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살몬처럼, 라합처럼, 그렇게 하나님께 맡기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께 맡겼을 때, 살몬은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자신의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었고, 하나님께 맡겼을 때, 라합은 남들 다 죽어나가고 멸망 당할 때 생명이 보존되고 구원 받는 역사가 있었다는 겁니다.

 

기도하는 데, 하나님 말씀 배우고 전하는데 무릎이 한 번 아파 보십시오. 자녀는 기도하시는 부모님, 무릎 꿇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립니다. 이상하게도, 돈 버느라고 수고하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 흘리는 자식 거의 없습니다. 와서 돈이나 달라고 떼쓰지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눈물 흘리면서 간절히 기도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허물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하나님께 무릎 꿇고, 다리가 저리도록 무릎이 시리도록 기도했을 때 참된 안식과 복이 임합니다. 이건 이 장목사의 가르침이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저도 성경에서 배웠을 뿐입니다. 성경에서 배운 것을 가르치는 사람이 목사 아닙니까? 그것을 가르쳐 드리는 것이 이 목사의 의무이기 때문에, 간절한 마음으로 증거합니다.

 

여러분의 무릎은 무엇을 위해 힘쓰십니까? 무엇 하시느라, 무릎이 시리고, 다리가 저리십니까? 생계를 위해서, 즉 돈 버는 일 때문에 무릎이 아픈 것, 그것은 참 거룩한 일이고 훌륭한 일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너무 매몰되지 마십시오. 사람은 기본적으로 돈을 버는 일에 몸을 망가뜨리고, 망가진 몸을 치료하기 위해서 힘들게 번 그 돈을 쓴답니다. 참으로 악순환이죠. 안타까운 일이죠.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맡긴다는 것은 우리가 무능력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서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인생은 나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즐비합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우리를 지으시고 돌보시는 창조주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맡기는 지혜가 우리에게는 꼭 필요합니다.

 

내 무릎은 무엇을 위해 힘쓰는가? 무엇을 위해 힘을 썼길래 이렇게 아픈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보아스의 아버지 살몬처럼 특별히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데 앞 뒤가 꽉 막히신 분! 하나님께서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유는, 바로 그 자리에서 꿇어 엎드려 기도하게 하시고, 그 무릎이 기도를 위해 힘쓰게 하시기 위함임을 꼭 깨달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무릎이 기도를 위해 힘쓰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 막힌 문제를 부지런히 풀고 계신다는 것을 꼭 깨달으셨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