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2012. 10. 31. 06:52

유전에 대하여

 

부자지간에는 닮은 구석이 있게 마련이다

아무리 닮은 데가 없어서도

발가락이라도 닮기 마련이다

나도 아버지를 닮은 구석이 많다

 

남들은 보이는 부분만 보면서

나를 보고 아버지를 닮았다고 말하지만

그 중에서도 아버지를 닮아

쥐 젖 같은 조그만 혹이 몇 개 있다

 

나는 매일 아들과 함께 샤워를 한다

어느덧 사물을 인식할 만큼 커 버린 아들이

함께 샤워를 하다가

마침내 내 몸에서 혹을 발견했다

 

아들은 신기한 듯 물었다

아버지 이게 뭐야?’

나는 대답했다.

, 이건 혹이라고 해

 

? 이건 어떻게 해서 생긴 거야?’

, 아버지의 아버지, 그러니까 너한테는

할아버지도 이런 혹이 있으셨는데,

아버지가 아들이라 이렇게 생기게 된 거야!’

 

유전이라는 두 글자로 설명하면 될 것이지만

아직 유전이 무엇인지 모르는 어린 아들에게

혹이 생기게 된 경위를 설명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오늘따라 잠 못 이루는 아들과 누워

이야기도 들려주고 노래도 부른다

문득 아들은 아버지의 혹이 생각났는지

손을 더듬어 아버지의 혹을 찾는다

 

아무렇지도 않게 혹을 만지작거리는 아들에게

다시 유전에 대하여 설명한다

너도 아버지의 아들이기 때문에

네가 아버지 나이쯤 되면 이렇게 혹이 나게 될 거야.’

 

혹을 만지작거리던 아들은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유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됐다

내 몸에 이렇게 혹이 생기게 된 것은

나도 아들처럼 어린 시절 아버지의 혹을 만졌기 때문이 아닐까

 

아들이 아버지 몸에 난 혹을 만지작거리며 잠들지 않았더라면

아들은 이 다음에 커서 아버지처럼 혹이 안 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 밤 아들은 아버지의 혹을 이렇게 만지작거리며 잠들었으므로

아버지처럼 혹이 날 것이다

틀림 없이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4  (0) 2012.10.31
어떤 크리스마스 이브  (0) 2012.10.31
불혹?  (1) 2012.10.25
남자의 기쁨  (1) 2012.10.25
홈리스  (0) 2012.10.25
Posted by 장준식