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8. 9. 6. 16:05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

(요한일서 4:7-11)

 장례예배


요즘 한국에서 죽음학 전도사로 열심히 활동하시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정채현 교수라고 있다. 죽음에 관해서 몇 권의 책도 출간하신 분인데, 그분이 그렇게 죽음학 전도사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깨달음 때문이었다고 한다.

 

의사의 일상은 환자를 돌보는 것이고, 돌보던 환자의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 일이 매일 같이 반복되면, 어느 누구든 그 일에 대하여 둔감하게 되어 있다. 정채현 교수도 그랬다. 매일 같이 죽음을 목도하는데, 그 죽음이 전혀 자기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은 것으로 여겼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죽음이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나의 일이라는 깨달음이 생겼다. 그때부터 가까이에서 보는 죽음을 관찰하고, 누구든지 겪게 되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연구해서, 강연도 하고, 책도 출간하면서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도 올 해 초, 방광암 진단을 받고, 실제로 닥친 죽음을 감당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한다.

 

죽음은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죽음이 코 앞에 닥치는 그 순간까지, 죽음을 남의 일로만 생각할 뿐, 나의 일로 생각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그것도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같이 죽음의 공포 속에 살아가면, 어떻게 인생을 정상적으로 살 수 있겠는가. 죽음의 공포를 견딜 육신과 정신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도 목사로서 장례식을 많이 집례하면서, 어느 날 갑자기 위에서 이야기한 정채현 교수와 같은 깨달음이 온 적이 있다. 그때 집례한 장례식은 젊은 사람의 장례식이었다. 달리기 모금 행사에 나갔다가, 자동차에 치여 죽은, 교회 할머니의 딸이었는데, 관 속에 곱게 누워 있었다. 예배 드리는 내내, 관속에서 미동조차 안 하고, 예배가 끝난 후,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는 데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몸은 저렇게 멀쩡한데, 무엇이 저 사람과 나의 생을 가르고 있는가. 그러면서, 어느 날, 내가 저곳에 저렇게 누워 있고, 누군가가 나의 장례식을 집례하겠지, 라는 생각이 마음 속 깊이 들어왔다. 그때부터 죽음이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고, 나의 일처럼 여겨졌다. 그러는 순간, 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죽음을 바라보면, 한 사람의 인생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이미지가 있다. 나는 김행삼 집사님을 생각하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 조르바가 생각난다. 김행삼 집사님과 함께 한 세월이 2년 정도밖에 안 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김행삼 집사님이 나에게 보여준 인생의 가치는 자유와 평화였다.

 

자유와 평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들의 특징은 유머감각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김행삼 집사님은 유머감각이 뛰어난 분이셨다. 몇 달 전,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찾아 뵈었는데, 그때 마침 사돈이신 이정헌 집사님도 일반병원 입원 후 호스피스 병원에 머무실 때였다. 그때 마침, 함께 사는 며느리(이은주 집사)에 대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때 며느리 칭찬을 한참 하시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 며느리가 아버지랑 시아버지랑 둘 다 병석에 누워 있는데, 여기 왔다, 저기 갔다, 여기 저기를 오가면서 힘들텐데도, 성격이 좋아서, 살이 안 빠져.” 그러면서 웃으셨다.

 

또 몇 주 전, 잠시 코마 상태에 빠져 사경을 헤매신 때가 있었다. 그때 모두가 아버지 돌아가시는 줄 알고, 긴장하면서 기도했다. 그런데 다행히 코마 상태에서 깨어나셔서 눈을 뜨시고, 걱정돼서 찾아온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마침, 이진주 자매가 문병을 갔었다. 김행삼 집사님은 그때 이진주 자매를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 아직 안 죽었다.” 그러면서 웃으셨다.

 

김행삼 집사님은 저를 만날 때마다 미소를 지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목사님,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겠지만, 소신껏 하세요.” 어르신이 젊은 목회자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려 하시거나, 지루한 옛 이야기를 늘어 놓지 않으시고, 언제나 미소로 대하시며 소신껏 하라고 격려해 주셨다.

 

<그리스인 조르바>에 보면, 조르바가 들려주는 어떤 노인의 이야기가 있다. 그 노인은 세상을 자유롭게, 그리고 평화롭게 산 노인인데, 그 노인이 세상을 떠나기 전, 동네를 돌면서 만난 젊은 처자를 붙잡고 이렇게 말한다. “.. 내가 너처럼 고운 아이를 두고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니…” 자유와 평화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이 세상을 긍정하지, 부정하지 않는다. 자유와 평화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향유하고 나누어 줄줄 알기 때문에, 언제나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한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눈 말씀은 교회의 장로, 즉 나이가 지긋하신 한 할아버지가 젊은이들에게 주는 사랑의 교훈이다. 나이가 지긋이 든 요한은 교회 공동체를 향해, 때로는 Dear Children(나의 자녀들아, 소자야)이라 부르고, 때로는 Dear Friends(나의 친구들이여, 사랑하는 이들이여)라고 부르면서,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을 가르쳐 준다.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

 

성경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하나님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다양한 시각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지만, 요한이 경험한, 요한의 눈에 들어온, 요한의 입술로 고백되는 하나님(예수님)사랑이시다. 요한이 깨달은 비밀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을 알게 되고, 사랑할 때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한이 말하는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고, 그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해 우리가 살았고,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한다.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으신 후, 부활, 승천하셔서 이곳에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지만, 우리가 사랑할 때 그 사랑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아버지(할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유가족 여러분! 그리고 친지, 친구,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게 자유와 평화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시며 여러분을 미소로 대하시며 사랑하신 김행삼 집사님을 기억하시려는가? 누군가를 기억하는 방법 중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특별히, 유가족들에게 전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신 것을 생각하면서, 서로 사랑하시라. 교회에 출석하여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서로 사랑할 때, 그리스도가 여러분 가운데 함께 계시며,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셨던 아버지, 할아버지가 여러분 가운데 함께 계실 것이다.

<
그리스인 조르바>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날 학교의 꼬마 친구가 이렇게 물었다. “너희 할아버지는 어떻게 돌아가셨는데?” 그래서, ‘(화자, 그리스인 조르바의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사람)’는 할아버지에 대하여 이러한 신화를 만들어 낸다.

 

우리 할아버지는 흰 수염을 날리던 분으로 고무신을 신고 다니셨지. 어느 날 할아버지는 우리 집 지붕에서 펄쩍 뛰어 오르셨는데, 떨어져 땅에 닿자마자 공처럼 튀었지. 차차 더 높게 튀어 우리 집보다 더 높게 튀시더니 드디어 구름 속으로 사라지셨어. 우리 할아버지는 이렇게 돌아가셨단다.”
(
그리스인 조르바, 105)

 

여러분이 서로 사랑하면, 할아버지의 자유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전염되어, 이러한 유먹감각을 가지고, 이 세상을 여유롭게, 평화롭게, 자유롭게, 그리고, 미소를 잃지 않으며, 살아가게 될 거라 믿는다.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 김행삼 집사님은 가셨지만, 그분의 사랑은 우리 가슴에 영원히 남을 거라 믿는다.


기도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제 육신의 삶을 끝내고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故 김행삼 집사님을 긍휼히 여기시옵소서.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서게 하여 주사, 눈물도, 죽음도, 생존경쟁도 없는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하옵소서.

믿는 자의 소망이 되시는 주님, 어리석은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높고 크신 섭리를 다 깨닫지 못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영생의 소망으로,

이 땅에서의 유혹과 환난을 이겨 내며,

끝까지 믿음을 지키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오늘 고인과의 이 땅에서의 마지막 예배를 함께 드리면서

나누었던 말씀처럼,

서로 사랑하는 가족,

서로 사랑하는 친구,

서로 사랑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사,

그 사랑 안에 영원히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며,

그 사랑 안에서 영원히 기억될 김행삼 집사님을 마음에 품고,

사람은 이제 가지만, 그 사랑은 우리 마음에 영원할 것을 기대하며,

고인을 편히 보내드리게 하옵소서.

이제, 아버지, 할아버지 없이 살아갈 유가족들을 긍휼히 여겨 주사,

담대한 마음을 갖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며 살아가는 믿음의 가정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여서

우리에게 영원한 소망이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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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