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몰락과 인권의 종말]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실존한다는 '상상 세계'에서 살고 있다. 이는 마치 화폐라는 존재 자체가 실존한다는 상상을 하며 화폐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 화폐를 손에 넣기 위해서 생명을 소진하는 일과 같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존재할까?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관찰해 보면, 그런 것 같지 않다. 인권이 너무도 많이 짓밟히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존재한다면, 우리는 결코 인간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보라. 인간에게 인권이 있는가.

 

우리는 그저 상상 세계에서만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상상'할 뿐이다. 그 상상력을 깨는 무수한 요인들이 존재하므로, 우리는 쉽게 상상세계에서 이탈한다. 그래서 어떠한 존재는 다른 존재에게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너는 나의 세상에서 인간이 아니다. 그러므로 너는 나에게 인간대접(인권)을 받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말이 설정되고 나면, 인권은 없고 폭력만 난무하게 된다.

 

한나 아렌트는 <국민국가의 몰락과 인권의 종말>이라는 글에서 국민국가의 쇠퇴는 필연적으로 인권의 위축을 함축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국민국가의 몰락(민주주의의 몰락)은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것이다. 국가가 몰락하고 있으니, 인권이 묘연하다. 인권이 위축되고 있으니, 탄식소리만 들려온다.

 

우리는 시리아 난민에 관한 뉴스를 보면서 마음 아파한다. 지중해를 건너다 배가 파산되어 목숨을 잃은 수많은 난민들에 관한 소식. 선택할 여지도 없이 희생되는 아이들의 모습. 그러나, 그 난민에 대한 소식이 우리들에게 얼마나 '강 건너 불구경'인지 모른다. 뉴스를 보면서 안타까워 하지만, 그러한 일이 우리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마음을 떠받치고 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민국은 난민의 위험성을 가장 많이 품고 있는 나라 중 하나이다. 전쟁에 휩싸이거나 경제적 몰락을 경험하게 되면, 한국인은 난민이 되어 황해를 건너다, 현해탄을 건너다, 태평양을 건너다, 지중해를 건너다 희생당한 시리아 난민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국민국가의 몰락(민주주의의 몰락)은 이러한 비극을 잉태하고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몰락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거나, 민주주의의 몰락의 위험성을 전혀 모르며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살고 있다는 착각이 삶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그럴까? 민주주의가 위기를 겪고 몰락하고 있어 인권(생명)이 위협 받고 있는데도, 엔터테인먼트만 즐기고 있다.  거리는 한산하고 공연장은 붐빈다.

 

위기를 감지 못하면, 곧 닥칠 재앙의 비참한 희생자가 되고 만다. 세상이 너무 시끄러워 비상경보기 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는 듯하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