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2012. 10. 31. 07:00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4

 

아버지,

저는 이제서야 서른 일곱 살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이 날이 오기를 기다렸는지요!

사실 기다렸다기 보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왔습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도

약속이나 한 것처럼

정확하게

서른 일곱 살 먹은 나에게

왔습니다.

 

남들은 서른 일곱이 무슨 대수냐,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버지는 알고 계시죠?

제가 왜 이렇게

서른 일곱에 설레 하는지.

아버지도 서른 일곱 살 된 해에

둘째인 저를 낳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둘째인 저를 낳으셨지만,

저는 둘째 아들을 만났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되어

아들은 제가 되어,

약속한 것처럼 만났습니다.

 

저는 비로소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었습니다.

저를 안을 때 어떤 느낌이셨을지,

저를 보고 있을 때 어떤 미소를 지으셨을지,

이른 새벽 어둠을 가르고 일터로 나설 때

자고 있는 아들들의 모습을 보고

어떤 마음이셨을지.

저는 비로서 헤아리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둘째 아들이 태어난

제 나이 서른 일곱.

이제부터는 더 아버지가 되는 듯합니다.

저는 아버지로 삽니다.

아버지가 아버지로 살았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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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