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세탁’이라는 말이 있다. 더러운 옷을 세탁해서 깨끗한 옷으로 만들듯이 더러운 돈을 깨끗한 돈으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더러운 옷을 세탁하면 깨끗한 옷이 되지만 돈은 세탁한들 깨끗해질 수 없다는데 있다. 돈을 더럽게 번 사람들은 이렇게 비열한 방법으로 그 돈을 세탁시켜 쓰려한다. 한 마디로 도덕 불감증에 걸린 것이요 머리에 숯불을 곱빼기로 얹는 격이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는 속담의 오용이다. ‘돈세탁’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가장 손쉽게 써 먹는 방법이 ‘차명계좌’를 이용하는 것이다. 본인의 이름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을 도용하여 돈을 세탁하는 방법이다. 자신을 떳떳하게 밝힐 수 없다는 것은 그만큼 뒤가 구리다는 뜻이다.
요즘 김태근 씨의 죽음과 함께 떠오른 인물이 ‘이근안’이라는 사람이다. 김근태 씨는 군사독재시절 민주화 운동을 한 혐의로 당국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는데, 당국의 지시를 받아 김근태 씨를 모질게 고문한 사람이 바로 이근안 이다. 이 사람은 아직도 군사독재시절 가장 악랄했던 고문기술자로 역사에 남아 있다. 이 사람은 군사독재가 끝나고 대한민국에 민주화 바람이 불었을 때 지난 날의 죄 때문에 7년 동안 철창 신세를 졌다. 그 때 김근태 씨가 장관의 신분으로 감옥에 찾아가 이 사람을 역사적으로 용서한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그 때 이근안은 장관 김근태에게 싹싹 빌면서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했단다.
7년 동안 철창 신세를 지면서 이근안은 자신의 과거를 씻어내고 싶었을 것이다. ‘고문 기술자’라는 신분을 씻어낼 방법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생각해 낸 것이 신학을 공부하는 것이었다. 그는 감옥에 있는 동안 통신으로 신학을 공부하여 출옥과 함께 모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참으로 기가 막힌 ‘신분세탁’이다. ‘고문 기술자’ 이근안에서 ‘목사’ 이근안으로 신분이 바뀌었으니 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신분세탁이 어디에 있으랴! 이후 이근안은 목사의 신분으로 세상에 나와 간증을 하고 돌아다녔다. 분명 지난 날을 회개한다는 명분하에 눈물 콧물을 다 짜내며 간증했을 것이다.
우리는 감옥에 갔던 사람이 출소 후에 목사가 된 일화를 종종 들어왔다. 그러나 감옥에 갔던 사람이 출소 후에 법관이 되었다거나 의사가 되었다는 일화는 들어본 적이 없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우선 법관과 의사는 ‘마음 먹는다’고 될 수 있는 직종이 아니다. 범죄 경력이 있는 자에게 자격이 주어지지도 않지만 법대나 의대를 들어가는 것에서부터 사실상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사는 어떠한가? ‘마음만 먹으면’ 다 될 수 있다. 범죄 경력이 있어도 상관 없을뿐더러, 신학대에 들어가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통신과정이라는 것이 있어서 중등교육 이하의 노력을 기울여도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목사가 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감옥까지 갔다 온 역사적 죄인이 ‘목사’가 되겠다고 마음 먹은 것도 이해할 수 없고, 이렇게 극악무도한 자에게 ‘목사’가 되는 길을 열어준 신학교와 교단도 이해할 수 없다. 이들은 분명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원수를 사랑하라!” “당신이나 이 사람이나 하나님 앞에서는 똑같이 죄인이다!” 나름대로 ‘은혜로운 말’을 얼마든지 가져다 붙일 수 있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목사는 어느 한 실증적 죄인의 ‘신분세탁’을 위해 존재하는 신분이 아니다. 성서에서 우리 인간을 일컬어 ‘죄인’이라고 하는 것은 존재론적 차원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지 실증적 차원에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기본적인 구분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목사가 될 수 있으며, 신학교와 교단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이근안은 더 이상 ‘하나님의 이름으로’ 목사의 직분을 더럽히지 말라. 목사직을 통해서 ‘신분세탁’한 이근안은 방법만 달랐을 뿐 이 땅에서 성실하게 목사직을 감당하고 있는 목사들을 고문하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재발되지 않도록 교회들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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