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4. 1. 6. 00:01

당신은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이사야 43:1-21)

 

새해가 밝았습니다. 한국은 올해를 갑오년이라고 부릅니다. ‘갑오년하면 120년전인 1894년에 있었던 갑오개혁이 생각납니다. 특별히 갑오농민혁명을 이끌었던 녹두장군 전봉준이라는 분이 생각납니다. 그 분이 지은 <새야, 새야 파랑새야>라는 시는 매우 유명합니다. 갑오년을 맞아 한 번 낭송하겠습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 꽃이 떨어지면 청포 장수 울고 간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 잎에 앉은 새야

녹두 잎이 깐닥 하면 너 죽을 줄 왜 모르니

 

새야, 새야 파랑새야 너 뭣 하러 나왔느냐

솔잎 댓잎 푸릇푸릇 하절인 줄 알았더니

 

백설이 펄펄 엄동설한이 되었구나.

 

파랑새는 희망을 나타냅니다. 그것도 그냥 희망이 아니라 구슬픈 희망입니다. 마음 속 깊이 묻혀 있는 간절한 소망입니다. 여러분 중에 닛산 자동차를 타고 다니시는 분이 계실 텐데, 일본어 닛산이 바로 파랑새(Bluebird)’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닛산 자동차를 탄다는 것은 파랑새, 즉 희망을 탄다는 뜻이죠. (저는 닛산 자동차 판매원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희망 가운데, 또는 한 가지 희망 가운데 새로운 해를 시작하셨을 여러분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새해에 우리가 가져야 할 희망이 무엇인지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 되기입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우리는 말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대답하면서도 실제로 하나님의 백성처럼 살아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잘 모르고 삽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백성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 그 삶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을 부를 때, ‘야곱아, 이스라엘아라는 명칭이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명칭인데, 신약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부를 때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를 그리스도, 주님, 메시야, 왕으로 고백하고 그를 따르는 무리에게 붙여진 명칭입니다. 구체적으로 사도행전 1126절에 나옵니다. “바나바가 사울(바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야곱으로서, 이스라엘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 대하여 독특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바로 창조신앙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말씀하시느니라.” 하나님은 그냥 하나님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인데, 그 하나님이 그냥 하나님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것은 매우 절대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택함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택하시는 것은 그가 창조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가리킵니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에 대하여 절대적인 주권을 가집니다. 물론 부모가 없을 때 조부모나, 백부(삼촌), 고모, 이모 등이 아이들의 법적인 대리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었다고 생각했던 부모가 살아 돌아오면 부모 앞에서 다른 법적 대리인은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그냥 하나님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것은 우리를 부르시는 것, 즉 택함에 대하여 절대적인 주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냥 백성이 아니라, 택함 받은 백성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매우 특별하게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을 일컬어 선민이라고 했습니다. 영어로 ‘chosen people’이라고 합니다. ‘택함 받은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그 택함 받은 백성에 대해서 오늘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7)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1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도조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20)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내가 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택해주셔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나를 택해 주시는 하나님이 그냥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택해 당신의 백성 삼아 주신 것은 매우 큰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복에 대해서 말해 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구속 redemption’의 복입니다. 구속은 어디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자유케 하셨다는 뜻입니다. 스티븐 킹(Stephen King)의 소설을 바탕으로 팀 로빈슨(Tim Robbins)과 모건 프리먼(Morgan Freeman)을 주연으로 해서 1994년에 만들어진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도 영어로 <Shawshank Redemption>이라고 합니다. 멜 깁슨이 주연한 <브레이브 하트>라는 영화에서 스코틀랜드의 해방을 꿈꾸는 주인공이 마지막에 죽으면서 이 한 마디를 외치며 죽습니다. “Freedom! 자유!” 자유를 향한 인간의 열망은 그 어떤 욕구보다 더 깊은 욕구입니다. 자유는 모든 욕구의 기초입니다. 배고픔으로부터의 자유, 성욕으로부터의 자유, 이런 욕구뿐만이 아니라, 사회, 정치, 경제, 문화적인 모든 면에서 우리 인간은 어딘가에 속박되는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하다못해 아이들도 좀 크면 부모들로부터 자유를 얻으려고 갈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신앙으로 속박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앙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참 자유를 누린다는 뜻입니다. 혹시 여러분의 삶 가운데 여러분의 자유를 빼앗는 그 무엇이 있거든, 바로 거기로부터 구속해 달라고, 해방시켜 달라고, 자유케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십시오. 당신의 백성을 구속하시는 하나님, 당신의 백성을 해방시키시고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께서, 자유를 갈망하는 여러분에게 참 자유를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자유는 우리의 욕망을 채우는 방식으로 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욕망을 비우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임합니다.

 

이 시대 최고의 영성가 중 한 명인 안셀름 그륀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거룩해진다는 것은 세상의 힘에 굴복하지 않고, 오직 하느님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기를 바라는 것을 뜻합니다. 하느님과 일치하면서 그분에 의해 거룩해지기를 바라는 사람은 진정으로, 그리고 온전히 구원받을 것입니다”(치유, 71)

 

우리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의 소망을 이루어 주옵소서.’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주님, 모든 것이 당신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 얼마나 어려운 고백입니까? 겟세마네의 피땀 기도가 없다면 불가능한 고백입니다. 솔직히, 우리는 우리의 소망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을 기대하지,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내놓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보여야 할 거룩한 모습은 언제나 묘연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의 욕망에 사로잡혀 거룩함을 잃고 방황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속박된 그곳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으시거든, 여러분의 욕망을 채우는 방식으로 기도를 드리지 마시고, 거룩한 기도, 즉 우리를 백성으로 택해주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를 간구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참 자유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내리시는 복 중, 오늘 말씀을 읽기만 해도 은혜 되는 복이 있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랄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라!” 또한 4절 말씀도 보십시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니라!”

 

그리고 결정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은 다음과 같은 복을 누립니다. 19절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라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라!”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새 일의 혜택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이루신 새 일(a new thing)’이 무엇인지 압니다.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라!” 우리는 그 길을 걸어가고, 그 물을 마십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예수는 진리의 길이다! 예수는 생명의 물이다!’ 예수님은 당신을 걸으라고 우리를 초대하고, 자신을 마시라고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내어 놓으셨습니다. 바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만복을 누린 하나님의 백성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오늘 말씀은 이렇게 가르쳐 줍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21).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나이 많은 어느 목수가 은퇴할 때가 되었다 생각하고 고용주를 찾아가나이가 많아 더 이상 일을 하지 않고 자신의 가족과 함께 편히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고용주는 가족들의 생계가 걱정되지 않느냐면서 더 일하라고 극구 말렸지만 그 목수는 자기의 주장을 꺾지 않고일을 그만 두겠다일을 그만 두더라도 앞으로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고용주는훌륭한 일꾼을 잃게 되어 무척 유감이라고 말하면서마지막으로 손수 집을 한 채만 더 지어 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목수는 그 고용주의 부탁을 뿌리칠 수 없어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그의 마음은 벌써 고용주를 떠나 있었고 집 짓는 것도 내키지 않는 일로 치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목수는 임금을 적게 주어도 될 형편 없는 인부들을 고용하였고 건축자재 또한 무성의하게 조잡한 것을 구입하여 집을 지었습니다.

 

집이 완성 되자 고용주가 집을 보러 왔습니다. 엉성하게 지었기 때문에 자세히 살피면 그 집이 잘못 지어진 것임을 눈치 챌 수 있었지만 그 고용주는 집을 자세히 둘러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 목수는 마음이 조마조마 했지만 집을 자세히 검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하며 속으로 기뻐했습니다.

 

고용주가 목수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당신의 집입니다. 당신이 나를 위해 여러 해 일을 해 주었기 때문에 고마운 마음으로 보답하는 의미에서 이 집을 드립니다.“하고는 현관 열쇠를 그에게 쥐어주었습니다.

 

목수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주인의 통 큰 보답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받은 더 큰 충격은 집을 한 채 선물로 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아무렇게 집을 지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마도 몇 년이 채 지나지도 않아서 대폭 수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란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어리석은 목수가 전에 했던 것처럼 자신의 경험을 살리고 정성을 다해 집을 지었다면 100년이 더 갈 튼튼한 집을 지었을 것입니다. 그 목수는 마지막 순간에 그런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갑오년을 맞아, 처음에 갑오개혁을 생각하며 녹두장군의 파랑새를 읽었듯이, 갑오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신앙인으로,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개혁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를 한 번 돌아보면, 우리는 위에 등장하는 마음 떠난 목수처럼’, '마음 내키지 않는 목수처럼'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얼마나 엉성하게 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일, 남을 위한 일이라고만 생각하지, 결국 나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만,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예배 드린다고만 생각하지, 결국 이 예배를 통해서 혜택을 받는 것은 우리 자신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집을 정성스럽게 지은 만큼 그 혜택을 목수가 보게 되는 것처럼, 예배를 정성스럽게 드린 만큼 그 혜택을 우리 자신이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그렇습니다. 좋은 것 먹고, 운동 열심히 하는 것만이 나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 새로운 계명을 주셨듯이,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하신 계명에 입각한, 하나님을 위하고 이웃을 위한 모든 일이, 결국 나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는 목수처럼 하루를 짓고 한 달을 짓고 한 해를 지으며 살아나가고 있습니다. 성의 없이 지은 모든 세월들이 원망과 한탄으로 얼룩지지 않도록 오늘 이 하루를 성실과 감사로 지어나가야겠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당신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아멘.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