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장자크 루소의 소설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에 이런 구절이 있다. “얼마 전에 풀키에 씨에게 이끌려 평소와는 달리 내 아내를 동반하고 그와 그의 친구 브누아와 같이 바카생 부인데 식당으로 각자 자기 식대를 부담해서(‘피크닉형태로) 점심 식사를 하러 갔었다. 바카생 부인과 그녀의 두 딸이 우리와 함께 식사를 했었다.”

 

서양에서 소풍(피크닉)은 몇몇 사람이 소량의 음식을 가지고 와 함께 식사하는 것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피크닉(picnic)의 어원은 불어인데, 불어의 ‘pique-nique’에서 왔다. ‘조금씩 먹다피케(piquer)’가치 없는 것이라는 의미의 니크(nique)’가 합해서 생긴 말이다. 서양의 소풍에는 소박한의미가 담겨 있다. 소풍은 몇몇이 각자 음식을 조금씩 가져와 나누어 먹으며 별로 의미 없어 보이는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다.

 

우리나라 말의 소풍은 한자어이다. 거닐 와 바람 이 합해서 생긴 말이다. 소풍은 바람을 쐬며 거닐다라는 뜻이다. 동양의 소풍은 목가적이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어렸을 적 소풍은 모두 걸어서 갔다. 물론 교통 수단이 발달하지 않아서 그랬기도 하지만, 소풍은 기본적으로 바람을 쐬며 걸어서 가야 그 의미가 살아난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 소풍의 설렘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것도 기술의 발달로 인해 교통 수단이 발전하면서부터 인 것 같다.

 

소풍하면 떠오르는 두 문학작품이 있다. 하나는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이고, 다른 하나는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다. 황순원 소설 <소나기>에서 소년과 소녀는 소풍(바람을 쐬며 거닐다)을 갔다 소나기 때문에 불어난 개울물을 건너는데 애를 먹는다. 병약한 소녀가 불어난 개울물을 건널 수 없자, 소년은 소녀를 업고 개울물을 걷는다. 그때 소년의 옷에 소녀의 손에 들린 보라색 꽃 물이 든다. 소녀는 소나기를 맞은 탓에 감기가 들어 병색이 깊어져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만다. 소녀는 유언으로 보라색이 물든 옷을 입혀 묻어 달라고 한다. 그렇게 소녀는 소년과의 아름다운 소풍을 가슴에 간직한 채 땅에 묻힌다.

 

천상병 시인은 시 <귀천>에서 이 세상의 삶을 소풍이라고 표현한다. 하늘로 돌아가게 되면, 이 땅에서의 삶을 소풍이었다고, 아름다운 소풍이었다고 말할 것이라고 한다. 사실 천상병 시인의 삶이 그렇게 소풍 같은 삶은 아니었다. 그는 동백림(동베를린)사건에 연루되어 간첩으로 지목돼 옥고를 치른 인물이다. 그 사건으로 인해 천상병은 평생 고문의 후유증에 시달리며 살다 결국 1993년 그가 말하던 소풍 같던 삶을 끝내고 하늘로 돌아간다.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 소풍은 유토피아같은 시간적 공간이다. 어떠한 시간은 우리의 기억 속에 아름다움으로 남아 있는데, 그 아름다움 중에 하나가 소풍일 것이다. 우리는 소풍 때 갔던 장소를 기억하기 보다 소풍이라는 사건, 즉 그 시간을 기억한다. 그 소풍의 시간은 언제나 우리 마음 속에 강렬하게 자리 잡고 있어, 힘들고 어려울 때, 또는 세월에 떠밀려 낯선 시간 속에 머무르게 되었을 때, 우리의 마음을 환하게 해주는 등불과도 같다.

 

소풍 모티브는 복음서에서도 매우 중요한 이야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오병이어 사건이 그것이다. 한 소년이 엄마가 싸 주신 도시락을 들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간 날은 그 소년에게 소풍이었다. 식사 시간이 되었을 때 소년은 자기의 도시락을 자기 혼자 먹지 않고 나누어 먹기 위하여 엄마가 싸 주신 도시락을 예수님 앞에 내어놓는다. 아마도, 그 날 예수님의 말씀은 사랑’, 또는 나눔에 대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 말씀을 들은 소년은 차마 자기 혼자 도시락을 먹을 수 없었다. 주변에 도시락을 싸오지 않아 배고픈 사람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들은 말씀대로 자기의 것을 나누었을 때, 그곳에는 배고픈 사람이 사라졌고, 소년의 삶은 풍성해졌다. 그의 소풍은 말할 수 없는 은혜로 가득 찼다.

 

바람을 쐬며 거니는 시간, 또는 소박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의미 없어 보이는 시간을 함께 보내는 시간, 소풍은 우리의 영혼을 풍성하게 해주는 선물과도 같다. 우리의 삶이 그러한 소풍과 같은 시간이었으면, 우리의 예배가 그런 소풍과 같은 시간이었으면, 우리의 교제가 그런 소풍과 같은 시간이었으면, 그러면, 우리도 보라색으로 번진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우리의 것을 아낌없이 나누며 살다가, 소풍이 끝나는 날, 저 하늘로 미소 지으며 올라갈 수 있을 텐데……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