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3. 2. 25. 07:41

2013 2 24일 주일 예배 설교

본문: 15:1, 6-7, 10-12, 17

제목: 믿음이란 무엇인가?

 

영어로는 Faith. 우리 나라 말로는 믿음 또는 신앙. 믿음생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이지만, 가장 손에 잘 안 잡히는 것이 바로, 믿음, 신앙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지금 믿음생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무엇을 믿는지, 무엇을 신앙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묵상 없이, 남들이 하니까 그냥 하는, 군중심리적 요소를 품고 믿음생활, 신앙생활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저는 이것을 파블로프의 신앙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러시아의 과학자 파블로프가 이런 실험을 했었습니다. 개에게 밥을 주기 전에, 종을 언제나 울렸습니다. 그랬더니, 얼마 후, 종소리만 나도 개는 밥을 주는 줄 알고 침을 줄줄 흘렸습니다. 개밥을 주지 않았는데도, 그냥 종소리만 울렸는데도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실험은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에 시사해 주는 바가 큽니다.

 

일요일이니까 교회 가고, 아침 기도회 하니까 교회 나오고, 교회 봉사해야 할 차례이니까 봉사하고 등, 무엇을 위해서 왜 교회에 나와야 하고 봉사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 없이, 그저 조건반사적으로 교회 나오고 봉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믿음이란, 신앙이란 무엇인지,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 신앙하는지 왜 믿는지, 신앙하는지를 깨달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언약(Covenant)을 맺는 사건을 기록한 부분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아브라함 언약이라고 합니다. 이전과 이 후에도 하나님과 믿음의 사람 사이에 맺어지는 계약들이 등장합니다. 대표적으로, 노아 언약(무지개 언약), 다윗 언약 등이 그것입니다. 이들 언약 중에서, 구약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언약이 바로 오늘 등장하는 언약입니다.

 

1절 말씀에서 우리가 잠시 볼 수 있는 것은, 아브라함은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전에 교회 건축 프로젝트인 막벨라 프로젝트을 진행하면서 첫 번째 구호가아브라함처럼 기도하자로 정한 것입니다.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임했다는 말이, 바로 아브라함이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아브라함이 길 가다가 환상을 보았겠습니까? 뒷간에서 볼 일 보다가 환상을 보았겠습니까? 아브라함이 기도하다 환상을 보았다는 것이죠.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줄로 믿습니다.

 

환상 중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대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 하나님을 대면하는 사람이 갖는 마음은 두려움입니다. 교회생활 하다 보면, 저 사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두려움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는지 아닌지를 보면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생활 하면서 어떤 사람을 보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맞나, 의문이 생길 정도로, 성격을 드러내시는 분이 있습니다.

 

복음성가 작사가 중에 송명희라는 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양 중를 작사하신 분입니다. 이 분이 작사하신 곡 중에, “참소경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참소경이 누구인가, 세상을 못 보는 사람인가, 참소경이 누구인가, 세상을 못 보는 사람인가, 아니라, 아니라, 주님을 못 보는 사람 아닌가!” 이렇게 부르는 찬송입니다. 누가 소경입니까? 하나님이 안 보인다고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고 자기 맘대로 사는 사람이 진짜 소경인 겁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압니다. 하나님 두려운 줄 아니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거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의 이웃에게 해를 끼치거나 맘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공중에 나는 새도 하나님이 아끼시고, 내가 보기에 좀 모자라고 짜증나는 사람도 하나님이 아끼시는데, 내가 어떻게 저 새를, 저 사람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할 수 있습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6절 말씀처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은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없이, 어떻게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이 어떻게 내 남편, 내 아내, 내 형제 자매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갈등이 왜 생깁니까? 서로가 서로를 우습게 여기고 막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이 서로가 서로에 대한 존중하는 마음은 우리 인간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경외하는 마음을 가질 때, 비로서 거기에서 이웃에 대한 존중하는 마음이 나오는 것입니다.

 

남편이 우습게 보이시거나, 아내가 우습게 보이시거나, 형제 자매가, 또는 내 이웃이 우습게 보이는 분이 있다면, 자기 자신을 한 번 살펴 보십시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어느새 삭으라든 것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반대로, 남편이 사랑스러워 보이고, 아내가 사랑스러워 보이고, 형제 자매가, 또는 내 이웃이 사랑스럽게 보이는 분이 있다면, 자기 자신을 한 번 곰곰이 들여다 보십시오. 자신도 모르는 사이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이 만큼 자라 있는 것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결국 무엇이 중요한 것입니까?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로 서 있으면 내 옆에 있는 사람(남편, 아내, 자식, 형제자매, 이웃)과의 관계가 편안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어긋날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실질적인 관계 회복으로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지금 좋다고 해서, 몇 년 동안 불편한 관계 속에서 살아오던 사람과 갑작스럽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하하호호웃으면서 살게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마음 가짐이 변한다는 것이죠. 꼴보기 싫어서 돌아누워 자던 부부 사이, 아예 방을 따로는 쓰는 부부사이였는데, 물론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아졌다고 해서 한 방에서 한 이불 덮고 오손도손, 그렇게 금방 좋아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돌아누워 자더라도, 여전히 각 방을 쓰더라도 남편을 향한, 또는 아내를 향한 마음이 달라진다는 것이죠. 그 사람을 향한 긍휼한 마음과 간절한 마음으로 눈물을 줄줄 흘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면, 실제적인 관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여도, 이미 그 안에서 착한 일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빌립보서 1 6절에서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향해 전하고 있는 복음입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사랑하는 컬럼버스 감리교회 성도 여러분! 믿음이란, 신앙이란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내 안에 충만한 것. 그래서 (두려워서) 아무 일도 못하는 것이 아니라, 1절 후반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그 마음이 나의 방패가 되고 상급되어서, 나의 힘이 되어서 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나의 마음을 움직여, ‘착한 일을 시작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 신앙입니다.

 

종소리 나니까, 이유도 없이 그냥 밥 주나 보다 하고 침을 줄줄 흘리는 조건반사적인 신앙이 아니라, 내 안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즉 하나님을 진짜 대면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진짜로 듣기 때문에 움직이는 믿음의 자녀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 신앙의 사람입니다. 그 두려움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는, 꼼짝 못하게 하는 두려움이 아니라, 내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게 하시는, 그야말로 두려움 없이 착한 일을 감당하게 하시는 엄청난 에너지입니다.

 

어떤 사람이 산을 걸어가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서 추락하던 중 간신히 나뭇가지를 잡았습니다. 거기에 댕그랑 댕그랑 매달려 있으면서 소리쳤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손을 놓아라!”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소리쳤습니다. “여기 누구 다른 사람 없어요!”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간신히 잡은 나뭇가지를 놓는 것이 두렵습니까? 아니면그 손을 놓아라!’라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더 두렵습니까? 나뭇가지를 놓는 것, 두렵죠. 떨어져 죽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 잡은 손을 놓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시는 두려움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6.25 한국 전쟁 때 참전군 중에 빌이라는 미국 병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전투중에 폭탄을 맞아서 하반신이 완전히 마비되었습니다. 목 이하는 완전히 마비되고 팔 다리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대소변도 자기 스스로 가리지 못했습니다. 목 위만 겨우 신경이 통해서 볼 수 있고, 말하고 들을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상태로 평생을 그렇게 지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 아내 스텔라가 보험 외판원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병실을 지키며 3년이란 시간이 지났습니다.

 

아내 스텔라가 병상에서 남편의 손을 잡고 울며 기도하면서 남편에게 이혼을 제안했습니다. “여보, 도저히 나는 병실에서 이렇게 생활할 수 없으니 우리 헤어지도록 합시다. 당신은 국가에서 주는 연금으로 치료받으며 병원에서 생활할 수 있으니, 나는 나의 삶을 살아야겠어요. 나를 놓아주세요!” 그때 밀이 눈물을 글썽이며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복을 빌겠소. 그러나 하루만 더 참아주구려…” 그 날 밤 빌은 병상에서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 주여, 내게 함을 주시옵소서. 성령의 능력으로 나를 일으켜주옵소서.” 그 순간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마비되었던 손이 움직이고 발가락이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얼굴에 생기가 돌았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로 몸을 회복한 빌은 그 후 훌륭한 전도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의 삶을 한 번 돌아보십시오. ‘내가 이거 놓으면 죽을 것 같아.’라고 생각이 드는 두려운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 명예, 건강, 또는 긴장감, 복수심? 그것 때문에 지금 내가 죽어가고 있고, 그것 때문에 지금 하나님과의 관계가 엉망진창인데도 불구하고, 두려움 때문에 놓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착한 일을 시작하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즉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서는 지금 무슨 착한 일이 시작되었습니까? 들리지 않던 말씀이 들리시나요? 일어나지지 않던 몸이 일어나져서 아침 기도회에 나오시나요? 꼴도 보기 싫었던 남편을 위해서 눈물 흘리면서 기도하시나요? 쳐다보기도 싫었던, 원수 같았던 형제자매를 생각하면 애통하는 마음이 생기나요?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얼굴 대면하기 싫어서 안 보이는 길로 돌아가게 만들었던 이웃을 위해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게 되었나요? 습관에 좇아 나오던 예배가 기다려지고 기다려지시나요? 이러한 변화가 있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그 믿음이 내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아메리가 인디안들은 소년들의 용기를 훈련하기 위해 독특한 방법을 썼습니다. 이들은 소년들에게 숲 속에서 야생동물들과 함께 밤을 지새게 만들면서 소년들의 담력을 키웠습니다. 담력 훈련을 받는 날, 소년은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그러나 날이 밝아오면서 소년은 그의 아버지가 가까운 나무 뒤에서 화살을 당긴 채 지키고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아들 몰래 아버지는 아들에게 위험이 닥치지 않게 밤새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지키십니다. 우리가 누구를 두려워해야겠습니까? 우리의 방패 되시고 상급이 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길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바라건데,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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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