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3. 4. 15. 13:38

2013 4 14일 주일 예배 설교

본문: 전도서 1:2-11

제목: 인생을 후회하지 않기 위하여 I - 지금 당장 고맙다고 말하라

 

지금 설교가 시작되었는데,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시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는가? 아니면 설교가 빨리 끝났으면 하고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예배 끝난 뒤 나올 점심식사에 대해서, ‘오늘은 메뉴가 무엇인가상상하시는가? 아니면 예배 끝나고 집에 가서 할 일에 대해서 생각하시는가?

 

설교를 들으면서, 목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나 보고, 듣고 난 후에, ‘그러면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질문해야 한다.

 

오늘부터 몇 주간에 걸쳐서, “인생을 후회하지 않기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할 예정이다. 지금 당장 후회하지 않더라도, 죽음의 순간에 인간은 반드시 후회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사람의 마지막 길을 잘 가도록 보살피는 직업(의사, 호스피스)을 가진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오늘 전도서의 말씀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헛되다인데, 우리의 인생이 왜 이렇게 헛되다는 것인가?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인생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으로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평소에 죽음에 대해서 얼마나 생각하시면서 사시는가? 우리가 일상생활 중에서 가장 많이 경험하는 것 중의 하나가, ‘죽음이다. 인간의 죽음, 동물의 죽음, 식물의 죽음, 수많은 생명의 죽음이 시간 속에 즐비하게 늘어져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나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뿐더러, 나에게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남의 일처럼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어느 책에서 이런 문구를 본 적이 있다.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은 후회가 적다. 죽음을 염두에 둔 사람은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알고 열심히 살아간다.”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히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의 삶, 실존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살아가라는 뜻이다.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고, 우리의 삶은 유한하다고 자각하며 사는 인생은 오늘 하루를 보람차고 기억 속에 영원히 남을 만한 일을 하려고 노력하며 산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영원한 것처럼 착각하며 우리에게는 내일이 있다며 착각하는 사람은 오늘을 흥청망청 살아간다. “내일 할 수 있는 일을 절대로 오늘 하지 말라!”라며. 꼭 이솝우화에 나오는 배짱이처럼.

 

나는 개인적으로 한 2년 전쯤부터 죽음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죽음에 관련된 책도 읽고, 특별히 죽음의 신학에 대한 책을 읽으며, 그리고 종말론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죽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죽음이 남의 일이 아니라, ‘나에게도 일어나는 매우 명백하고 현실적인 일이라는 자각이 생각 뒤 첫 번째로 한 일이 무엇인지 아는가?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은 1 8일이다. 결혼 7주년을 맞아 나는 아내 몰래, 선물을 준비했다. 그리고 결혼기념일에 그 선물을 꺼내서 주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죽더라도 아내가 우리 아이들과 여생을 힘들지 않게 보낼 수 있도록 준비한, 생명보험증이었다. 내가 나온 에모리대학교 동문회에서 단체로 들어 값싸게, 하지만 좋은 배네핏을 누릴 수 있는 보험이다. 꽃 백송이 선물하는 것보다, 기뻐하더라.

 

이탈노 칼비노가 쓴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라는 소설이 있다. 주인공 마르코 폴로가 수많은 도시들을 여행을 하면서 실패를 하는데, 쿠빌라이 칸이라는 사람을 만나는데, 그 사람은 네가 전세계를 여행했다는데, 너는 유토피아에 가봤지?” 묻는다. 폴로는 대답한다. “제가 다닌 도시들 중에는 유토피아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유토피아에 어떻게 가는지도 모릅니다.” 칸이 또 묻는다. “전세계를 다녀봤자 유토피아가 아니라면, 왜 그렇게 여행을 다니느냐?” 폴로가 대답한다.

 

어차피 세상은 지옥입니다. 그 지옥 같은 세상을 지옥이 아닌 것처럼 사는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쉬는 것인데, 지옥 같은 세상에서 지옥처럼 사는 것이다. 그러면, 지옥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쉽다. 두 번째 방법은 어려운 것인데,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마치 지옥처럼 살지 않는 사람을 찾아내서 그 사람의 공간을 넓혀주는 것입니다.”

 

어떤 시인이 이런 말을 한다. “어떤 이는 공원을 감옥처럼 여기며 살고 어떤 이는 감옥을 공원처럼 살고 있으니, 세상엔 안과 밖이 있는 게 아니라 마음에 놓은 욕망의 철창이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여러분은 어떠한 인생을 살고 계시는가? 내일은 행복할거야, 하면서 지옥 같은 오늘을 견디면서 살고 계신가? 유토피아를 꿈꾸며, 어딘가에 무지개 마을이 있을거야 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사시는가? 아니면, 이 지긋지긋한 인생,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 라며 죽지 못해 사시는가?

 

마지막 순간, 인생을 후회하지 않기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 중 첫 번째가, 지금 옆에 있는 사람에게, ‘사랑한다, ‘고맙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랑을 표현해야 하는데, “사랑해의 또다른 표현이 고마워이다.

 

세상에 당연한 건 아무 것도 없다. 모두 고마운 일이다. 내가 돈을 지불하니까, 당연히 저 사람이 해주어야 하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굉장히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당연하지 않다. 봄에 꽃이 피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 늘 그렇게 봐 왔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라고 느낄 뿐이다. 오늘 아침 태양이 뜨고, 비가 오고, 시간이 지나면 해가 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북극만 가봐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기에는 백야라는 것이 있다. 해가 지지 않고, 밤인데도 낯처럼 밝은 날을 말한다.

 

돈을 지불했으니까, 자동차 정비업소 직원이 오일 갈아주고, 자동차 손 봐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그냥 그렇게 값이 매겨지고, 경제적 활동을 서로의 사회적 약속 안에서 하고 있을 뿐, 그것은 그렇게 당연한 것이 아니다.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세상의 모든 일, 인간의 활동은 모두 값을 매길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다. 지금 여기에 나와 앉아 있는 사실도, 당연한 것이 아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집사람에게 고마운 일이 있지만, 집사람이 빨래 개서 넣어주는 것 특히 속옷 개서 정리해주는 것, 너무 고맙다. 나는 그래서 그것을 늘 고맙다고 말한다.

 

말 귀를 알아듣는 큰 아들에게 말한다. ‘건유야, 아버지는 네가 아버지 아들인 것이 정말 고맙다.’

 

감사헌금도, 정말 감사해서 하는 거다. 이렇게 아무런 탈 없이 교회 온 것이 얼마나 고마운가. 누구는 교회 오다가 사고 당해서, 신앙을 잃은 사람도 있다.

 

목사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목사니까 당연히 여기 앞에 서서 말씀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가? 한 마디 들을 때 마음이 고맙다. ‘목사님, 고맙습니다. 은혜 받았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고맙다고 말하는 것은 사랑한다는 말의 다른 버전이다. 사랑한다는 말은 입에서 잘 떨어지지 않을뿐더러, 낯부끄러울 수 있다. 그렇다면, 고맙다는 말로 대신해도 된다.

 

가장 고마운 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이 가장 고마운 일이다. 왜 그런지는, 죽음에 가까울수록 알게 될 것이다. 인생은 유한하고, 언젠가 우리의 인생은 끝나고 말거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지 못한다.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사는 자에게는 감사가 넘친다. 그런 인생은 후회가 없다.

 

예배란 하나님께 고맙다고 말하는 행위이다. 그러니, 이 세상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참 고마운 일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예배를 고맙게드릴 것이다.

 

인생을 잘못 살고 있는 사람의 특징은, ‘감사가 없다는 것이다. ‘고맙다는 말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다른 사람에게는 감사를 강요하면서, 정작 자기 스스로는 다른 사람에게 감사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감사하지 않으면 불쾌해하고 마음이 어그러진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상대방에게 감사할 줄 모른다. 자신이 상대방에게 한 것은 특별한 것이고, 상대방이 자신에게 한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생을 돌아보라. 죽을 때,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죽음은 서서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갑자가 찾아온다. 물론 죽음을 서서히 맞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서 주변을 정리할 시간이 주어지는 사람도 있다. 축복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죽음은 갑자기 찾아온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나는 지금 여러분에게 죽음의 공포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필연적인 운명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느 순간, 이 세상에서 존재가 없어진다. 그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지 않기 위하여, 지금 살아 있을 때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 말씀 드리는 것이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지금 당장 사랑한다’, ‘고맙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랑한다고맙다고 말하는데, 입이 잘 떼지지 않는 분들은 후회할 인생을 살고 계시는 거다. ‘저 인간 생각하면 갈아 마셔도 속이 시원하지 않는데, 어떻게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을 합니까?’라는 분, 후회할 인생을 살고 계시는 거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하게 될 후회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의사나 호스피스들은 말한다. “육체의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이 마음의 고통입니다. 죽으면서 사람들은 육체의 고통보다, 후회스러운 인생에 대하여 마음의 고통을 너 크게 느끼면서 죽습니다.”

 

후회라는 말을 우습게 여기지 말라. ‘후회되는 인생 때문에, 눈을 제대로 못 감을 수 있다. 평안히 눈을 감고 싶으신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사랑한다, 고맙다고 말하라.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